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딩의 끝말잇기 수준

8 year-old girl knows more words than me

by seanius


초등학교 2학년 딸내미는 끝말잇기를 좋아한다. 한글은 떼기 시작할 무렵 끝말잇기에 한참 빠져있던 2살 많은 오빠를 상대로 놀았던 것이 도움이 됐는지 이제는 어떤 단어로 상대방을 끝내는지도 모두 파악한 천하무적이 되었다.


초2 딸: 엄마, 끝말잇기 해요.


오늘 끝내버릴 상대는 나로 정했나 보다.


먹잇감 엄마: 좋아. 그 도전, 받아주지.


처음에는 핑퐁 핑퐁 잘하다가 딸이 이쯤에서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 회심의 공격을 했다.


초2 딸: 기? 기쁨. 쁨떼기 없음.


순간 '응? 쁨떼기는 뭐지?' 하고 생각했다. 아마 쁨으로 끝나는 단어가 나오면 아이들끼리 피해 가는 단어로 만든 것 같다.


엄마: 그런 거 할 생각도 없었음. 쁨나무.

초2 딸: 그런 게 어딨어요!

엄마: 있거든? 사전 찾아봐!

초2 딸: 그럼.. 음.. 무정란.

엄마: 오. 무정란이 뭔지 알고 쓴 거야? 뜻 모르면 쓸 수 없음.

초2 딸: 당연히 알죠. 수탉의 정자 없이 암탉이 혼자 낳은 알이죠. 그래서 병아리가 태어날 수 없어요.


?????

뜻까지 정확하게 안다고? 조금 놀랐지만 딸 아이가 기특해서 웃음이 삐져나왔다.


엄마: 그거 어디서 배운 거야?

초2 딸: 만화책에서 읽었어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허락되는 만화책이 있다. 과학이나 역사, 수학 등 재미있게 풀어놓은 만화책은 허락하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선 만화책을 본다가 아니라 읽는다로 표현한다.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보면 나중에는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함께 맞춤법을 대충 훑게 되게 때문에 고학년 때는 별로 좋지 않지만 그래도 덕분에 언어가 조금 느렸던 첫째도 책과 같이 만화도 읽게 하니 속독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초2 딸: 엄마, 빨리 '란' 하세요.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딸아이 입에서 무정란과 함께 정확한 뜻이 나오는 순간 내가 이미 졌다.


패배한 엄마: 란? 란(난) 말이야... 쌀과자 와그작 씹어먹는 우리 딸이 너무 좋아.


여유롭게 쌀과자 씹어먹던 딸: 끝. 내가 이겼당!


애처로운 엄마: 뭐야, 한 번만 봐줘

자비로운 딸: 오케이. 아지랑이

엄마: 이빨

초2 딸: 빨래

엄마: 래미콘

초2 딸: 콘옥수수

엄마: 그게 뭐야. 콘도 옥수수고 옥수수도 옥수수인데? 옥수수 옥수수냐?

초2 딸: 저도 한 번만 봐주세요. 이건 상도에 어긋난다고요!


순간 상도라는 단어에 당황한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 내가 초등학교 때 저런 단어를 썼던 가...?


당황한 엄마: 어? 어... 음.... 수염


초2 딸: 염산

엄마: 산수

초2 딸: 수영

엄마: 영수

초2 딸: 이름 안 됨!!!

엄마: 그냥 해. 그냥 해

초2 딸: 어휴... 못 말려. 이름 된다고 했죠? 수아.

엄마: 아주 못 말리는구나?

초2 딸: 엄마도 거든요? 못 말려!! 으휴

비겁한 엄마: 엄마 방금 한 거야! ''로 시작하는 거! '주 못 말리는구나'. 이제 네가 ''로 시작하는 말 해.

초2 딸: 그런 게 어딨어요!!! 반칙! 삑!

웃겨 죽는 장난꾸러기 엄마: 푸하하하하

초2 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트륨. 진짜 끝.


응? 나트륨을 안다고? 순간 당황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저학년 딸은 더 이상 내가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정식으로 나의 끝말잇기 상대로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다.


치졸한 엄마: 나트륨이 뭔데?


엄마보다 나은 딸: 소금에 들어있잖아요!


나트륨을 안다고?


어렸을 때부터 책 많이 읽을 걸 하고 후회한 적이 많아서 매주 도서관에 가고 아이들에게 그 주간에 읽은 책에 대한 독서록 쓰게 한 보람을 느낀 날이었다. 그래도 질 순 없지.


치졸한 과학자 엄마: 륨프늄. 원소번호 187로 임시이름은 운옥트셉튬. 내가 이김. 히히


초2 상대로 끝말잇기 이겼다고 좋아하는 나다.

왠지 시원한 승리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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