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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감성아빠 Dec 20. 2016

아빠육아, 나의 아버지를 추억하다

아빠가 되어 바라본 나의 아버지

아버지라는 존재는 내게 아쉬움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표현이 되는 것 같다. 항상 일로 바쁘게 살아온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엄격하셨다. 시골에서 자란 우리 형제는 가정형편이 어려웠고 아버지는 이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다. 농사일을 하시면서  한옥을 짓는 목수 일을 하신 당신은 자식들이 자신처럼 어렵게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다. 육체적인 노동의 피로를 충분히 경험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배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신 당신은 자식들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을 하길 바라셨다. 한옥 건축분야에서 그 노력을 인정을 받으신 당신은 나름 가정의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왔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식들이 마음 놓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컸다. 하지만 그 시대의 다른 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다. 내가 고등학생까지는 권위적이고 독단적이었던 아버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면서 당신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시간마저도 부담스럽게 다가왔었다.

20대를 지난 어느 날, 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보았을 때 삶의 무게에 힘겹게 짓눌린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아버지와 멀어진 거리감을 줄이기엔 끊어진 고무줄처럼 다시 되돌리기가 어려웠다.


아버지의 미소에 깃든 사랑 

8년 전,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손자가 함께했던 고향에서 첫 번째 나들이가 떠오른다. 첫째가 태어나기 몇 개월 전에 말기암 판정을 받은 후로 당신은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 살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예전 같지 않으셨다. 아빠가 된 아들과 예쁜 손자를 보면서 당신은 고통 속에서도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버지와 손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산책을 하는 동안에 우리 부자는 많은 말이 오고가진 않았지만 미소와 표정으로도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한겨울에 결국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강한 정신력을 가진 아버지가 암과 싸워 이겨낼 줄로만 알았던 내 생각은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첫 손자가 태어난 지 4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당신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고, 내 꿈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마음이 크게 남아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가 더욱 그립고 아쉬움이 남는다.



할아버지 봉분의 잡초를 뽑아주는 손자


이제는할아버지를 산소에서 만나다

고향에 갈 때면 8살 아들과 4살 딸아이와 함께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서 인사를 드린다. 첫째는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거의 없지만 산소를 찾으면 “할아버지, 저 우성이 왔어요! 잘 계셨죠?”라고 할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한다. 둘째도 오빠를 따라서 인사를 하곤 한다. 인사를 하고나면 첫째아이는 할아버지 묘소의 봉분에 자란 잡초를 직접 손으로 뽑는다. 우리들은 짧은 순간에도 서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당신은 손자손녀가 커가는 모습에 흐뭇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촌보다 더 가까운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른이 되려면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부모가 되고나서부터 부모님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 형제들에게 주었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이었는지 또한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첫째가 7살 때, 촌수에 관해 궁금해 하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 아빠와 저는 몇 촌이에요?” 

“아빠와 아들이니 일촌 관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럼 저랑 할아버지는 이촌 이네요? 아빠와 할아버지는 일촌이고요.”

이전에 나는 촌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적은 없었다. 하지만 일촌을 친구들과만 맺을 줄은 알았지, 부모와 나와의 관계가 일촌이라는 생각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이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관의 관계는 가장 가까운 존재이다. 아마도 공기와 물과 같이 항상 옆에 있기 때문에 그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촌의 관계보다 더욱 가까운 것이 바로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아닐까.


아빠의 육아 근육은 매일 단단해지고 있다

어머니는 포근함과 안정감을 준다면 아버지는 당당함과 용기를 준다.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했던 나는 유년시절이 그립고 아쉽다. 그래서 아빠인 나는 아이에게 즐겁고 행복한 놀이터가 되고 친구가 되고자 했다. 또한 아이들에게 삶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되고 정신적인 멘토가 되길 바랐다. 그렇게 다짐하고 8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나는 아이들과 공감하고 교감하면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고자 했다. 아이들과 함께 몸으로, 책과 함께, 머리로 대화하면서 육아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아빠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빠의 일상은 아이들과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더욱 특별하게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로써 편하지만 가볍지 않고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무겁지 않은 아빠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남매를 키우면서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아이들에게 아끼지 말고 표현하려고 노력하니 아빠육아는 즐거움이 되었고 이런 생각들은 더욱 단단해졌다.

행복은 기다리기만 해서는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유대감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것 역시 아빠가 그저 기다리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이들과의 다양한 소통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의 시작은 무엇보다도 아빠의 긍정의 움직임 1cm이면 충분할 것이다. 오늘 1cm 움직였다면 내일과 모레는 아빠육아가 더 편해질것이고 아이들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다.


감사합니다

아빠가 되어보니 아버지 당신을 더 많이 생각하고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저희를 키우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나 자신은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로 추억이 될지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매일매일 우리 가족은 성장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아빠육아, 나의 아버지를 추억하다

-초록감성아빠 황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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