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빠라면 엄마랑 결혼 안 해요.

I wouldn't marry you if I were dad.

by seanius

"내가 아빠라면 엄마랑 또 결혼 안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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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신랑이랑 일본 여행을 가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건데 시부모님께서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오랜만에 둘 만의 시간을 보낸다.


부부의 대화. 사실 결혼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같다. 물론 여행을 굳이 가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주말 부부이고 둘 다 일을 하고 있으며 아이가 셋이나 있기 때문에 대화할 시간이 많지는 않다. 그리고 바쁜 삶에 너무 지쳐있었고 잠시 쉼이 필요했다.


일본 특가 항공권이 뜬 것을 발견하였고,

워커홀릭인 신랑에게 슬쩍 이야기하였고,

타지에서 외롭게 7년째 주말 부부인 신랑은 흔쾌히 가자고 하였다.


셋째 아이를 낳고 정말 오랜만에 단 둘이 여행이다. 사실 비행기와 호텔 예약한 후로도 둘 다 너무 바빠서 여행 계획을 하나도 짜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부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P 같은 여행을 하려고 한다. 내심 기대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여행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할머니 댁에서 놀고 오라는 말만 하였다.


여행 전 날, 오늘도 아이들과 "얘가 좋아 내가 좋아?" 전쟁 중이다. 아이들이 많다 보니 아이들에게 최대한 사랑을 많이 주려고 해도 부족함을 느끼는지 매일, 항상, 아마도 평생 물어볼 것 같다.


엄마: 그런 질문하면 엄마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할 수밖에 없어.

자신 있는 둘째: 오, 하셔도 돼요! 먼저 제가 좋은지 막내가 좋은지 먼저 얘기하시고요.

엄마: 네가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먼저 답변하면 말할게. 그 답변에 따라 나도 답이 달라지거든.


눈치 빠른 6살 막내는 서슴없이 대답한다.


눈치 빠른 건 박사급 막내: 난 엄마.

엄마: 역시 울 딸은 사랑이야. 나도 너무너무 사랑해!!


같은 남자라고 타지에서 혼자 있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과 안쓰러움을 느끼는 파워 F인 11살 첫 째도 20분가량 나와의 토론 (사실 실랑이) 및 고민 끝에 구몬을 하던 도중 연필로 작은 점을 찍으며 이야기한다.


화백 첫째: 자, 보세요. 여기 이 점이 미세먼지 같은 건데 이거 만큼 아주 조금 더 좋아요.

문법 따지는 브런치 작가 엄마: 목적어가 없는데? 그거 만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첫째: 아... 정말...

집요한 엄마: 왜? 뭐 이런 엄마가 있나 싶냐? 캬캬캬

첫째: 진짜 너무했어. 엄마가 더 좋다! 됐지?

엄마: 나도 우리 아들 너무너무 사랑해. 자, 이제 둘째 어린이. 답변 렛츠고. I am waiting~~~


9살이지만 어른스러운 둘째는 벌써부터 나와의 논리 싸움에서 이길 때가 많다. 오늘도 T인 그녀는 혹시 모를 아빠의 등장을 고려하려 중립 기어를 박는다. 하지만 엄마의 " 너무너무 사랑해"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둘째도 이내 대답한다.


역설가 둘째: 나도 엄마가 사실 더 좋지. 이건 어쩔 수 없는 거 에요. 아빠랑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엄마랑 더 정이 들 수밖에 없는 거지. 엄마가 해외출장 가서 아빠가 우리를 돌봐주실 때는 엄마가 보고 싶지만 아빠에게 더 감사하고 그런 거죠.. 블라 블라 쏼라 쏼라...


아빠에게 혹시라도 내가 말할까 봐 열심히 부연 설명을 해서 내 귀에서 피가 날 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귀엽다.


어그로 전문가 엄마: 알겠어. 엄마도 우리 장녀 너무너무 사랑해.

안 넘어가는 둘째: 아니 사랑하는 건 알겠고. 누구를 더 사랑하는지 이야기해 봐요.


치졸한 엄마: 엄마는 너희를 모두 너무너무 사랑하지!

둘째: 내 이럴 줄 알았지!

첫째: 엄마 비겁해요!

최연소 틈새 공략 전문가 막내: 엄마 괜찮아. 엄마 사랑해!


막내는 역시 사랑이다.


아빠를 배신하는 엄마: 하지만 확실한 건 엄마는 너희들 모두를 아빠보다 더 사랑한다는 거야.


첫째: 와, 그건 좀 아니죠! 엄마한테 실망이에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한 엄마:??? 너희를 더 사랑하는데 뭐가 실망이야?

둘째: 아빠는 우리보다 엄마를 더 사랑한다고 했어요. 아빠 불쌍해...

첫째: 내가 아빠라면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엄마랑 결혼 안 할 것 같아요. 엄마가 너무했네!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신랑이랑 둘이서 그런 대화는 많이 했었다.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면 우리 둘만 남으니 서로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억울한 엄마: 야, 그래도 내가 낳은 자녀들을 더 사랑하는 게 맞지! 내가 배 아파서 낳았는데!!

아빠 바라기 첫째: 우린 괜찮으니까 아빠를 더 사랑해 주세요.

아빠 바라기 22 둘째: 맞아요. 엄마가 우리 사랑하는 건 다 아니까요. 아빠는 아무도 없잖아요.


뭔가 뭉클하고 어린 나이에 엄마를 빼앗긴다는 마음보다 아빠에게 엄마의 사랑을 양보하는 마음이 참 넓고, 대인배 같고, 참 귀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아이들 서로서로는 라이벌 관계이지만 아빠랑은 한 팀이라고 생각 하나보다. 도대체 나 해외 출장 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하지만 이내 틈새시장을 노리고 나는 한마디 했다.


틈새 공략 전문가 엄마: 와, 그럼 엄마랑 아빠가 서로 사이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너희들을 잠깐 할머니께 맡겨 놓고 여행을 간다던지 그래도 되겠네?

막내: 그건 안 되죠! 뿌앵 (울기 시작하는 여섯 짤)

둘째: 당연히 짧게는 괜찮지만 너무 자주 그러거나 오랫동안 맡기면 이건 아동 학대니까 적당히 하시면 됩니다.

첫째: 동의합니다.

엄마: 아, 넵. 알겠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휴... 여행 하루 전날에 아이들에게 어렵게 여행 고백을 하고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는 해패엔딩 이야기.


'여행간다' 쓰고 '짐꾼이었다'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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