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0 여행 Day 8 - 멕시코 멕시코시티(CDMX)
오늘은 멕시코 시티 여행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테오티우아칸을 가기로 했다. 어릴 적부터 역사 공부를 좋아한다기보다 역사적 이야기를 좋아하던 편이었는데, 나에게 있어 피라미드는 너무 먼 꿈의 이야기였다. 피라미드가 있는, 또 그만큼의 긴 역사를 가진 문명은 우리나라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읽었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7대 불가사의(사람마다 불가사의 기준이 불분명하다)에 지역을 여행 가는 것이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다.
이집트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는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을 궁금해한 나에게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가기 전에 역사적 사실들을 짧게 공부해서 갔다.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아즈텍 사람들이 이 테오티우아칸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인류가 살지 않는 거대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신들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아즈텍 사람들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게 태양의 피라미드라고 이름 붙은 피라미드를 직접 목격하면 사람이 건설한 문명이라고 믿기 어려울 것 같다. 그야말로 거대하고 웅장한 자태로 내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마치 이 문명의 존재를 증명하며 번영을 과시하듯 웅장하게 서 있었다. 외지인이 이 피라미드를 처음 보았다면, 아마 소름 돋음과 함께 경외심, 그리고 두려움까지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뭉툭하게 이것저것 쌓아 올린 느낌이 아니라 너무도 반듯하고 정갈했다. 기록이 없기에 아직은 추측에 불가한 학설들만이 존재하는데, 어찌 되었건 이건 누군가의 생각 아랫사람이 쌓아 올린 건축물이기에 더 놀라웠다.
아즈텍에선 이 태양의 피라미드 아래 정착하여 모여 살았으며, 태양의 피라미드에서 달의 피라미드까지 쭉 뻗어져 있는 죽은 자들의 거리 옆에 거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태양의 피라미드 위에는 신전이 세워져 있었는데, 스페인이 침략을 하면서 부수고 성당을 세웠고, 다시 여러 전쟁을 거치면서 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수 천년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고 있는 테오티우아칸은 아직도 건실하게 포스를 내뿜고 있었다.
한눈에 다 담기도 어려운 피라미드를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한참을 서성거리게 만들었다. 계단을 만들어놓고, 제물들의 피가 흘러내려갈 수로도 보였다. 결코 아름다운 역사는 아니지만, 그 시대의 그들은 피라미드 위에 떠 있는 해와 달들을 보며 신이라는 존재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추대하였을까. 태양의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감히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푸른 달이 피라미드를 비추고 있을 때 얼마나 영롱했을까, 제물들을 살육하고 신에게 바치며 피로 범벅이 된 피라미드를 보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을까.
이런저런 생각들과 함께 선선한 바람을 맞으니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할 수 없었다. 더 많은 역사의 흔적들을 보고 싶어졌다. 그저 스쳐 지나가듯 보지 않고 이곳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고 하나하나 섬세하게 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 여행을 꿈꿨기에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꿈을 꾼다면 언젠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유적지를 모두 가볼 수 있겠지. 꿈이 하나가 더 추가가 되었다. 테오티우아칸의 조금 아쉬웠던 점은 전에는 피라미드 위를 올라갈 수 있어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현재는 그러하지 못하다는 것. 올라가서 아래를 바라보는 느낌은 어땠을지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만 상상해 본다.
다시 멕시코 시티 북부 터미널로 돌아가려 테오티우아칸을 나왔다. 정확한 정류장도 없었기에 여러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본 결과 입구 앞 로터리 가운데 서 있으면 차가 온다고 한다. 왕복티켓은 미리 구매했기에 버스를 기다렸다가 차에 올라탔다. 정말 로터리로 버스가 왔다. 정말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아무튼 탈 수만 있으면 됐지.
그렇게 버스에 올라 1시간가량 걸리기에 쪽잠을 자려한 순간 우리를 버스에 태웠던 안내원이 기타와 삼뽀냐라는 악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선 연주를 하더니 노래까지 불러주었다. 정말 이 흥의 대륙을 어찌하면 좋을까! 무슨 노래인지, 어떤 뜻을 지닌 가사인지 모르겠지만 그저 신나게 만드는 음악과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기분 좋은 돌아가는 길이었다.
바로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소칼로 광장을 구경하고 그 근처에 있는 유명한 뜨리파 타코, 한국말로 곱창 타코를 먹기 위해 우선 소칼로 광장으로 갔다. 지하철에서 내려 위로 올라오자마자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눈에 보이는데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멕시코 시티의 매력은 이런 부분인 것 같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과거의 건축물과 유럽의 지배 영향으로 다양한 형식의 건축물도 있으며, 독립기념비 근처는 발달한 현대 사회의 건물들까지. 과거와 현대의 느낌이 자연과 함께 살아있다. 성당 앞에는 원주민 복장을 하곤 어떤 향로에 향을 피우며 풀로 사람들의 몸을 쓸어주고 있었다. 아마 나쁜 기운을 없애주는 과거의 의식 중 하나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따라 자연스레 골목들로 들어갔다. 멕시코 시장이었다. 각종 옷부터 기념품 등 다양한 것을 파는 시장이 펼쳐졌다. 명품이라 주장하는 신발을 단돈 18,000원에 팔기도 하고 나이키,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는 12,000원 정도에 명품 백들은 35,000원에 파는 한국의 남대문 느낌 물씬 나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들을 지나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길거리 음식을 파는 곳에서 얼쩡거리자 브리또를 파는 가게의 청년이 맛보라며 브리또를 줬다. 엥 왜 이리 맛있어?! 세뇨르, 브리또 우노! 바로 하나 달라고 주문을 넣었다. 그 청년은 씨익 웃더니 엄지를 날려주었고 나도 답변으로 엄지를 세차게 흔들어줬다. 70페소 (5,000원 정도)였는데 양은 2인분짜리를 줬다. 난 타코도 먹어야 한단 말이야! 치즈를 벅벅 찢고는 소스를 바른 또띠아에 치즈와 고기,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알 수 없는 소스를 넣고 철판에 굽더니 그릇에 담아서 줬다. 길거리에 서서 현지 사람들과 함께 브리또를 먹고 있으니 여행 온 느낌이 가득 들었다. 내가 맛보기를 먹고 브리또 우노를 외친 걸 보고 상당히 재밌어하던 할머니가 인자하신 미소로 웃으면서 뭐라 말씀해 주셨다. 알아들을 순 없지만 좋은 뜻이겠지 싶어서 따봉을 날렸더니 또 한 차례 웃으시더니 따듯한 미소와 함께 엄지를 들어주셨다.
이제 본격적인 그곳, 곱창 타코를 먹으러 길을 나섰다. 수아데로 타코와 뜨리파(곱창)타코가 유명하다고 해서 줄 서서 두 개를 시켰다. 거기는 현지인들도 외국인들도 꽤나 있었는데, 1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음식이 나왔다. 옆에 현지인들을 따라 소금 간을 조금 하고 소스를 더 뿌린 후 수아데로 타코 먼저 먹었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맛있는 거지? 기름에 또띠아를 살짝 튀긴 건지 또띠아 특유의 찰짐 보다는 촉촉했고, 기름진 내용물까지 합쳐지니 오 마이갓이었다. 거기다가 매콤한 소스가 입 안을 쓱 훑고 가니 이거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바로 그다음 타자 뜨리파 타코를 고이 접고서 입 안 가득 넣었다. 눈이 땡그래진 채로 사장님을 쳐다봤다. 사장님이랑 눈이 마주쳤고,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대체 뭘 만드신 겁니까!라는 표정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열 대번은 더 날려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곱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맛을 싫어할 수 없다. 나는 만물이 맛있는 사람이지만 이 놈은 달랐다. 한 입 먹자마자 바로 뜨리파 타코 우노 플리즈! 너무 맛있어요! 3개 국어와 함께 주문을 넣었고 그렇게 세 개의 타코를 먹고 배부른 내 배를 원망하며 숙소로 떠났다. 이 맛 또 생각날 거 같아. 진짜로.
내일은 똘란똥꼬로 향하는 날이다. 오전 6시 30분에 차를 예매해 두었기에 오늘은 짐을 챙기고 얼른 잠에 들어야겠다.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코로나 맥주와 함께 내일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