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떠밀려 만든 가훈이 가족을 바꿨다

뭐라도 한번 만들어보세요

by 방성환

"가훈?"


"네, 아빠"


"그냥 근면, 성실, 검소 이렇게 하면 되는 거 아냐? "


"에이, 그건 너무 구리잖아요."


"그럼 어떻게 정하지?"


작년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차 안에서 아들이 이야기했다. 방학 숙제 중에 가훈 정하기가 있으니 만들어 달라고. 나의 좌우명이나 미션은 만들 수 있어도 가족의 가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가훈, 가훈, 가훈...

이 두 글자를 머릿속에서 계속 되뇌면서 여행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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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닐 때, 출발부터 돌아오는 것까지 시간 단위, 동선, 식당까지 꼼꼼하게 계획하고 돌아다니는 성격이다. 이런 성격이 나조차 피곤하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머릿속은 항상 '몇 시에 출발해서, 몇 시에 도착하지, 다음 장소로 어떻게 이동하지...'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이든 계획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나의 Too much 계획을 아들이 똑같이 따라 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촘촘하게 계획을 짰다. 나는 30분, 한 시간 단위로 계획을 짰는데 아들은 5분, 10분 단위로 짜는 걸 보곤 '유전자가 경험을 만나서 더 강해졌구나'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행을 하는 중에도 눈앞에 있는 걸 즐기는 것보다 '여기에서 언제까지 있을 것이고, 다음에 어디로 무엇을 타고 가는지' 더 궁금해했다. 이번 여행부터 나와 아들 모두 바뀌었으면 했다. 나에게, 아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순간순간 현재를 즐길래, 너도 다음에 뭐할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현재를 즐기자"


거의 혼잣말하듯 이야기하다 유레카를 외치며 이어 말했다.


"그래, 까르페 디엠. 까르페 디엠을 가훈으로 할까?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이잖아. 비슷한 말로 김연자 아줌마가 부른 아모르파티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


"네, 책에서 봤어요.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뜻이라던데요?"


"오... 아들 잘 아네. 그럼 메멘토 모리는 들어봤어?"


"그건 몰라요, 무슨 말이에요?"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인데 언젠가 우리 모두 죽는 똑같은 존재니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 이래."


까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


현재를 즐기자는 여행의 다짐이 자연스럽게 가훈 정하기로 이어졌다. 까르페 디엠, 아모르 파티, 메멘토 모리, 세 문장을 조합해서 말을 만들어 보려 이리저리 궁리를 했다. 앞글자들을 이래저래 조합해보았다.


까모르 모리,

까멘토 파티,

까아메...


세 문장으로의 조합은 좀 억지스러웠고 어려웠다. 두 개의 조합을 생각해보았다. 두 개로만 만든다면 조금은 무거운 표현인 메멘토 모리를 빼야겠다고 생각하니 순간 하나의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까르페 디엠의 '까르'

아모 파티의 '르'

그리고 항상 웃자는 다짐.


까르르 웃자.

현재에 집중해서 매 순간을 충실하게 보내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모든 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더 많이 더 자주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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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우리 집의 가훈은 '까르르 웃자'로 정했고, 잊지 않고 자주 보기 위해서 아들 방 문에 메모지로 써서 붙여 놓았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한 번씩 눈에 들어온다. 가훈을 보며 씩 웃는다. 학교 숙제 덕분에 웃을 일이 더 생겼다.


까르르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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