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Day 32 - 바하마 나쏘
다음 날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마켓으로 향했다. 여기서 4킬로 정도 떨어진 거리여서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버스가 올 지 안 올 지 확신이 없었기에 산책 겸 그쪽까지 걸어가다가 버스가 오면 올라타기로 결정했다. 나의 걱정은 무색하게 10여분 정도 걸으니 바로 뒤에서 버스가 왔다. 규모가 꽤 큰 마트에 도착을 했다. 나는 여행지를 가면 마트에 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나라의 생활이 담겨 있는 느낌이기도 했고 모든 것을 구매하진 못해도 뭔가 다 가진 듯한 풍족함은 마트에 가면 느낄 수 있었다. 또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물건들이나 스낵류나 간식들을 보면 호기심도 생겼다. 나는 해변에서 간식으로 먹을 감자칩과 콜라, 내일 저녁으로 먹을 야키소바 컵라면, 출국 당일에 가면서 먹을 바나나, 그리고 생수까지 구입하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짐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는 바로 숙소 앞바다로 나섰다. 대강 물이 닿지 않는 곳에 가방을 올려놓고 스노클링 장비까지 착용하고 풍덩 바다로 빠졌다. 바하마의 바다는 단연 원탑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곳은 내가 갔던 시기에 해초들이 올라오는 시기라 바다에 해초가 보였는데, 이곳은 깔끔하고 푸른 바다와 고운 모래들 뿐이었다. 얼마나 바다 색이 예쁘던지, 숙소를 돌아올 때면 항상 한참을 바다를 구경하다가 들어오곤 했다. 다운타운 쪽과는 다르게 여긴 선박이나 페리들이 자주 다니지 않아 물이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또한 해가 지는 것도 보여서 호스텔 테라스에 앉아 다 같이 일몰을 감상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가! 이곳 바하마는 그저 수영하는 돼지들을 보기 위해서 온 것이었는데 뜻하지 않은 낭만들이 가득했다.
비록 날 힘들게 했지만, 갔던 날은 퍼레이드를 하였고, 유달리 친해졌던 호스텔의 친구들,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 평화로운 마을 등 낭만스러운 것들로 가득 찬 나라였다. 비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했던 것과 달리 때때로 내리는 비만 피하면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며 투어도 걱정과 달리 비교적 저렴하게 예약을 했다. 모든 상황들이 그저 운이 좋다라고 표현이 될 정도로 이 나라에서 나는 많은 행운과 함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숙소 앞 깨끗한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서 행운이 따랐던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함이 생각나고, 아무도 없는 평화로운 바다에서 전세 낸 듯 수영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함으로 괜히 몽글몽글해졌다. 그리고 사람들 카트에 많이 담겨 있던 감자칩을 따라 샀는데, 이것 또한 인생 감자칩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맛도 있었다. 조금은 식어버린 콜라여도 괜찮았다. 마법 같은 평화로룸 속에서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고 들으며 먹는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으로 모두 보정이 되었으니까.
2시간 정도를 놀고 숙소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니 뒤 이어서 중국인 탄이 들어왔다. 탄과 루카가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자메이카의 여정들에 필요한 정보와 숙박들을 예약하고 있었다. 나는 이 나라의 무드와 자메이카란 국기 자체를 좋아했지만 이곳은 여행으로 적합하지 않은 곳이긴 하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는 치안이 걱정되는 만큼 위험하지 않게 여행객보단 관광객의 마음으로 다가서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예약들을 하고 있으니 일본인 유다카가 돌아왔다. 그 역시 물가에서 진하게 놀다 와서 그런지 아침보다 더 까맣게 탄 상태였다. 탄은 자긴 유다카를 처음 봤을 때 피부가 동남아 사람처럼 보여서 베트남 사람인 줄만 알았단다. 나는 유다카를 바라보면서 나도 많이 탔지만 너도 정말 많이 탔다며 묘한 동질감을 더 했다.
모두 씻고 나왔고 해 지기 전에 식당으로 출발했다. 처음에는 바하마 로컬 음식인 콘치, 소라 음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가게가 문을 닫아 앞에 식당으로 갔다. 여행자들의 휴식이라는 식당이었는데, 가격은 전혀 휴식이 아니었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이러한 조합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전혀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혼자였다면 사치였겠지만, 여럿이기에 추억이 될 수 있는 ‘함께’라는 의미는 오히려 한 끼에 4만 원이 넘는 돈을 내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햄버거를, 탄은 생선 요리를, 유다카는 소라 요리를 먹었다. 우린 그렇게 먼 타지의 바하마의 한 호스텔에서,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와서, 각자의 언어는 아껴둔 채 영어로 대화를 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동아시아의 반대편에 있는 카리브해의 배경으로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다니! 영화가 따로 없는 서사에 나는 괜히 벅차기도 했다.
이게 여행의 묘미이지 않을까. 우연히 만난 인연들과 그 조합은 작위적인 만남보다 더 큰 감동을 가져오기 마련이니까! 겨우 만난 지 이틀 차가 된 이들이지만 내게 있어 바하마의 최고의 기억은 모두가 함께 있던 호스텔이라 생각한다. 터줏대감 같은 남아공에서 온 수다쟁이 루카, 모기와 매일 사투 중인 뉴요커 베졸, 항상 나가서 노느라 아침에만 잠깐 얼굴 비춰주는 콜롬비아에서 온 킴 벌리, 항상 행복한 쿼카 같은 유다카, 비자 문제로 시달려서인지 나와 유다카의 국적을 부러워하는 탄까지. 인연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감사한 것이다. 시내나 마트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리는 교통 낙오지인 이 호스텔이 행복한 요새가 된 이유도 이러한 인연 덕분이다.
여행 내내 느끼는 건, 여행은 여행지가 주는 행복보다 사람이 주는 행복이 더 큰 법이고 어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해 질 녘에 들어와 다 같이 모여서 테라스에서 떠들며 일몰을 바라보는 기분이란,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친구와 같이 여행 온 느낌. 다 같이 모여 이모저모 이야기를 하며 따듯한 풍경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은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 속에 채워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내 가슴속 그림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지금 격하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