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꼭 다시 오리라

5/4 여행 Day 2 - 미국 LA

by Seanly

사실 내가 LA에 온 것은 여기를 오기 위함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 영화 산업화의 시작이자 부흥기를 가져온 지역. 역사적으로 시초는 아니었지만, 영화를 황금기로 이끈 것은 할리우드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을 한다. 따라서 영화인의 무대이자, 언젠간 꼭 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할리우드, 과연 그곳은 어떤 곳인가! 할리우드 사인 보드판을 내 눈에 담고 오리라!라는 일념하에 LA를 첫 여행 시작지로 삼았다.


파라마운트와 워너브라더스 투어 중 한 곳을 가보고 싶었고, 고민 끝에 워너 브라더스 투어로 결정을 했다. 기대를 안고 아침에 일어나 방을 나섰다. 어제부터 구름이 무겁더니 결국 비가 쏟아졌다. 이미 나는 숙소에서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워너 브라더스 거리에 도착했거늘! 주변에 우산을 파는 곳도 없었다. 바람막이를 믿고 짐을 품은 채 투어 건물로 뛰었다. 물론 비를 맞아도 될 수 있는 옷들 위주로 많이 챙겨 왔다지만, 실내에서 비에 홀딱 젖은 상태로 빗물을 뚝뚝 흘리며 바닥을 흥건하게 만드는 어글리 코리안이 될 수 없다는 다짐하에 최소한의 피해를 받고선 발수가 되는 바람막이를 툭툭 털어내곤 나름 깔끔한 모습으로 들어갔다.


실제 촬영 중인 곳은 내용 유출 및 보안 상의 이유로 들어갈 수 없고, 투어 가이드를 끼고선 허가된 지역에 가이드 카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방식이었다. 주로 <빅뱅이론>, <프렌즈>, <해리 포터>, <DC 시리즈>가 언급이 많이 되었고, 특히 세트 촬영을 주로 했던 시트콤 방식의 <프렌즈>가 압도적인 설명량을 자랑했다. <프렌즈>를 보고 왔다면 조금은 신기했을 텐데 오히려 나는 <프렌즈>의 제작 썰보다는 할리우드를 그린 영화들에 항상 나왔던 세트장 외부 장면들 속 실제 모습들이 신기했다. 비교적 최근에 영화 <바빌론>을 봤었는데, 실제로 이런 느낌으로 할리우드 영화는 시작이 되었었고 꽤나 많은 고증이 있었구나 싶었다. 세트장 내부만 있는 것이 아닌 집, 거리 등 오픈 세트도 되어있었으며, 정글 속 보트 씬 등 물 씬을 대비한 장소, 학교 외부 등 이곳 안에서 많은 촬영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잘 정돈되어 있었다. 투어가 끝나곤 자유 체험 등이 있었는데 <해리포터>의 방 배정도 받아보고, <배트맨>이 타고 다니던 멋들어진 오토바이, <프렌즈>의 메인 세트장을 본떠 만든 촬영 스팟, 각종 그린 크로마 방에서 영화 인물이 되어보는 등 생각보다 투어가 잘 되어 있어서 만족했다. 2시간 30분 정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이제는 메인 할리우드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투어 건물에서 나오니 비가 그쳤고, 비 온 뒤 맑음이라는 말처럼 깨끗한 공기와 함께 푸른 하늘과 두꺼운 구름이 반겨주고 있었다. 비가 온 뒤 명암과 채도가 짙어진 LA의 거리는 괜히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할리우드 메인 거리 역에 내린 후 지하에서 올라왔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다. 이게 내가 생각하던 미국이고, LA다. 어제의 나는 그저 한적한 사이드 거리를 보았던 것뿐이다. 여행자의 마음이 훅 올라왔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한참을 고개만 돌리면서 구경을 했다. 반짝거리는 극장처럼 꾸며놓은 건물들과 영화 인물들,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 그리고 바닥에 새겨져 있는 할리우드 거리의 시그니처! 영화 제목들을 살펴보며 할리우드의 향기를 맡았다. 북적거리는 거리, 화려한 간판들과 영화 속 캐릭터들과 인물들, 활기가 넘치다 못해 가득 채운 이 거리를 감히 사랑하고 싶었다. 뉴요커가 아닌 할리우더로 살고 싶었다. 눈이 돌아가버린 나는 할리우드가 박힌 옷을 잔뜩 집었다가, 배낭여행자라는 나의 현실을 겨우 끄집어냈고 소소한 키링으로 만족했다. 물론 하나에 10달러씩이나 하는 키링은 한국이라면 쳐다도 안 봤겠지만, 이곳은 할리우드이지 않은가. 할리우드에서 산 키링은 그 의미만으로 10달러가 넘는다.라는 조금의 변명과 함께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이번엔 할리우드 사인보드 판을 보기 위해 레이크 할리우드 파크로 이동을 했다.


꽤나 높은 곳으로 올라갔는데, 지나오면서 보이는 마을들과 저 밑에 보이는 LA의 광경에 정신 팔린 채 우버에서 내렸다. 그러고선 뒤를 딱 돌았는데, ‘저거구나, 할리우드 사인 보드판’라는 생각과 함께 괜히 벅차오르는 감정에 짜릿했다. 신나 버린 아이처럼 이곳저곳에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진정이 되었고, 공원에서 나와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5분도 채 걷지 않았는데 사인보드판이 너무도 잘 보이는 곳에 도착을 했다. 나는 바위에 걸터앉아 할리우드 사인 보드판을 한 없이 바라보았다. 어딘가 쿵쿵 가슴을 울려대는 떨림과 함께 오기가 생겼다. ‘내가 제작한 영화로 꼭 이 땅을 다시 밟아보리라.’ 할리우드에 초청을 받아 프로듀서의 이름으로 이곳을 다시 왔을 때, 다시 한번 이곳을 찾아 이 광경을 다시 보겠다고 다짐했다.


난 시작의 땅 미국, 영화의 산업화를 이끌었던 이곳 할리우드를 꼭 다시 눈에 담아보리라. 지금의 나를 다시금 떠올리면서.


이뿐이 아니었다. 할리우드 사인 뒤편에는 평화로운 마을과 저 멀리 보이는 번영한 도시, 그리고 따듯한 햇살을 머금은 LA가 있었다. 도시와 자연의 어우러진 조화. 노란빛과 초록빛이 맴도는 차가운 이 도시의 느낌을 LA 스럽다고 표현하고 싶다. 흐린 날씨가 무색하듯 빼꼼 들어낸 햇살이 이곳에 내려 비추니 이래서 천사들의 도시라고 불렸던 것이구나를 느꼈다. 햇살이 가득 뭍은 이곳은 참으로도 LA 스러웠다.


할리우드 사인 보드판을 바라보며 한참을 사색에 잠기다가, 일몰에 맞춰 그리피스 천문대로 가기 위해 이동을 했다. 이곳의 최고 핫플레이스라는 것을 증명하듯 길거리까지도 가득 찬 차량들과, 교통 안내를 하는 인력들까지 들어가는 초입부터 나를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오늘은 구름이 많아 별을 보기는 어렵기에 야경만 즐기다가 와야지 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가 혼쭐이 났다. 도착한 이곳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곳이었다. 별을 관측하기 위한 이 천문대는 왜 이리도 낭만적이게 생긴 것인지, 왜 이리도 아름다운 건지 납득하기 조차 어려웠다. 천문대 뒤쪽으로 가보니, LA가 한눈에 담겼다. 노란빛과 붉은빛 그 어느 즈음에서 할리우드에 내리는 햇빛은 빛줄기가 보일 정도로 은혜로웠고, 그 뒤로 보이는 할리우드 사인 보드 판을 품은 거대한 산은 너무도 웅장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약한 휴대폰 사진들로 담길 수 없는 분위기였다. 경치라기 보단 분위기에 압도되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앞으로 LA를 떠올린다면 이 분위기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날 것 같다. LA 스러운 이 분위기는 조금이라도 놓칠세라 눈에 담았다. 추위는 잠시 잊은 채로 그저 한 곳 한 곳 정성스럽게 눈에 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다운타운도, 할리우드 사인 보드 판도, 햇빛에 걸쳐진 능선도, 산을 둘러싼 차도와 차량들도, 하얗게 빛나는 그리피스 천문대도, 너무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이곳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도.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장면이 없었고, 감동을 주지 않은 모습은 없었다. 일몰과 함께 하나둘씩 켜지는 LA의 불빛들은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꼭 다시 오고 싶다.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오고 싶다. 이 따뜻한 분위기 속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함으로 발 끝 손 끝까지 채워질 수 있을까. 이곳 LA는 아직도 놓지 못한 전 연인과 함께 가고자 했던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딜 가든 문득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간다. 자꾸 옆에 있을 것만 같아서, 이 풍경의 분위기 속에서 그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서 실은 많이 외롭기도 했다. 그때 여행이 무산이 되지 않고, 내가 조금 더 적극적이어서 이곳을 같이 왔더라면. 어떻게든 여행을 했더라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달랐을까도 생각을 해본다. 지금의 난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말이다. 나의 영화 촬영으로 인해 헤어짐의 계기가 생겼고, 결국 지금 내 옆에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본고장을 와서 그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그 사람과 꼭 다시 오고 싶다. 그러고 싶다. 난 오늘도 나만 아는 소망을 간절하게 바라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