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Bro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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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자수성가한 고약한 백만장자와 가난하지만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정비공. 암으로 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두 명의 노인이 자신들이 만든 버킷리스트를 함께 실현해 가는 내용이다.
버킷리스트란 죽음을 앞둔 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이다. K와 나는 죽음을 앞둔 나이는 아니지만(정비공도 백만장자도 아니다)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함께 지워보기로 했다.
양평에서 자전거도로를 따라 43km를 달려 여주 강천섬에서 1박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자전거 캠핑 여행이다. 유럽 자전거 여행도 아니고 경기도 강천 섬에 다녀오는 게 무슨 버킷리스트 씩이나 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 11월 우리가 할 수 있는 소박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것은 맞다.
나이 들수록 이런 작은 것조차 함께 나눌 수 있는 벗은 줄어들기 마련이고, 오랫동안 즐겨온 캠핑과 자전거를 함께 할 수 있으니 돈 들여 멀리 가는 것보다 소중하다 할 수 있다.
11월, 자전거 길도 강천섬도 한적해서 좋았다. 초 겨울이라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자전거 타기 좋은 날씨였다.
비슷한 목적으로 강천섬 자전거 캠핑을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기록을 세세하게 공유합니다.
다음 지도에서 검색해보면 거리는 44.2km, 자전거로 소요시간은 2시간 27분이다. 이 정보 만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출발한다면 (우리처럼)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될지 모른다. 아마 예상시간은 로드 자전거 기준인 것 같다. 14년 된 MTB에 20kg의 무거운 짐을 얹고 달리는 나에게는 무리였다.
집에서 경의 중앙선 양평역까지 기차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코로나가 2단계로 격상하려는 조짐도 보이고 해서 양평 자전거도로 인근의 무료 주차장을 이용했다.
양평에서 강천섬까지는 쉬엄쉬엄 4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짐 없이 로드용 자전거를 이용해 쉬지 않고 간다면 2시간대에 도착 가능하다.
우리는 나름 쉼 없이 달렸으나...
해가 떨어지기 전에 도착하려면 일몰 한 시간 전을 기준으로 시간을 역순으로 계산해서 집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양평 생활체육공원 인근 막국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 길을 나섰다.(12시쯤 나서는 것을 추천)
대략 20kg 정도의 짐이다. 들어갈 수 있는 한 최대한 담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멍청한 짓이었다.
짐 무게 때문에 타이어가 납작해졌다. 미리 바람을 넣고 출발!
※ 출발 전에 반드시 타이어와 브레이크의 상태를 확인하세요.
내비게이션은 오픈 라이더를 사용했다. 추천 경로를 검색하면 남한강 자전거 길 경로가 있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단, 배터리가 문제...)
양평 생활체육공원 주차장을 지나 남한강을 만나는 곳에 갈산공원이 있다. 비교적 시내와 가까운 곳이라 2차선 자전거 도로에는 자전거는 물론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번 여행은 이런 풍경이겠거니 하며 무심히 달리기 시작했지만 양평에서 여주까지 아름다운 풍경은 이곳에 다 있다는 것을 돌아오는 길에 느꼈다. (해 질 녘이면 어디라도 예쁘지...) 갈산공원을 지나 회현리까지 남한강을 따라 달리는 동안은 무난한 코스가 반복된다.
회현리와 양덕리 사이에 흐르는 흑천 위에 놓인 다리는 삼국지의 유비가 생각나는 현덕교, 돌아올 때 가장 반가운 작은 다리다.
긴 언덕에 질려 끌바(자전거를 끌고 올라감)를 한다는 곳이다. 내 인생에 가장 힘든 기억은 대구 경산의 가파른 업힐과 김해에서 부산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언덕과 내리막이었다. 그에 비하면 이 언덕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서울 부산 라이딩은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냥 힘들었다.
숨을 헐떡이며 정상에 오르면 바로 구미리로 이어지는 다운힐 구간이 나온다. 신나게 내려가니 좋기는 하다만 내일 다시 이곳을 올라올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급커브에서 브레이크 조작을 주의해야 한다.
개군 레포츠공원에 도착했다. 조금 전 언덕을 피하고 싶은 분이라면 이곳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 양평 인근의 아름다운 남한강 풍경은 포기해야겠지만...
개군 레포츠공원 뒤로 샛길이 있다. 이곳을 이용한다면 전체 거리에서 1km를 단축할 수 있다. 돌아올 때도 무심코 지나칠 수 있으니 반드시 기억해두면 좋다.
개군면 남한강 자전거도로도 인상적인 코스였다. 강변에 나무가 줄지어 늘어 선 갈산공원과 달리 시야가 탁 트여 호젓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돋보였다. (강에는 이름 모를 철새들이 둥둥...)
길가의 집도 예뻐서 산책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이번 라이딩을 통해 좋은 곳을 많이 알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이름 없는 곳들)
멀리 다리가 보이는데 이곳이 그 유명한 이포보다. 삼국지에나 등장할 법한 이름이다.
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줄 서서 도장을 찍었다. (수첩이 없어 손등에...)
아직 갈 길이 멀어서 지나쳐 간다. 한낮이지만 겨울이 가까워져 해가 기우는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이포보를 지나면 얼마 가지 않아 큰 규모의 공원이 나온다. 당남리 섬과 야구장, 족구장 등 생활체육시설이 커다란 부지에 조성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면 캠핑장이 두 곳 나온다. 이포보 웰빙 캠핑장과 이포보 오토캠핑장이다.
캠핑장 구경에 한눈을 팔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파란색 코스가 자전거 도로인데 남한강변 오프로드로(빨간 화살표) 나오고 말았다. MTB는 역시 오프로드가 제맛!
이대로 쭉 가서 다시 자전거 도로를 만날 수 있지만 2.1km를 오프로드로 달려야 하니 K 군의 하이브리드 자전거로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펑크가 염려되어 자전거도로로 합류하기로 했다.
500미터 오프로드를 달리다가 남한강대교 아래서 경사도 높은 둑을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올랐다. 이번 라이딩 최대의 난코스였다. 힘들지만 재밌는(?)
둑 위에 올라 잠시 쉬어 간다. 첫 번째 휴식이다.
꽤 오래 달려왔는데 아직 반에 못 미치는 거리였다. 해는 기울어가고 도로 위의 그림자는 점점 길어졌다. 슬슬 걱정이 시작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해가 떨어진 다음 도착할 것 같은데?’
이후 양촌리 외곽 자전거 도로를 따라 양촌 나루터를 지나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5.5km의 가장 지루한 구간을 만나게 된다.(언덕 없는 최대의 난코스다)
도중에 탁 트인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지루한 구간의 중간지점이다. 당산리까지 2.5km를 더 달려야 한다. 이 도로가 끝날 즈음 어딘가에서 오늘 주행거리의 반을 지나게 된다.
당산 1리를 지나서 붉은 아스팔트 도로가 나오면 여주보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로는 레드 카펫처럼 여주보로 길을 안내한다.
멀리 여주보가 보인다. 이포보와 달리 자전거도로는 여주보를 건너 다시 남쪽으로 이어진다.
빨간 아스팔트 도로도 여주보를 가로질러 건너편까지 이어져 있었다.
보를 건너면 왼쪽으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간다. 해는 기울어 가는데 우리는 이제 겨우 반을 지났을 뿐이니 마음이 조급해졌다.(인증센터 무시)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주 시내가 눈앞 가까이 보인다. 시내와 가까워지니 자전거도 많이 눈에 띄었다.
여주 시내를 가로질러 여주대교까지 오니 자전거 도로는 나무로 만든 다리를 올라 시내로 이어진다. 영월 근린공원을 돌아 다시 한강과 만나게 된다. 인근에 CU 편의점이 있어 들러서 저녁과 아침에 먹을 물과 음식을 구입했다.(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목을 축이고 음식으로 더 묵직해진 자전거를 끌고 남한강변에 들어서니 얼마 가지 않아 황포돛배 선착장이 나왔다. 이어지는 캠핑장은 금은모래 캠핑장, 아이가 있는 가족단위 캠핑객이 많았다. 자전거 대여소도 있어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강천섬에 다녀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이쯤 후회를 몇 번 하게 된다. 두고 온 차도 생각나고...)
연양지구공원을 지나면 멀리 강천보가 보인다. 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는 한강문화관 건물에도 편의점(음식은 여기에서 구입하면 될 듯)과 커피숍이 있었다. 해가 넘어가고 있어, 사진도 없이 PASS!
강천보 위로 다시 강을 건넜다.(양평-강천섬 코스에 이렇게 두 번 강을 건넌다)
강천보에서 자전거 도로로 이어진 급경사 내리막은 사고가 많아서인지 경고문도 있고 도저히 타고 내려갈 수 없게 요철을 설치해 놨다.
보통 자전거라면 어렵지 않겠지만 짐 무게가 상당해서 내려가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라이딩에서 유일하게 내려서 걸어간 곳이다.
가야지구 공원, 풍경도 아름답고 자전거로 임도를 따라가도 좋을 것 같은 곳이다. 오래 전의 자연미 넘치는 한강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시멘트로 다듬어진 한강 공원을 생각하면 과연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어쨌든 해가 지평선에 닿고 있었다.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익숙한 강천섬 입구의 풍경을 만났다. 몇 번이나 보았던 풍경이 내가 온 자전거 길과 이어져있다니 작은 감동이 마음에 일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난 기분이기도 하고)
해는 이미 건너편 산 아래로 내려갔다. 시간은 4시 40분
1시에 출발했는데... 3시간 40분 만에 강천섬에 도착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14년 된 캐넌데일 MTB, 고생 많았다.(반려 견이면 한 평생을 함께 한 셈) 시원스럽게 달리지는 못하지만 평생 탈 예정이다.
텐트도 피칭하기 전에 드론을 꺼내 해지기 전 강천섬 전경을 담고 싶었지만 포기했다.
강천섬에 파란 공사장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서 찾게 된 공원에 누구를 위한 건물을 짓는 것일까? 파란 가림막으로도 강천섬의 자연미가 사라졌는데 아마 건물이 들어서면 내년의 봄은 더 이상 지금까지의 강천섬이 아니게 될 것 같다.
텐트를 피칭하고 K와 비화식으로 가볍게 술과 저녁을 함께했다.
20kg의 짐을 지고 달려온 43km, 결코 가벼운 라이딩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르고 페달을 밟던 오늘과 달리 내일의 길은 훤히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완급을 조절할 수도 있고 마음의 준비도 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여행과 삶의 다른 점 아닐까?
물론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진 않는다.
여수대교 급경사를 내려오던 중 충격을 받아 짐받이가 짐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떨어져 나가는 사고가 났다. 오르트립 가방은 찢어지고(내 마음도) 새 드론도 걱정... 공교롭게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랜치 2개를 가져갔는데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 중에는 반드시 휴대할 수 있는 필수 공구는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무거운 가방 3개와 자전거를 끌고 30km를 갈 수도 없어 검색해보니 다행히 10분 거리에 삼천리 자전거가 있었다. 시내에서 사고가 난 것이 그나마 천만다행.
덕분에 잊을 수 없는 다양한 경험을 안고 처음 출발한 막국수 집에서 버킷리스트 하나를 함께 지웠다. 그런데 막국수 맛이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동치미 국은 얼마나 맛있는지 두 그릇을 뚝딱.
오래 기억에 남을 여행을 해보시겠다면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션표의 자연여행 유튜브, 인스타그램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