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트래킹, 파론 호수로 시작!

6/19 Day 48 - 페루 와라즈

by Seanly

와라즈의 모든 일정들은 새벽에 시작되었다. 숙소 앞에서 픽업해주는 투어 상품들이 숙소랑 연계되어 있어서 별도의 가이드 샵을 가지 않고 숙소에서 해결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파론 호수와 69 호수 두 가지를 예약을 했었다. 파론 호수는 차로 호수 근처까지 올라간 후 약 1km 정도 전망대까지 가볍게(?) 산책하며 올라가는 코스이고, 69 호수는 약 12km의 왕복 트래킹 코스와 3,900m에서 4,600까지 올라가는 고난도의 코스이자 고산지대의 맑은 공기를 헐떡이는 숨으로 거칠게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3,000m라는 귀여운 고산지대인(사실은 안 귀엽다.) 와라즈 도시에서도 조금만 힘차게 걸으면 숨이 차올라서 조금씩 적응시킬 겸 69는 다음 날로 미루고 파론 호수의 일정을 떠나게 되었다.


추우니 방에서 기다리라는 투어사의 말에 방에 편히 누워있다 보니 가이드가 문을 두드려줬다. 예정 시간보다는 늦게 와서 혹시 나를 두고 갔을까 봐 살짝 쫄리긴 했다. 휴, 저 챙겨가줘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내려가보니 6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고 밴 차량을 타고 출발했다.


약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어떤 소규모 마을에 내려주었다. 파론 호수를 가기 전 아침 식사를 하는 곳이고 가이드는 너무 배부르게 먹지 말라고 하였다. 파론 호수는 4,200m의 고산지대이기에 메스꺼움, 두통, 오한 등이 올 수 있고 심하면 구토 및 쓰러질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사람들에게 내가 먹은 아침 식사를 자랑하고 싶지 않았기에 빵 두 개와 고산병에 좋은 코카차를 구매했고 페루에 오면 꼭 먹어보고 싶었던 잉카 콜라도 하나 구입해서 가방에 넣었다.


그렇게 다시 차량에 탑승하여 고개를 구석에 박아 넣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차량이 좌우로 흔들거리고 위아래로 흔들어주니 자동 기상 알람이 따로 없었다. 차에 몇 번 머리를 박아주니 비몽사몽 할 것도 없이 깔끔하게 잠에서 깼다. 감..사합니다.. 창 밖을 보니 돌산을 꼬불꼬불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비포장도로의 대관령을 올라가는 기분이랄까. 인터넷도 잘 터지지 않아 지도를 봐도 내가 잘 가고 있는 건지 확인도 되지 않지만 자고로 자연은 사람들 손이 많이 타지 않는 오지에 있어야 더 아름다운 법! 기대를 안고서 기사님을 믿고 창 밖을 바라본다. 돌산뿐이지만 멀미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멀리 바라본다.


가이드가 자리에서 슬쩍 일어나 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아 거의 다 온 것 같았다. 오르막길의 언덕을 넘어 주차장에 다다르니 옆에 말도 안 되는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에메랄드 빛깔의 호수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고 호수 뒤에는 안데스 산맥의 장엄한 설산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들 차에서 내릴 때면 감탄 소리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호수의 색은 청량함이 떠오르는 색상 그 자체였다. 만년설과 함께 빙하에서 흘러들어 온 물들이 햇빛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인다는데 해가 드는 곳과 그늘 진 곳에 대한 색 차이도 명확하게 보였다. 다들 흔히 비교하는 뽕따 아이스크림의 색상 같다랄까. 호수와 함께 보이는 저 멀리의 만년설이 눈을 더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다들 호수를 바라보며 구경을 하고 있을 때 가이드는 무언가 준비를 하더니 우리를 불러 모았다. 여기 남아 계실 분들은 차 근처에서 쉬시면서 구경해도 되고, 전망대에서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다면 본인을 따라오라고 했다. 이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조금 흥분된 마음으로 가이드를 따라 옆에 돌산을 올랐다.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고 경사가 가파르진 않았지만 고산지대 특성상 쉽게 숨이 차고 돌산이다 보니 걸어가는 느낌 보단 바위들을 타고 올라간다의 느낌이 강했다. 30분 정도 올라가면 측면에서 호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옆 돌산에 숨겨져 밑에서는 볼 수 없던 돌산 너머의 더 넓은 호수와 뚜렷하게 보이는 설산은 숨찼던 등산 과정 따위는 잊게 만들어버렸다. 원래는 이 와라즈라는 도시는 예정에 없었지만 민박집에서의 선생님 추천으로 즉흥으로 온 것이었는데 너무나도 훌륭한 선택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잔뜩 신나 버린 나는 풍경도 찍고 셀카도 찍고 있는데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주셨는데 너무 신나 버린 탓인지 가이드가 ”헤이! 스탑 션!!“ 하면서 배꼽 빠지게 웃어버리고 나서야 기념사진 촬영이 끝났다. 같이 간 일행들도 한참을 웃다가 이번엔 내가 찍어주겠다며 한국인의 혼을 담은 사진들로 그들의 인생샷들을 건져줬다. 모든 한국인들은 사진에 열정적인 거냐며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의 사진 소동이 끝나고 바위 끝에 걸터앉아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내가 이런 만년설의 설산과 빙하 물이 흘러내린 이 아름다운 색의 호수를 보는 것까지. 떠나오지 않았으면 느껴보지 못했을 벅차오르는 감정은 괜히 마음을 뭉클하게 했고 또, 세세하게 찾아보지 않고 어느 정도의 즉흥에 몸을 맡긴 덕에 풍경에 대한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일종의 스포일러를 피한 셈이랄까. 운이 좋게 떠나올 수 있었고, 운이 좋게 와라즈라는 도시를 알 수 있었고, 운이 좋게 화창한 날씨 아래 파론호수를 볼 수 있었고, 운이 좋게 고산병 없이 건강한 컨디션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늘도 “난 럭키 가이야!”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산뜻하게 파론호수를 배경으로 산을 내려왔다.


내려온 후 집으로 가는 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를 창문에 콩콩 박아대며 푹 자버린 탓에 말이다. 아침잠이 많은 잠 좋아 인간에게 새벽 출발 투어는 항상 고된 법이다. 하나 둘 내리는 소리에 깨어난 후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서 시내에 내리기로 했다. 가이드 분에게 너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팁을 드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저녁을 사 먹기 위해 눈에 레이더를 돌리며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어떤 푸드트럭에 줄을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햄버거 푸드트럭이었고 냄새와 비주얼, 그리고 줄 서 있는 사람들로 보아 여긴 맛집이 틀림없다는 강렬한 촉이 왔다. 오케이, 오늘 저녁은 너다!! 패티와 웨지 감자, 소시지까지 들어있는 풀코스를 구매 후 마트에 들러 잉카 콜라와 딸기를 사고서 숙소에 들어왔다.


햄버거를 먹어보니 역시 틀리지 않은 판단이었다. 살짝 매콤한 소스까지 뿌려져 있어 전혀 느끼하지 않아 더 맛있게 느껴졌다. 한 개 더 사서 두 개 먹어버릴 걸 그랬다. 딸기가 마트에서 한 팩에 이천 원 밖에 하지 않아서 구매를 주체할 수 없었다. 주체했어야 했다. 딸기가 아닌 딸기 모양 무에 가까웠다. 아삭아삭한 식감도 아닌 어석어석한 느낌이랄까. 딸기향도 맛도 안 나니 실망이 컸다. 분명 보기에는 기깔나게 맛있어 보였는데..


내일도 새벽 일찍부터 출발하는 투어가 있어서 일찍 잠에 들어야 했다. 내일은 69 호수라고 불리는 곳으로 갈 예정이다. 파론호수와 비교하면 숨이 껄떡 넘어간다는데 그런 거에 쫄 내가 아니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내일의 여행을 기대하며 잠에 들어본다. 럭키가이 김시현! 내일도 럭키함이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