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여행 Day 1 - 미국 LA
에어프레미아 10시간 50분가량의 비행을 마치고 여기,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했다. 항상 저가 항공으로 가까운 곳만 다녔던 나였기에, 기내식은 처음 접해봤다. 굉장히 여유 있는 척, 다년간의 경험이 있는 척을 하며 첫 번째 기내식 시간을 맞이했다. 매운 해산물 요리와 밥 혹은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선택할 수 있었고 직전에 마지막 제대로 된 한식이다!라는 마인드로 김치 순두부찌개를 먹고 왔기에 스파게티를 청했다. 어느 음식이든 맛있어하는 나는 이번에도 역시 맛있었다. 정확히는 돈 주고 사 먹진 않지만 준다면 한 끼를 잘 채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맛? 그렇게 첫 기내식을 야무지게 마무리한 후, 약 11시간가량을 어떻게 가지라는 고민도 무색하게 바로 기절을 해서 다음 기내식까지 쭉 잠에 들었다(좌석 넓은 에어프레미아 최고). 두 번째 기내식은 김치찜과 닭고기 요리였다. 닭은 여행하면서 자주 먹을 듯하여 김치찜으로 했고, 역시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비행기에서 내리고 내게 가장 떨렸던 입국심사를 받으러 갔다. 나는 미국 아웃 티켓이 한국이 아닌 멕시코이고, 최종적으로 브라질에서 아웃하기로 되어있어서 확신의 프리패스 상이 아니었다. 미국만은 일정 정하고 아웃 티켓까지 잡고 가야 안전하다는 사람들의 말에 따라 멕시코 티켓을 예약을 한 후 출발을 했는데 이것이 나를 살린 것 같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처음 왔는지, 얼마나 머무를 건지 간단하게 물어본 후 지문을 등록하길래 ‘아, 간단하게 패스구나!’라는 기쁨을 느끼고 나서 바로 아웃 티켓을 보여달라고 했다. 잘못한 건 없지만 여러 서류들을 보여 달라 하니 괜히 잘못한 것 없지만 긴장을 가득한 상태로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그때부터 마음을 한결 놓으며 발걸음이 가벼운 상태로 짐을 받았다.
한국보다 조금 쌀쌀한 날씨여서 후드를 꺼내 입고선 밖을 나섰다. LA의 공항은 어떻게 생겼을까! 각 나라들의 공항을 멋들어지게 디자인 해놓는데, 여긴 어떠할까!라는 기대감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뗐다. ‘Welcome to Los Angeles’, ‘Hollywood’ 여러 판촉물들을 보며 마음을 설레하고 공항 밖을 나섰다. 이게 웬 걸 정말 본분의 충실한 공항이었다. 밖을 나서자마자 바로 도로가 시작되었고 여러 버스들이 다녔고 도로 반대편에는 주차장을 공사하고 있었다. 대문짝만 한 LA 로고는 없는 것인가! 상징물은 없는 것인가! 버스터미널 같은 느낌을 받고선 한참을 당황했다(후에 알고 보니 내가 도착층에서 있어서 그러했고 다른 층들로 가면 여러 가지 것들이 있다고 한다). 하물며 유심 카드를 파는 곳도 찾지 못한 채로 공항 와이파이에 의존한 상태로 우버를 불러 숙소로 이동했다. 30달러 정도 들었고, 마음 같아선 대중교통 타고 이동했겠지만 그 큰 짐을 들고 북적이는 버스에 타 불편을 주는 어글리 코리안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국민성을 드높인다는 일념하나로 30달러를 지불했다.
체크인 시간 전에 숙소에 도착하여 짐만 잠시 맡겨놓고, 바로 나섰다. 이때 큰 실수를 했는데, 너무 신나서 가볍게 나가자!라는 마음으로 신발을 안 갈아 신고 그대로 쪼리를 신고 밖을 나섰다. 그날 나는 3만 보를 쪼리와 함께 했다. 쪼리가 닿는 발등 부분과 발가락 사이는 쓸려서 살이 벗겨졌고, 닿는 부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발날로 걸었더니 발날도 멍이 든 것처럼 띵띵 붓는 사태를 만들었다. 여행은 관광지가 아닌 걷다가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에 더 큰 감동을 가져오는 법이니까.라는 가치관에 호기롭게 신발을 간과한 채 수많은 걸음을 했다. 그래서 이색적인 풍경에 감탄을 했던가! 그것 또한 아니었다. 생각보다 LA 깊숙하게 한국인들이 침투해 있었고, 여기저기서 한국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유심 카드를 사러 들어갔던 곳에도 ‘Hi’가 아닌 ‘어서 오세요’라는 익숙한 용산의 느낌을 느낄 수 있었고, 정관장과 북창동 순두부(심지어 공항에서 이 순두부 체인점에서 먹었다.), 용추골 순댓국 등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으로 거리를 걸었다. 물론 내가 첫 여행지인 만큼 겁을 먹어 한인타운 근처에 숙소를 잡았지만 한국에 숙소를 잡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인타운에서 한국어를 벗어나기 위해 할리우드 초입까지 걸어갔고 그 이후 산타모니카 행 버스에 탑승했다.
각 나라의 대중교통을 탈 때 알게 모르게 쾌감이 있는데, 그 이유는 익숙한 듯 여유롭게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면 왠지 현지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LA 버스를 타는 법을 검색한 후 ‘Tap LA’라는 어플을 설치하여 핸드폰을 찍고 버스에 올랐다. 혹시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어엇 쏘리쏘리 하고 다시 내려야겠다는 시뮬레이션이 무안할 정도로 깔끔하게 결제 후 올라탔다. 아이폰만 써왔던 나에게 핸드폰으로 카드를 찍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괜히 멋있는 LA 사람이 된 것 같은 사대주의스러운 착각과 함께 산타모니카로 향했다.
산타모니카 해변 근처에 내렸고, 그 주변 길거리부터 걸어 보았다. 나름 쇼핑할 것들도 많고, 먹을 곳도 굉장히 많았다. 눈에 띄던 HIHO라는 버거 집에 들어갔고 클래식 치즈버거와 콜라를 시켰는데 무려 한화 2만 원이 나왔다. 미국의 물가는 손이 떨리는구나를 느끼면서 2만 원짜리 햄버거를 먹었다. 맛은 역시 수제패티답게 맛있었다. 꽤 괜찮은 소비라며 나를 달래고선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출발했다. 이곳은 미국 동서를 연결하는 루트 66의 종착지이자, 아름다운 해변과 부둣가에 조그마한 놀이공원을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길을 건너다 만난 다람쥐 친구들, 그 옆에 엉덩이를 반쯤 보여주며 걸어가는 한 흑발의 외국인, 마약을 한 건지 혼자 박수를 치고 깔깔 웃던 덥수룩한 아저씨, 잔디밭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던 한 노숙자도. 저 멀리 보이는 잔잔한 해변과 아름다운 산타모니카의 풍경과 다소 거칠어 보이는 사람들까지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의 조화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부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 속에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과 수많은 여행객들로 붐비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한국어와 이곳이 미국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양한 인종들이 있었고, 맨손으로 갈매기를 잡아채고 인터뷰 후 보내주던 유쾌한 천조국 형님부터, 꽃무늬 가득한 프릴 원피스를 입고선 예쁜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한국인 소녀, 서로를 껴안고 바다를 느긋하게 바라보던 노부부, 바닷바람의 추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상의를 탈의하곤 부둣가까지 러닝을 나온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몸 좋은 형님, 그리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혼자 온 듯한 나까지. 너무도 익숙한 모습들 속에서 이질적이어서 어색한 모습들까지 공존하고 있었다. ‘아 이게 미국인가?’라는 생각을 할 때쯤엔 그저 애써 어떠한 기준으로 구분 지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모습으로 오늘을 살고 있었고, 각자의 색으로 이곳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래, 이곳은 애초에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자유의 나라 미국이지 않았는가.
어쩌면 난 편협한 편견으로 무언가 기준을 자꾸 세우고 나누려 하지는 않았는가 생각이 들었다.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은 것들은 생각보다 주위에 널려있었다. ‘그래, 나도 나만의 색을 띤 여행을 하자. 무언가 나누려 하지 않고 흘러들어오는 대로 품어보자. 그게 여행의 묘미니까.’ 이 여행의 끝에 나는 어떠한 색으로 남겨져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벌써 외롭다는 생각은 없어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짙은 색이 묻어질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이 여행 동안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어떻게 변해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즐겨야겠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저 흘러 들어오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