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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감성아빠 Jun 21. 2017

아버지! 당신을 불러봅니다.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하는 편지

아버지!

아버지 당신의 존재는 제게 아쉬움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마음속 깊이 남아있어요. 항상 일로 바쁘게 살아온 아버지, 저희 3형제를 키우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오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시골에서 논 한 마지기로 시작한 결혼 생활부터 순탄치는 않았지만, 저희 3형제를 낳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당신. 어렵던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누구보다 열심히 땀 흘리면서 일을 해오셨죠. 농사일뿐만 아니라 건설과 한옥 목수 일을 배우면서 육체적인 노동의 피로를 넘치게 경험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배움을 제대로 받지 못하신 아버지. 자식들이 당신이 해온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을 하길 바라셨죠. 그렇게 날마다 성실하게 살아오신 결과 한옥 건축 분야에서 장인으로 인정을 받으시기도 했죠. 그리고 나름 가정의 경제적인 안정을 가져왔죠.


아버지께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집안의 경제적인 안정을 제1순위로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식들이 마음 놓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시대의 다른 아버지처럼 자식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많이 서툴렀죠. 권위적이고 독단적이었던 아버지가 사실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죠. 특히, 술을 많이 드시고 오시는 날에는 마음 졸였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취한 모습의 아버지는 잔소리가 많아지고 심지어 폭언까지 하기도 하셨죠.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쪽이 여려 옵니다. 제 마음속에서 꺼내놓기 부담스러운 짐이 되었어요. 그렇게 당신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 대화하는 시간, 차를 타고 가는 시간마저도 부담스러웠던 것을 아시나요?


당신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청소년기에는 반항도 하고, 심지어 당신과 똑같이 폭언을 한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의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고, 아버지라는 이름을 제 가슴속 깊은 동굴 속에 자꾸 가두어 두게 되었지요.


당신의 자식들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크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세상을 경험할수록 조금씩 더 이해가 되었어요. 이성적으로는 말이죠. 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아버지의 어깨를 바라보았을 때 삶의 무게에 힘겹게 짓눌린 뒷모습을 보게 되었죠. 하지만 이미 아버지와 멀어진 거리감을 줄이기에는, 시간을 되돌리기에는, 끊어진 고무줄처럼 다시 되돌리기가 어려웠었어요.     

반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제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믿고 기대는 대들보 같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저희가 말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심리적으로 지원을 해주었죠. 자식들이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 지원을 해주시고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저희가 공부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하신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요. 또한, 여러 모임자리에서 아버지 본인 일처럼 저희들 자랑을 하신 것을 알고 있어요. 제가 장학금을 받을 때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결혼할 때도, 취직할 때도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었었죠. 제 생각에는 부족한 아들이었다고 생각하는데도 말이죠.  


아버지께서 경제적 기반 없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경제를 책임을 져야 하는 당신의 상황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집안의 맏아들로 누구보다 자식들에게 부족함이 없이 키우고자 엄청난 노력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일과 사람에 치여서 힘들어하셨고 자식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던 것으로 생각해요. 저도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되고 나니 아버지의 책임감에 대한 무게를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이 가졌던 무게감과는 형태가 조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 당신이 전해준 긍정의 영향력을 기억하고 키워가고 있답니다. 부정적인 것들은 버리고….     



9년 전 일이 떠오르네요. 당신과 저 그리고 손자가 함께했던 고향에서 첫 번째 나들이 말이죠. 이때 기억나시죠? 첫째가 태어나기 몇 개월 전에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죠. 그 후 당신은 힘든 투병 생활을 하면서 살이 많이 빠지고 기운이 예전 못지않으셨죠. 아버지가 된 아들과 예쁜 손자를 보면서 당신은 큰 고통 속에서도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잖아요. 아버지 당신과 손자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산책을 하는 동안에 우리 부자는 여러 말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표정과 미소로도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첫 손자가 태어나고 4개월,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인 한겨울에 결국 당신은 세상과 이별을 했죠. 강한 정신력을 가진 아버지가 암과 싸워 이겨낼 줄로만 알았던 제 생각은 순식간에 바람처럼 날아갔었죠. 아버지 당신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하고, 제 꿈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지지받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있었는데 말이죠.


이제는 당신이 잠들어 있는 곳에서 손자손녀와 함께 만나죠. 첫째는 할아버지와의 기억이 거의 없지만 산소를 찾으면 “할아버지, 저 우성이 왔어요! 잘 계셨죠?”라고 할아버지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둘째도 오빠를 따라서 인사를 하죠. 인사를 하고 나면 저와 아이들은 봉분에 자란 잡초를 직접 손으로 뽑으면서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죠. 우리는 짧은 순간에도 서로 마음으로 대화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당신은 손자 손녀가 커가는 모습에 흐뭇해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그렇죠?     


저도 이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죠. 어른이 되려면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 역시 부모가 되고 나서부터 부모님을 더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형제들에게 주었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값진 것이었는지 매일 느끼고 감사하고 있어요.  


어머니는 포근함과 안정감을 주었다면 아버지는 당당함과 용기를 제게 주었어요. 아버지와 함께 많은 시간을 나누지 못했던 저는 유년시절이 그립고 아쉬워요. 아버지!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즐겁고 행복한 놀이터가 되고 친구가 되기로 했어요. 아이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길잡이가 되고, 아이들이 꿈이 생겼을 때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멘토 같은 아버지가 되려고 다짐했었죠. 아이들에게는 편하지만 가볍지 않고 권위를 가지고 있지만 무겁지 않은 아버지가 되겠어요. 그렇게 아버지 당신에게 받은 사랑을 저는 아이들에게 아끼지 않고 표현하고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단지 아버지 당신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 안타깝고 그리울 뿐이죠.

아버지 항상 지켜보고 계시죠? 아버지는 제 눈앞에는 없지만 제 옆에 항상 존재하는 거 아시죠? 든든한 지원군처럼 말이죠. 이제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해두었던 아버지의 기억을 자유롭게 해줘야겠어요.     

아버지 감사합니다.


제가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 당신을 더 많이 생각하고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으로 저희를 키우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저 자신은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추억이 될지 생각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저희 4가족은 매일 긍정의 방향으로 올라르게 성장해 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초록감성 우성아빠 황성한

<기적의 아빠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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