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Day 25 - 도미니카 공화국 푼타 카나
어제 푼타 카나에 들어와 체크인을 하고 숙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데 여기 할 게 없다. 휴양지라기엔 바다 쪽과 올 인클루시브 호텔들만 그러하고 나머지는 할 것이 없는 동네다. 죄다 숙소 공사 중이고 음식점은 햄버거 집과 중국 음식들 뿐이고, 조그마한 슈퍼만 있는 정도. 그래서 우선 구글 맵에 혼잡 구역으로 20~30분 정도 걸어서 산책 겸 갔다 왔더니, 혼잡 구역이라기보다는 기념품 샵들이 조금 모여 있는 길거리정도? 돌아오는 길은 바다 모래길을 통해서 걸어왔는데, 여기 죄다 호텔 소유의 바다들이라서 지나가는 것 외에는 앉아 있을 수도 물에 빠질 수도 없었다. 뭐 당장 오늘이야 이 정도의 산책과 밥만 먹고 끝내려는 일정이었지만, 여기서 올 인클루시브 호텔에 들어가기 전까지 3박 4일을 있어야 하는데 이틀간 할 게 없었다. 이건 경우의 수가 없다! 투어를 무조건 나가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전에 알고 있던 사오나 섬을 호텔에 이야기해서 투어 가격을 물어봤다. 가격은 50달러. 하지만 사장님은 영어가 미숙해서 번역기로만 대화를 했는데, 사오나 섬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정이라고 한다. 이동만 50달러라 생각보다 고민이 되었지만, 여기서는 당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수영도 할 수 없으니 가성비가 어떠하든 일단 가기로 했다.
다음 날, 7시 30분에 호텔 리셉션으로 가니 나와 같이 떠나는 브라질에서 유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 마리오와, 엘사바도르에서 온 메르하와 아스카가 있었다. 혼자 외롭진 않겠다 싶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쯤 차량이 도착했고 우린 그 차량에 올라타니 다른 일행들이 더 있었다. 그렇게 잠시 가이드를 태우기 위해서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 기프트샵이 있었는데, 여기서 음료 하나씩 포함되어 있으니 가져가라는 것이다. 오, 음료까지 주다니 뜻밖인걸! 물을 하나 받아서 차에 다시 올라탔고 1시간가량 가니 보트를 타는 곳에 도착을 했다.
사오나 섬에서 있는 최단거리는 국립공원으로 보호를 받고 있기에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출발을 해야 했다. 갈 때는 빠른 보트를, 올 때는 요트에 타면서 천천히 올 거라고 했다. 게다가 투어 중에 프리 드링크란다! 보트에 요트까지 타는데 프리 드링크라고?! 전혀 듣지 못했던 투어의 내용에 기대하지 않아 더욱 행복해져만 갔다. 이거 이동만 해주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다니는 건 줄 알았는데 나름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투어였던 것이다. 그렇게 보트를 타니 그 위에서 럼과 음료 등 프리 드링크를 시작했다. 사실 아침부터 출발해서 잠이 덜 깬 상태였는데, 바닷바람을 맞으며 럼에 콜라를 쿠바 리브레 같은 칵테일을 마시니 눈이 번뜩 떠진다. 맛있고 없고를 떠나서 갑자기 여행 온 기분이 났다랄까. 그때부터 카리브해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보트의 분위기를 즐기기 시작했다. 오른쪽엔 끝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빛깔의 푸른 카리브해. 왼쪽엔 자연의 3대 장인 숲과 바다와 하늘. 천국의 한가운데 똑 떨어져 보트로 그 사이를 누비는 기분이 든다. 혼자여도 좋다. 누군가와도 좋을 것 같다. 이 순간, 이 기분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마음속 깊은 공간에 큰 공간이 만들어지는 느낌이다. 가득 찬 느낌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만들어진 행복이란 이런 느낌일까. 모험에 대한 보상의 느낌인가. 나의 감정은 조금 더 살펴봐야 하겠지만, 이 순간의 감정에 확실한 큰 축은 행복이란 감정이다. 묘한 벅차오름으로 이 순간을 즐겼다. 럼이라는 알코올이 만든 기적은 감정을 더 극대화시켜 행복함에 적셔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사오나 섬 도착하기 전 수영할 수 있는 스팟에 도착했다. 허리춤까지 오는 수위에 물은 미지근하니 수영하기 좋았다. 또 물은 어찌나 그리 투명하던지 손을 바다에 넣어보면 내 손의 주름까지도 모두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기본적으로 카리브해는 에메랄드 빛과 깊은 푸른빛이 공존을 하는데, 이 조화가 언제 봐도 참 좋았다. 저 멀리는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는 푸른 수평선이 전부였고 내 뒤에는 키가 높게 서 있는 나무들이 군림하는 숲, 그리고 나는 에메랄드 빛의 바다에서 머리를 파묻고 수영을 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글로 표현해 보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저 모든 표현이 소설 같은 이곳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던 곳이었다.
30여분을 수영을 하고 본 목적지인 사오나 섬으로 출발을 했다. 촉촉이 젖은 내 옷과 감성을 채 말리기도 전에 도미니카의 자랑, 사오나 섬에 도착을 했다. 여기서 들려오는 또 하나의 놀라운 인클루시브 내용. 점심을 준다고?! 난 이렇게까지 포함된 게 많았더면 어젯밤 그리 고민하지 않고 예약을 했을 것이다. 이걸 놓쳤다면 난 얼마나 후회했을지! 숙소 근처 식당들이 죄다 비싸고 가성비가 없어서 슈퍼에서 사서 숙소에서 조리해 먹었는데, 한 끼를 이렇게 채울 수 있다는 건 나에게 너무 큰 행복이었다. 게다가 가격 생각 안 하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했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까지 마리오와 함께 선베드에 누워 카리브해가 들려주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지금 생각해도 오늘 투어에 큰 도움을 준 건 다름 아닌 마리오였다. 생긴 건 꼭 같이 영화 작업했던 형을 닮아 정이 갔는데, 마리오는 나를 위해서 스페인어로 가이드가 설명해 주면 영어로 친히 번역해서 알려주었다. 나는 모르고 지나갔을 뻔한 내용도, 그리고 어떻게 투어가 진행될 지도 눈치로 알아야만 했는데 마리오가 있어서 투어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었다. 집합해야 하는 시간과 점심시간 등이 되면 미리 알려주고, 보트로 가고 요트로 돌아온다는 것도 마리오가 다 알려주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가이드보다 더 나를 잘 챙겨준 마리오 형! 덕분에 좋은 추억 안고 갈 수 있었습니다!
30분 즈음 지났을까,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우리는 테이블 하나를 잡고 뷔페식으로 되어있는 식당에서 밥을 받아왔다. 샐러드와 빵, 밥, 스파게티, 파인애플 그리고 목살로 추정되는 돼지고기와 카레 양념을 한 닭고기를 받아왔다. 푸짐하게 담아 온 밥에 프리 드링킹 존에서 맥주를 받아와 같이 먹었다. 굶고 다닌 건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부담 없이 배부르게 먹은 게 언제인가 싶었다.
아마 여행을 시작하면서 배가 터지겠다 싶을 때까지 먹어본 적이 없었다. 음식이 주는 행복은 확실한 행복이었다. 음식 맛이 어떠했는지보단 그저 마음 편히 배부르게 밥을 먹는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밥을 먹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너무 식비를 아끼려 했던 것은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굶고 다니면서 일부러 밥도 안 먹고 이러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먹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지나가면서 먹고 싶었던 간식들도 에이 먹지말자! 하면서 넘겼던 적도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습관이 되어 나를 너무 궁핍하게 만들지는 않았나 싶었다. 언제 다시 이렇게 길게 여행을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아메리카 대륙을 혼자서 배낭여행을 다시 올 수 없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여행을 어떻게 하느냐, 어디를 가느냐, 얼마나 가느냐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예산인데, 나는 내가 원하는 것에 비해 적게 예산을 잡아놓고 꽤나 신경을 많이 썼다. 내가 나를 불쌍하게 만들지는 말자. 우리 엄마의 말씀 따라, 돈이야 다시 벌면 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김시현, 이제 예산 한도 풉니다. (사실 이러고도 나는 원래 돈을 아껴 쓰고 돈을 잘 쓰지 못하는 습관이 있어서 여행 내내 줄타기를 할 것 같긴 하다.)
밥을 먹고 보니 출발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다. 각자 선베드에 누워 쉬어도 좋고, 바다에 놀아도 좋은 자유의 시간이었다. 나는 바다에 빠지는 것도 좋지만 햇살을 피해 그늘 밑 선베드에 누워 높게 자라난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카리브해의 풍경을 즐기고 싶었다. 이동할 때나 숙소가 아닌 여행지에서 이어폰은 처음 껴보는 것 같다. 에어팟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으로 한 뒤 온전히 나만의 공간에 빠졌다. 노래와 함께 하니 더욱 촉촉한 느낌이었다.
행복하다. 그저 행복하다는 단어밖에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머릿속은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 항상 이 여행지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을 때, 행복함을 느끼는 것 같다. 날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서 온전히 이 풍경 그대로를 즐길 수 있으며 신경 쓸 것들이 하나도 없는. 이러한 상태들은 나름 복잡했던 머릿속과 마음속을 정리를 해준다.
떠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고, 사람들은 모여 요트에 탑승하기 위해 보트를 먼저 탑승했다. 보트에서 요트로 넘어간 뒤 약 2시간가량의 요트로 본래의 목적지까지 돌아가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요트 위 가운데 위치한 메인 홀은 클럽 음악과 라틴 리듬으로 가득 찬 춤판이 벌어졌다. 술과 음악이 있으니 사람들은 절로 흥이 나서 춤이 나오나 보다. 이 라틴 사람들은 어찌 이리 흥이 많은 지, 노래만 나오면 언제 어디서든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상관없다. 저 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보든 말든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신나니까 춤추고 흥이 나니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나는 적당히 같이 놀다가 뒤편으로 갔다. 그곳엔 누워서 태닝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난간에 기대어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도 난간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카리브해의 바다는 언제 봐도 아름답다는 말뿐이 안 나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느껴지게 만드는 행복감. 풍경이 주는 힘이지 않을까. 냅다 들이 누워 갈 때까지 잠시 잠도 자보았다. 요트 위에서 이렇게 선상 파티 같은 분위기를 단돈 50달러에 느낄 수 있다니. 게다가 프리 드링크에 점심에, 차량에, 보트에, 요트에 7만 원에 값어치는 넘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미니카에 와서 한 소비 중 최고의 소비지 않았을까.
그렇게 다들 파티도 지쳐갈 무렵 우린 첫 출발지에 도착을 했다. 행복하지만, 이젠 피곤하다. 매일 10시 이후로 활동을 시작하던 내게 너무 이른 시간부터 여러 교통수단을 타고 움직였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 안에서 창에 기대어 잠을 잤고, 숙소에 와서 간단한 저녁을 먹은 뒤 잠에 들었다.
오늘 하루는, 정말 행복하다는 감정으로 가득 찬 하루였다. 그 어떤 감정보다, 그 어떤 단어보다 ‘행복’이라는 표현을 대신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날이었다. 일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구 반대편 카리브해에 왔고, 익숙하지 않기에 주었던 이 순간의 소중함은 너무도 감사했고, 여행을 떠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던 하루였다. 사오나 섬의 이름은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