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길 위에서... 미국 동부 보딩스쿨을 가다 #7
#Scene 7
이 학교를 찾아간 건 오롯이 영화 때문이었다.
1989년 우연한 기회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를 극장에서 관람했다. 이때만 해도 외국 영화는 성룡과 주성치 같은 과한 액션에 코믹을 장착한 배우가 나오는 홍콩 영화가 대세였다.
미국이란 나라는 태평양 건너 머나먼 미지의 세계였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런 막연한 생각 속에서 접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용은 미국의 명문 사립학교 학생들이 겪는 우정, 고민 그리고 이성에 눈뜬 고등학생의 순수함을 그린 어쩌면 뻔한 스토리였지만…
먼 나라 미국의 또래 하이틴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장면 하나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전통이 묻어나는 고딕 양식의 건물들, 멋들어진 교복, 학교 전체를 감싸고 있는 뛰어난 풍광은 분명 신세계였다.
특히 치열한 입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의 모습은 당시 내 처지와 흡사해 마음이 아프면서도 묘한 동질감을 일으켰다.
각자의 소질과 개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오로지 Ivy league(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미국 동부의 명문 대학 합격자 숫자만이 존재하는 참혹한 교육 현장은 입시로 점철된 대한민국 교육 실태와 다를 게 없었다.
처한 현실에 순응하며 진격하는 모범생, 특유의 끼를 발산하며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문제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며 고뇌하는 청춘.. 등등
캐릭터 하나하나 살아 숨 쉬었고, 자연스럽게 내 감정에 스며들었다.
특히 Captain으로 불리는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은 갇혀있던 학생들의 감수성과 열정을 끄집어내며 새로운 세상과 마주 보게 했다.
키팅이 읊조리는 대사는 교사의 역할과 책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거리를 이 사회에 던졌다. 그리고 그런 선생의 부재를 몹시도 안타까워하고 갈망했다.
그 이후에도 비디오나 TV를 통해 여러 번 이 영화를 다시 봤고, 키팅 선생을 흉내내기도 하고 <Carpe Diem, Seize the day!>를 유행어처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절의 나에게 많은 걸 안겨줬다.
키팅이 결국 학교를 떠나던 날, 교실에서 학생들이 하나 둘, 책상 위로 올라가 "Oh,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던 장면은 두고두고 뇌리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아들의 보딩스쿨을 알아보다가 이 학교를 찾아봤고, 세트장이 아닌 실제 한 사립학교에서 촬영한 사실을 알게 됐다.
영화 속 배경은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에 속하는 북동부 버몬트주인데 실제 촬영 장소는 델라웨어주에 위치한 <St. Andrews School>이었다.
델라웨어주는 뉴욕에서 2시간, 우리가 거주했던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에서 2시간 거리에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런저런 스토리를 접하고 보니, 무작정 이 학교에 가보고 싶어졌다.
전날 급하게 이메일로 학교 투어를 문의했는데 다행히도 곧바로 답장이 왔다.
아들에게 열심히 영화 얘기를 하고, 혼자 신나서 피곤할 줄도 모르고 학교로 차를 몰았다.
근사한 진입로를 지나 Admission Office가 있는 본관 건물 근처에 주차를 하고 전화를 하니, 입학 담당 직원이 반갑게 맞아줬다.
미국의 학교들은 하나같이 환한 미소로 환대해 준다.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St. Andrews>는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실제 미국 동부의 명문 사립학교 중 하나였고 현대식의 신축 건물들이 군데군데 들어섰지만, 오랜 전통이 녹아있는 고색창연한 공간은 영화 속 그대로였다.
가이드 학생의 안내를 듣는 내내,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며 추억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