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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ius Jun 17. 2024

바보와 천재의 한 끗 차이

Slight difference between fool & genius

첫째 아이가 말을 많이 더듬는 편이었다.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영유아기에 나는 내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많이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5살에 받은 영유아 검사에서 '발달 정밀검사요망'이라는 결과를 받고 뒤통수를 세게 맞은 뒤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언어 및 인지가 16개월이나 더디다는 판결문을 받았다. 심판대 앞에 선 기분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받으며 우쭐하여 '나는 천재'라고 하던 일개 학생이었던 나는, 엄마로서는 빵점, 어리석은 바보였다. 물론 육아는 열심히 한다고 잘해지는 것은 아니나 아이에게 조금 더 신경 써 주면 이런 결과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책도 많이 하며 눈물의 밤을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감성에 젖어 나 자신을 자책하다가도 빠르게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T이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며 많은 어려운 상황들을 마주하게 되어서 그런지 현실 직시가 빠른 성향으로 바뀌게 된 것 같다. 그렇게 40%의 F성향과 60%의 T성향을 가진 나는 해결책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필요한 것은 행동력이다. 머리로 생각하는 나보다 빠른 행동력과 실천력을 가진 신랑은 집 근처 아동발달센터를 찾아 우리 아이의 발달 선생님이 되실 분과의 시간약속까지 잡아두었다.


그렇게 센터를 일주일에 두 번씩 하원하면서 데리고 다녔다. 센터를 다니면서 알게 된 점은 그곳엔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들 곁엔 훌륭한 어머니들이 함께였기에 언어 말고도 다른 재능을 가진 아이들도 많았다. 누구나 어려움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각기 그 어려움을 담은 그릇의 크기는 달라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과 어려움이 주어진다고 한다. 그분들의 그릇에 비해 나의 그릇은 정말 작다고 느껴질 정도로 센터에 아이들 데리고 다니며 내가 오히려 많이 배운 것 같다. 또, 두 번째로 알게 된 점은 아이의 더딘 발달은 꼭 언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급한 성격이었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아이의 머릿속에는 단어가 정말 많다고 하셨고 가끔 깜짝 놀랄만한 단어를 사용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각 상황에 맞게 옳은 단어가 뭔지 판단하는 부분이 미숙하여 이를 위해 성격을 차분하게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던 아이는 점차 차분히 앉아서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수업이 끝나고 아이가 좋아하는 블록놀이를 할 수 있어서 열심히 수업에 참여한 것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 외에 차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던 아이는 선생님의 말을 열심히 듣고 대답도 하기 시작했다. 수업은 소근육 수업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문제 해결 능력, 창의성 및 공간 인식도 개발을 위함이었다. 8살이 될 무렵에는 사회성도 고려하여 다른 친구와 합반하여 수업하기도 하였고, 대전어린이회관에서 주최하는 집단상담프로그램에도 주말마다 참여하였다. 또, 집에서는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도 들이기 위해 학습지도 시작하였다. 아이가 당시 다니던 교내 어린이집 선생님께서도 처음에는 많이 걱정하셔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나 상담도 추천해 주셨고  점점 나아지는 아이를 보면서 같이 기뻐해주셨다. 그렇게 정말 많이 걱정했던 첫 초등학교 생활을 잘 시작하나 싶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학교에서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끈이질 않았다.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습니다."

"오늘은 울면서 집에 가겠다고 뛰쳐나갔습니다."

"친구가 놀려서 청소도구함 속에 들어가서 울며 나오질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선생님께 죄송하고, 아이에게도 미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눈물이 많은 아이에게는 절대 내색할 수 없었다. 내 미안한 마음이 들키는 순간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서 조차 자기 연민에 빠져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그래서 오히려 더 엄격하게 아이에게 대했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첫째 아이의 책가방 챙기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갓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이의 책가방은 항상 연필과 필통이 따로 놀았다. 필통은 그저 연필을 담아두었던 함이었을 뿐, 하교를 한 아이의 책가방 자체가 그냥 필통이었다. 연필을 깎아서 필통에 넣으려 하다가 아이의 필통에 적힌 삐뚤빼뚤한 문구를 발견했다.


'나는 바보다.'


너무 속상했다. 이성의 끈을 놔버리려는 이성세포를 붙잡고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왜 바보라고 생각하니?"

"몰라요. 친구가 바보래요. 내가 말 못 한다고 바보래요. 나는 잘하는 게 없어요..."


그러곤 또 속이 상했는지 울어버리는 아이였다. 내 아이에게 바보라고 한 그 친구보다 이 상황에서 울어버리는 아이에게 더 화가 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알 것도 같았다. 이 아이는 분명 2년 동안이나 센터도 다니고, 집에서도 엄마랑 학습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자기주도 학습등 여러모로 노력했다고 생각했지만 고작 인생 8년 차인 자신의 또래에게 그런 평가를 받았다는 게 속상했을 것이다. 내가 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터무니없이 하찮을 때 나 자신에게 속상해서 울던 내 모습이 내 아이와 교차되었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나도 옛날로 돌아가서 나 자신에게 속상해하지 말라며, '너는 바보가 아니야!'라며 최선을 다해 조금만 더 노력하면 최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조차도 너무나 뻔하지만 '달콤한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는 이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음을 잘 알기에 무작정 '너는 최고'라며 위로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여 만들어 전시해 놓은 포켓몬 나노블록들이 보였다.


"아들, 말은 조금 더듬어도 괜찮아. 조금 더 천천히 말하다 보면 말실수도 덜 하게 되어있어. 그 부분만 조금 더 노력해 보자. 알겠지?"

"네...."


하지만 아이의 목소리에는 아직 풀이 죽어 힘이 없고 울먹이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의 주제를 바꾸었다.


"참! 저번에 만들어서 엄마에게 선물한다던 거북왕 블록은 다 만들었니?"

"(갑자기 자신감의 찬 목소리로) 당연하죠! 3,000개가 넘는 조각들을 다 맞췄다고요!"


아이가 다 만든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조그만 손으로 14세 이상에게 권장하는 조그만 블록들을 어른이 보고 맞추기도 어렵고 힘든 도면을 보고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도 놀랍지만, 한 자리에서 진득하게 앉아서 무언가를 하기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나노블록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혁명 같은 놀이였다. '너는 그것도 혼자 해냈잖아! 넌 정말 최고야!'라는 말 대신 아이가 스스로 자기가 멋진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말하게 해주고 싶었다.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 포켓몬 블록은 네가 반에서 제일 잘하잖아! I'm so proud of you."

"저는 레고도 잘하고 로봇제작도 잘해요!"

"그래, 이 필통에 써놓은 '난 바보다'라는 말이나, 친구가 너에게 한 말은 사실이 아닌 거겠네. 그렇지?"

"맞아요.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바꿀 거예요!"


2년이 지난 지금도 낡은 그 필통은 아직도 아이 책상에 자랑스럽게 놓여 있다.


맞아. 너는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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