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 relay game during road trip
추석이나 특별한 날에 장거리 운전을 하게 되면 나는 운전에 부담감보다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유익하게 보낼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아무래도 워킹맘이다 보니 아이들과 조금 더 보낼 수 있을 때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싶기도 하고, 이제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 둘째가 2학년, 막내는 (8살 같은) 6살이라서 그런지 교육에 대해 더 생각하는 것 같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첫째가 너무 산만하여 학교생활하면서 다른 학급친구들과 트러블이 있지는 않을까,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었고 선생님 연락이 오는 날에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수도 없이 했었다. 과연 내 아이가 ADHD인가를 결정짓는 심판대 앞에서 생존은 하였지만 주의 산만함을 누그러뜨릴 운동으로 수영이 좋다고 하여 몇 개월을 다닌 지금 시점에 아이는 많이 차분해졌다. 덕분에 운동신경도 많이 늘고 키는 더 자랐으며 수영 후 몸이 피곤하여 그런지 집에서도 차분하게 공부를 한다.
그래서 새로운 태스크를 내줄 수 있었고 요즘은 영어단어를 외우게 하고 저녁에 집에 와서 다른 학습지를 봐주며 영어 단어 시험을 본다. 아이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모국어는 한국어이기 때문에 초등학생이 되어 한국어로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기 전까지는 영어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국어라는 기본기가 완벽하게 자리 잡혀 있어야 다른 언어도 익혀 2개 국어, 3개 국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어 유치원은 커녕 영어가 더 편했던 나조차도 아이들 앞에서 한국어로만 의사소통 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영어로 대화를 처음 시도 했을 때는 아이들의 거부반응이 컸다.
엄마: Seriously guys, I told you to do your kumon before I get home. (아, 진심. 얘들아! 엄마 퇴근하기 전까지 구몬 다 끝내놓으랬잖아.)
첫째: 아이~ 엄마, 영어 하지 마세요.
둘째: 난 영어로 하면 말 안 할 거예요.
셋째: 저 home 알아여!
그나마 셋째는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고 잠자기 전에 아이들과 짧은 영어책을 한 권씩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 각 캐릭터마다 목소리도 바꿔가며 연기해야 했고 아이들은 영어가, 나는 연기력이 늘어갔다.
초등 교육에서 3학년부터 영어를 의무로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나는 첫째 아이에게 합법적으로?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4학년 1학기에 들어서는 조금 차분해진 아이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외에도 추가로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는 등 본격적으로 한국식 주입식 교육에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나 역시 한국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 때 배운 교육과 방법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공부하며 더 많은 지식들을 이해하며 익히는 데 도움이 많이 됐었다. 수학 공식 하나를 일단 이해하고 외워야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어 같이 언어를 배우는 경우는 어쨌든 단어를 외워야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하게 외우게 하기 위해서 무작위로 외우게 하는 것보다 비슷한 뜻이나,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단어를 내주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각 알파벳이 내는 소리인 Phonics(파닉스)를 알려주고 각 단어의 소리까지 익히게 하였다. 파닉스는 요즘 영어 유치원이 아니어도 기본적으로 가르지는 듯 하나 첫째가 유치원을 다닐 때는 입학하기 전에 한국어를 먼저 익히게 하는 게 너무 급했던 시기라 한국말하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그렇게 파닉스와 함께 단어를 외운 지 몇 달이 지났고 이제는 외우지 않았던 단어의 스펠링까지 유추할 수 있어서 단어를 외우는 양도 늘어났고 더 쉽게 익힐 수 있게 되어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귀성길에 영어로 끝말잇기를 한다.
한국판 끝말잇기와 룰은 비슷하다. 각 사람이 번갈아가며 그전 사람이 말한 단어의 마지막 알파벳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하면 된다. 아직 2학년, 6살인 딸들은 스펠링을 잘 모르기 때문에 알고 있는 단어만 사용하고, 첫째는 그들이 말한 단어들의 스펠링을 대신 말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나랑 대결하는 구도로 하면 당연히 내가 이길 것이 뻔하다며 아이들의 사기(士氣)가 떨어지는 것 같아서 서로 대결하도록 하고 나는 진행을 하였다. 일등 한 사람이 도착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 동안 게임이나 태블릿을 조금 할 수 있도록 했다. 1등은 20분, 2등은 10분, 3등은 5분.
영어 까먹을 까봐 툭하면 영어 하는 미쿡인 엄마: Okay, we are gonna get the game started now. Let's begin with the very first word, butterfly.
엄마의 번역가 첫째: 얘들아 이제 시작한데, 첫 번째 단어는 버럴플라이~ 스펠링은 b, u, t, t, e r, f, l, y. 앞에 butter은 버터인데 나비가 좀 팔랑팔랑하며 느끼하게 날아서 그런가 봐~
나도 영어 까먹지 않으려고 혼자서 영어로 대화할 때가 많은데 첫째도 혼자서 생각하는 것들을 입 밖으로 내뱉을 때가 많다. 나는 후천적으로 의도적 수다쟁이라면 첫째는 그냥 수다쟁이다.
아.. 시작부터 이런 시답지 않은 아저씨 개그에 터졌다. 자존심 상한다.
이런 거에 터져서 자존심 상한 엄마: 풉
갑자기 나비에 대해 설명하는 파브르 둘째: 크크 느끼하게 어떻게 날아~ 나비는 더듬이를 가지고 냄새를 맡고 방향을 찾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느끼하게 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어. 버터를 좋아하나?
게임을 진행하는 4학년 아조씨 첫째: 자, y로 끝났으니까 다음 셋째.
생각보다 수준 있는 단어를 말하는 6 짤 막내: 음.. 옄크 (yuck)!
놀란 엄마: (응? 옄크를 안다고?) 뜻도 알고 있는 거야?
품격 있는 막내: 당연하죠! 맛없을 때 하는 말이에여.
품격 없는 첫째: 그런 거 하지 마~ 요요해 요요! 내가 스펠링 말해야 된다고!
말 잘 듣는 막내: 알겠어.. 요요(yoyo)! 이건 나도 스펠링 알아. y, o, y, o. 이제 언니 o로 시작하는 단어.
영원한 첫째의 천적 둘째: 음.. 오빠 닮은 o징어! 캬캬캬캬
갑자기 오징어가 된 첫째: 내가 왜 오징어야!!
나름 예의 바른 설명충 둘째: 왜! 오징어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연체동물이라 몸도 유연하고 오빠처럼 수영도 잘해서 물속생활에 아주 적합한 동물이지.
타코야키를 좋아하는 첫째: 차라리 문어를 하겠어.
오징어나 문어나 둘 다 못생겼다 생각하는 둘째: 오케이~ 억토퍼스(octopus).
민머리 연체동물 첫째: o, c, t, o, p, u, s 그리고 스펠링 비슷한 october은 10월. 근데 문어는 다리가 8개인데 10월은 10인데 왜 octo 에요?
나도 전에 궁금해서 찾아봤던 건데 아는 거 물어봐줘서 다행이다.
모르는 거 물어볼까 봐 항상 겁나는 엄마: 그건 octo- 가 원래 8을 나타내는 단어를 시작하는 prefix라는 건데 옛날 로마 달력은 3월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10월이 여덟 번째 오는 달이기 때문에 October인 거야.
그렇게 영어 끝말잇기를 시작하고 수다쟁이 아이들 세명, 한 턴을 도는데 10분 이상이 걸린다. 그렇게 핑퐁핑퐁 몇 번 턴을 돌고 나니 한 시간이 지났다. 대화를 하며 게임하니 아이들도 지칠 줄 모르고 재밌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둘째와 셋째도 자연스럽게 알파벳과 스펠링, 파닉스를 익히게 된다.
단어 고갈에 조급해진 첫째: 아 y 또 나왔어. 이제 없는 거 같은데.
구세주 둘째: 아냐. 아직 있어. 내 차례지? 요트!
진도가 안 나가니 폭주하는 셋째: Yes and next snake.
중재자 엄마: 언니 차례니까 요트로 하자. 근데 이거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스펠링이 아닐걸?
구세주인 줄 알았는데 그냥 9세 둘째: y, o, t... 그리고 '으'로 끝나면 보통 알파벳 e라고 엄마가 그랬으니 e?
애들이 모르는 걸 알아서 신난 엄마: Not even close but nice try, though. 전혀 아니지만 시도는 좋았어 ^^
아 몰랑 첫째: y, #$*@# t. 어쨌든 t로 끝나니 중간은 몰라도 되잖아요.
엄마: ㅋㅋㅋ 그래. 이번엔 너무 어려우니 알려줄게. 요트는 y, a, c, h, t. 절대 안 잃어버리겠다 그렇지? 자, 이제 막내 t로 시작하는 단어 해.
오빠가 있어서 공룡 이름도 아는 막내: 음... 티라노사우르스!
아들이 있어서 공룡 이름도 다 아는 엄마: 오! 티라노사우르스 할 거야 아니면 줄임말인 티렉스 할 거야?
마지막 열쇠를 쥔 막내: 음...
막내를 싫어하는 첫째: 내가 사랑하는 울 동생~ 티렉스 해주세여~~
오빠를 싫어하는 막내: 음... 티라노사우르스!
기대도 안 했던 첫째: 아오.. t, y, r, a, n, o...
얄짤없는 엄마: 땡. 너는 공룡 박사가 그것도 모르냐? 실망이야.
아닌 건 아닌 둘째: 엄마 그건 좀 아니죠. 박사라고 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힌트 좀 주세요.
이상한 힌트를 주는 엄마: 옼케이. 티라노긴 한데 뭔가 공룡의 왕이라 그냥 티라노가 아니라 티라노!!!!! 거든? 특히 '노'에 힘이 싣렸으면 좋겠어.
지칠 줄 모르는 첫째: 오! 알겠다!!!! t, y, r, a, n, n, o, s, a, o
게임을 끝내고 싶은 지친 엄마: 땡. 지금부터는 동생들도 남은 스펠링 유추해서 먼저 맞춘 사람이 1등 하자.
겁 없는 막내: 저여! t, y, r, a, n, n, o, s, a, 그리고 '우'니까 yu?
살짝 아쉬운 승부사 첫째: 알겠다! y 아니고 그냥 u, 그리고 루스니까 r, u, s, e?
영어는 한국어와 다르게 파닉스가 항상 일정한 패턴으로 성립하지 않아서 암기만이 답인 경우가 많다. 왜, 어떤 경우는 예외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서 아쉬울 때가 많다. 한국어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틈새시장 공략가 둘째: 나는 뒤에 'e' 없이 s, a, u, r, u, s
나도 없는 걸 가진 둘째가 부러운 엄마: 오 센스. 정답.
그렇게 하여 이번 귀성길에도 도착 30여분을 남기고 아이들과 대화하며, 놀이식 공부하며 시간을 잘 보냈다. 남은 30분 동안은 아이들에겐 꿈같은 '진짜' 게임할 시간이, 나에게는 꿀 같은 사색(思索)의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부터 한마디도 안 해야지.'
I 인 엄마라도 아이들과 함께면 E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