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ary after discipline
훈육을 한 날은 한 잔 하는 날이다.
나는 술도 잘 못하고, 마셔도 아이들을 재우고 육퇴를 하고 난 뒤, 신랑이랑 맥주 한 캔 정도 하지만 오늘은 고된 훈육을 마친 후이니 올해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 온 25도가 넘는 위스키를 오픈했다. 아마 내일이면 고작 한 잔의 위스키로 잔뜩 취해 이 글을 쓴 내가 부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11살, 9살, 6살 아이들을 키우는 아이 셋 워킹맘.
때론 뿌듯하기도 하지만 때론, 아니 거의 항상 힘들다. 항상 남에게 싫은 소리라곤 해본 적 거의 없고, 같은 학급 교우에게도 잔소리하기 싫어서 그룹 프로젝트도 항상 혼자 다 했던 내가, 25살, 크리스마스 같은 나이에 결혼해서, 27살, 아직 청춘인 20대에 첫 아이를 낳고 30대 초반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오늘도 내 목숨보다 소중한 내 아이에게 그 싫은 소리를 해야 했다.
우리 집에서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1. 거짓말하지 않기.
2. 어른 공경하기 (말씀 잘 듣기).
3.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오늘 훈육을 시작한 이유도 첫 번째 항목을 지키지 않아서였다.
아이의 책가방에서 내가 모르는 사탕들이 5개나 튀어나왔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을 때 아이는 처음엔 선생님이 주셨다고 했다. 아무리 칭찬을 많이 받았다 해도 사탕을 5개나 주는 선생님은 없다고 생각해서 한 번 더 물었을 때는 친구가 주었다고 했고, 또 한 번 물었을 때는 자기 돈으로 샀다고 했다. 계속 이야기가 바뀌는 아이가 이상했고 혹시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아이는 결국 이실직고를 했다.
"사실은... 학원에서 선생님이 한 개 주셨는데 더 먹고 싶어서 통에서 더 집어 왔어요..."
아이들에게 나는 항상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고 가르친다. 어떻게 보면 어떤 이에게는 "뭐, 학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 주려고 한 사탕 더미에서 아이가 몇 개 가져온 건데?"라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자신의 것이 아니면,
주인이 없는 물건이라도,
땅에 떨어진 것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이라도,
절대 손대지 말라라고...
나에게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금은 사탕 고작 4개를 욕심내서 가져왔더라 하더라도 이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다른 남의 물건을 더 크게 탐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경찰서에 전화했다. 물론 늦은 시각이었고 바쁘신 경찰관 선생님들께 전화하는 대신 타지에서 야근을 하고 있는 신랑에게 전화했다. 이 상황에 대한 간접적인 전달이기도 했다.
엄마: 안녕하세요 선생님. 경찰서죠? 아이가 사탕을 4개를 학원에서 허락 없이 가져왔는데 이러면 감옥에 가야 하는 거죠?
갑분 경찰이 된 아빠:???
영문도 모르는 신랑과의 전화를 끊었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엄마의 메소드 연기에 속은 아이: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차라리 손들고 벌 설게요. 제발 감옥은 안 돼요.
어디서 본 건 있는지 감옥은 나보다 무섭나 보다. 각자 자기 방에 있던 다른 아이들도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기 시작한다. 맨날 싸워도 이럴 때는 우애가 좋은 남매사이다.
훈육할 때만 엄격한 관리자(ISTJ) 엄마: 엄마가 뭐라고 했니? 거짓말하면 안 되고 남의 물건을 탐내면 안 된다고 했지? 왜 가져온 거야?
아이: 사실은.. 더 먹고 싶은데 집에서는 못 먹으니까 가져왔어요.
아이들에겐 단 것 안주는 초컬릿광 엄마: 아무리 먹고 싶다고 해도 너의 것이 아닌 것을 타당한 대가도 없이 가지려고 하는 것은 욕심이고 잘못이야.
엄마 닮아 건망증 심한 아이: 알고 있어요..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잖아요. 다시 돌려놓으려고 했는데 깜박하고 집에 왔어요.
'아.. 그래서 나머지 사탕들을 안 먹고 가방에 그대로 있었던 거구나... '
"증거인멸"도 하지 않은 아이의 치밀하지 못한 순수함? 에 웃음이 삐질삐질 나오려 했다. 하지만 건망증인지, 주의력 결핍인지, 그냥 관심이 없는 건지,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은 관심을 끄게 되는 아이의 무심함에 나는 답답한 마음으로 그 웃음을 꾹 눌렀다.
웃참 성공한 엄격한 관리자 엄마: 그럼 너의 잘못을 잘 알고 있지? 오늘 십계명에서 세 개나 어겼어. 남의 물건을 탐냈고, 그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왔고, 엄마한테 거짓말하며 그 사실을 숨기려 했어. 남의 물건을 가져오면 나중에 커서 도둑이 되고, 거짓말하면 사기꾼이 되어 감옥에 가는 거야!
교도소 영상을 하나 찾아 보여준다. 그 영상에는 죄수들이 감옥에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등 힘든 일을 하고는 밥을 먹는 장면,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다고 교도관에게 맞는 장면이 담겨있었고 아이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갔는지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사탕 몇 개일지라도 아이의 첫 도둑질이 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처럼 지금 아니면 나중에는 더 큰일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몇 가지 시켰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하여 잘못을 하지 않으려 어떤 노력할 것인지 쓰게 했다. 반성문 같은 것이지만 잘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쓰게 하면 그 계획 아래에 더 책임감 있게 살아갈 것이라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해놓고 거짓말하는 엄마: 경찰 아저씨 곧 오실 거야.
아이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마음이 아프지만 원래 태생이 F라서 눈물이 많은 나도 훈육에 있어서는 단호해야 하는 T라 더 냉정해지기로 한지 오래다.
T인척 하는 F 엄마: 아무리 잘못을 뉘우쳐도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해. 경찰서 가서도 경찰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밥도 잘 먹어야 해. 거짓말하지 말고 항상 진실되게 사는 법을 배워와라.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경찰서 갈 준비를 하라고 하니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책가방에는 감옥? 에서 읽을 책과 문제집을 챙겼다.
'으이그.. 집에서 평소에 시키는 것 좀 잘하지.' 이 와중에 공부할 것들만 챙기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면서 재밌어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그리고 나는 분리수거할 것들을 챙겨서 나왔다. 뭐.. 분리수거도 할 겸 감옥 대신 잘못에 대한 대가가 분명 있어야 하니 분리수거로 대신하였다. 아이와 같이 분리수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그래도 엄마와의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최선을 다했고, 분리수거를 마친 뒤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에 들어왔다.
드디어 집안일 하나 마쳐서 기쁜 엄마: 네가 교도소에서 해야 할 것들, 다짐한 것들, 엄마한테 약속한 것들 집에서 할 수 있겠어?
교도소 안 가도 될 생각에 기쁜 아이: 네? 네! 이제는 절대 남의 물건 손대지도 탐내지도 않을 거고, 거짓말하지 않고 엄마 말씀도 잘 들을 거예요.
그렇게 2시간 가까이 계속된 훈육을 마친 후에야 아이는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나는 집안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위스키를 한 모금 마셔봤다. 식도가 타는 것 같았지만 '아이를 너무 심하게 혼낸 건 아닌가?'라는 죄책감에 타 들어간 내 마음 때문인지 아무렇지 않았다. 내일 아침으로 먹일 카레를 만들기 위해 고기를 볶은 후 야채를 썰어 넣고 만들었다. 위스키가 너무 도수가 세서 안주가 필요했던 나는 야채를 썰면서 당근 몇 조각을 집어 먹었다.
휴... 아직 건조 중인 빨래도 개고 자야 하는 데... 벌써 11시 37분이다. 집안일을 모두 마치고 씻고 나면 오늘도 1시 넘어서 잠들 것 같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은 나에게 훈육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나는 당이 떨어지면 초콜릿으로 충전하면서 아이들에게는 몸에 안 좋다는 이유로 단 것을 최대한 단절시키는 나의 모순적인 교육방식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기도 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같이 들었다. 내일부터는 단 것을 조금 더 허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