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 육아 그리고 번아웃

Burned out as a mom with three kids

by seanius

최근에 번아웃(burnout)이 살짝 왔었다.


번아웃의 징후로는 exhaustion(지침), dreading work(일에 대한 두려움), trouble sleeping(수면 장애), depression(우울감), short temper(급발진) 등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징후들이 순차적으로 연속되어 찾아오는데 급발진 -> 우울감 -> 다른 일 집중부족 -> 집중 부족으로 인한 업무 시간 증가로 인한 지침 -> 이 모든 것에 대한 현타와 피로로 수면 장애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내가 나보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었다.




나는 성격이 무던한 편이다.

이를 위해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이유는 화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화를 내면 그 화가 결국은 내 생각과 감정에도 큰 영향을 주고 스트레스 호르몬도 상승한다고 알려져 있어 결국 내가 손해니까. 내 짧지만 수년간의 노력 끝에 나는 내 감정조절 실패로 인한 화를 통해 받는 스트레스를 최대한 차단하며 살아왔고, 그 결과 큰 화를 내지 않고 나름 살아왔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해도,

'저 사람은 나에 대해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원하는 것을 못 이룰 때도,

'다음에 더 열심히 하면 되지 뭐...'


어린 나이에 이민을 간 미국 학교에서 동양인이라고 무시를 받을 때도,

'내가 너보다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거야!'라고 생각하며 학창 시절을 잘 보냈었다.


작고 큰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큰 좌절 없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나의 무던함이었다. 어떤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결과만큼 나오지 않아도 '그래도 나는 열심히 했으니까 괜찮아!'라고 셀프 자축을 하였다. 이게 어떻게 보면 compromise(타협), 어떻게 보면 compensation(보상) 일 수 있지만 저 생각을 하고 실패 후 다시 일어나 달릴 원동력과 에너지 요인으로 사용한다면 보상이고 나에게는 그렇게 작용하였었다.


하지만 육아는 달랐다.

육아에는 타협보상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이쁘다고 물고 빨고 했던 이 녀석들은 초등학생이 되어서는 정말 오지게 말을 안 듣는 빌런이 되었다.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냥 내 육체가 조금 힘들면 끝나는 일들이었다.

분유 한 통을 모두 쏟아서 모래밭처럼 만들어 놓고 그 위에서 분유를 퍼먹던 첫째 아이.

그걸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둘째 아이.

내 화장대에 화장품들로 립스틱은 크레파스 삼고, 파운데이션 팩트는 찍는 물감 삼고, 방 전체를 도화지 삼아 예술가 재능을 마음껏 펼치던 아이.

온 집 안을 화장실 삼아 배변 훈련을 하던 아이까지..


막내까지 배변훈련을 마친 지 여러 해가 지난 지금은 다행히 온 집안에서 소변 지린내가 나지는 않지만,

화장실만큼은 매일 청소를 해줘도 아직 실수를 하는 영유아 덕분에 쉬야 냄새가 머리가 아프게 진동을 한다. 특히 요즘 같이 더운 여름에...


물청소도 바로바로 해줘야 하는데 아침 일찍 초등학생 아이들 둘 과 같이 출근하여 저녁 늦게 퇴근하는 워킹맘의 작은 변명을 늘어놓아 본다.

분유가 그렇게 맛있나 싶어서 나도 한 숟가락 먹어봄
지금 보니 아이가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사진. 아이를 잡아야지 사진을 찍고 있다니 한심했던 과거의 나.


당시 사진들이 모두 있는 것을 보면, 그때의 나는 아이들의 그 모습들까지 귀여워서 사진 찍을 여유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자라고 체구도 커지다 보니 분유통 쏟고 내 화장품으로 장난하는 것은 애교에 불과했다. 어느 날은 셋이서 장난감 활쏘기 놀이를 하다가 본인 나이보다 3살은 많아 보이는 첫째 아이의 고무활이 베란다 유리창에 명중하였고 베란다 유리창 전체에 금이 가버렸다.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활쏘기 금지령을 내려도 다른 놀이를 하다가 부순 TV만 해도 3대였다. 나는 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위험 요소 중 하나인 TV를 그냥 사지 말까도 고민했었다. 하지만 하루에 20-30분 TV를 시청하기 위해 공부와 숙제와 사투하는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 6개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래, 다치지 않은 게 어디야'하며 결국 다시 구매했었다.


분유를 쏟으면 청소기로 치우면 되는 것이고,

립스틱을 크레파스로 쓰면 내 립스틱도 하나 사고 아이의 크레파스도 하나 사면 됐었다.

아이가 방바닥에 그려놓은 그림들도 멋지다며 지우면서 아까운 생각을 했었고,

아이의 배변 훈련의 흔적들은 치우면 되는...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 아들 매우 이쁘구나^^


미운 4살, 미운 5살, 미운 6살, 미운 7살 까지도 아이들의 안전과 관련이 없다면 아이들에게 크게 혼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니 많은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이 자란 만큼 머리도 자랐는지 나에게 대들기 시작했고, 형제들끼리 싸우는 것은 기본, 싸우는 것도 과격해졌다. 둘째 아이는 오빠 무서운 줄 모르고 첫째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고, 참다 참다가 화가 난 오빠에게 한 대 맞으면 그게 억울해서 나에게 이른다. 막내는 그냥 다 이른다.


둘째: 엄마! 오빠가 내 물건 빼앗아 가요!

첫째: 엄마! 아니에요! 원래 제 것인데 얘가 가져간 것을 다시 회수한 것뿐이라고요.

막내: 엄마! 오빠가 나보고 바보얘 (아직도 ㄹ 발음이 어려운 막둥이).

첫째: 엄마! 바다같이 예쁜 보물이란 뜻이에요!

막내: 엄마! 언니가 나 무섭게 노려봐써여.

첫째: 엄마! 애들이 편먹고 나를 공격해요.


엄마!

엄마!!

엄마!!!!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빠'라는 단어를 처음 듣겠다고 아기 앞에서 재롱이란 재롱을 다 부리던 신랑을 보며 "어차피 엄마라고 할걸?" 하며 여유부리던 나였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눈물을 흘렸었다. 하지만 이 간절하고 애절했던 '엄마'라는 단어가 지금은 노이로제가 되었다.


가끔 나 좀 그만 불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 출장이 있어서 해외에 나가면 일정을 마치고 나 혼자인 호텔방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으면 노이즈 캔슬링한 것처럼 고요한 방에서 타자 치는 소리가 좋다. 원래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아이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도 육아에 지쳐 잠들 것 같은 나 자신을 일으켜서 홀로 식탁에 앉아 그 고요한 정적을 느끼곤 할 정도이다. 이젠 애들이 "엄마!" 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릴 정도다. 무덤덤하게 모든 일을 받아들였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고 내가 불려질 때마다 "왜 또! 그만 좀 싸워!"가 먼저 나가는 성난 엄마가 된 것 같아 슬프다.


화를 참으려고 콧김과 한숨을 길게 내쉬는 나를 보며,

'아.. 나는 용띠라서 콧김이 센 것인가?'

왜 친정엄마가 나랑 내 동생이 싸울 때마다 한숨을 크게 쉬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친정 엄마도 용띠라 그랬나 보다.'라고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웃어넘기려 해 본다.


아이들의 싸우고 나를 부르며 이르는 소리.

아이들이 내가 내준 문제집 풀기 싫다고 칭얼대는 소리.

아이들의 반찬 투정하는 소리.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

아이들의 "엄마, 힘내세요" 하며 노래하는 소리.

아이들의 "엄마, 사랑해요" 하는 소리.


그리고는 또 생각한다.

맞다... 나만 아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도 나에게 필요한 존재였지.


그래, 팔자 좋게 번아웃은 무슨 번아웃.

세 아이 워킹맘에겐 번아웃도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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