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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표 seanpyo Apr 01. 2022

몽골여행 초원의 끝 알타이 타왕복드 국립공원 이야기

두근두근 몽골여행 서부 #8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해가 뉘엿거리고 있다.




사실 해의 위치는 그대로인데 우리가 능선의 그림자 아래로 이동하고 있었다. 단지 그늘로 들어온 것뿐인데 몇 시간이 훌쩍 지난 것처럼 어둡게 느껴졌다.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지만 말과 낙타의 느릿한 걸음을 조절할 수는 없었다. 도착하면 어두워지기 전 자리를 잡고 텐트를 먼저 쳐야 할까? 아니면 가방을 던져두고 한 번뿐인 타왕복드의 매직아워를 감상해야 할까? 조급한 마음 안에 설렘과 걱정이 섞여 터지기 직전의 뻥튀기 기계처럼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베이스캠프에는 이미 많은 텐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모양과 색상이 같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개인이 가져온 텐트는 아니다. 이곳을 '유럽인의 여행자 캠프'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여행자를 대상으로 렌트를 하는 일종의 숙박시설 같다. 주변에 호텔은커녕 게르조차 없으니 이곳에 머물면서 하룻밤을 보내거나 만년설 트래킹을 하려면 야영을 하는 수밖에 없다.






자, 그럼 말에서 내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답은 뻔하다. 이 먼 곳까지 힘겹게 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베이스캠프와 만년설 사이에 솟은 언덕 위로  두 손, 두 발을 이용해 올라갔다. 언덕 너머의 풍경은 마치 손뼉을 맞추기 위해 기다린 것처럼 완벽한 타이밍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곳에 앉아 하루를 보냈다 해도 우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은 바로 지금이었으리라! 머무르고 싶어도 일정상 여유가 없는 우리에게 단 한 번뿐인 타이밍과 날씨는 '행운’그 자체였다.






거친 폭우, 강한 바람. 자연이라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 가운데 우리가 뽑은 것은 행운의 카드였다. 하늘은 너그러운 미소로 지긋이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서서히 저물었다. 우리는 언덕 위 작은 어워* 옆에서 노을을 감상했다. 한낮 뜨거운 햇살을 뿌리던 태양이 넘어간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만년설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어워 : 여행자의 행운을 비는 작은 돌탑. 여행자는 어워를 시계방향으로 세 바퀴 돌면서 안전한 여행을 기원한다.







우리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고도가 높아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일까? 아니면 설산의 황홀한 풍광 때문일까? 어쩌면 우리가 서 있는 곳의  특별함 때문일 것이다. 비용만 지불하면 쉽게 갈 수 있는 관광지와 달리 요행 없이 달려온 여정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여정이 순탄하리라 장담할 수도 없다. 불과 몇 분 전 수백만 원 하는 렌즈가 고장 났고 미리 고백하건대 다음 날은 카메라, 그리고 8일 차에는 드론이 요단강을 건넜다. 먼 거리만큼이나 많은 일을 만난 여행이었고 힘든 도전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발자취로 남았다.


우리의 한걸음 한걸음은
초원 위에 새기는 타투였다.















느지막이 잠에서 깼다.
이미 해가 뜬 다음이다.





화장실을 발견했다. 외딴곳에 덩그러니 있으니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멀리서도 살필 수 있었다.
사람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화장실을 향해 출발했다. 4~5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화장실은 2칸이다. 문이 없고 칸막이도 허리보다 조금 높은 정도라서 일어서면 옆 칸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서 타왕복드의 풍경을 느긋이 감상할 수 있었다. 작은 반전이다. 저 멀리 텐트도 보이지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가만히 앉아 풍경을 즐기며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세상에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 있는데 말하자면 바로 이 순간이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경험해 본 이들만 눈 빛과 미소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체험. 번듯한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는 것과 비교한다 해도 이날 아침이 좋았다. 경험해보았다면 아마 당신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을 거다. 사람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에 더 가치를 두는 법이니까.






만년설과 베이스캠프 사이에는 둑처럼 높고 긴 돌무더기 언덕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언덕 위에 올라 만년설을 두 눈으로만 구경했다. 만년설 위를 걷고 싶었지만 여름이라 어떠한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 안전을 위해 모험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그 언덕은 산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기운의 바람막이 역할을 했고, 탐험가와 여행자를 구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반환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몽골 서쪽의 끝 언덕 위의 작은 어워를 돌아 이제부터 동쪽을 향해 울란바토르까지 2,000km가 넘는 긴 여행을 떠난다.






말을 타고 세 개의 산을 건너다




느릿느릿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오전 10시, 우리는 타왕복드에서 출발했다.






‘5개의 봉우리’라는 뜻의 타왕복드. 봉우리마다 이름이 있지만 도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4,000미터가 넘는 산맥이 길게 이어져 있는 풍경은 미서부의 그랜드 티톤 국립공원과 비슷한 모습이었고 오른쪽 두 개의 봉우리 사이 너른 협곡은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떠올리게 했다.






대체로 4,000미터가 넘는 산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어제 차를 세워 둔 곳까지 이동하겠지’ 가볍게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천만의 말씀. 우리는 말을 타고 산을 세 개 넘었다.







보슬 비가 내리더니 좁쌀만 한 우박으로 변했다. 그리고 잠시 후 장대비가 쏟아졌다. 모자의 챙 가장자리로 모인 빗물이 어깨로 졸졸 흘러내렸다. 쌀쌀했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구름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바삐 지나쳐가며 틈새로 햇살을 한 줌씩 뿌리곤 했다. 몽골에 와서 여러 번 말을 타봤지만 이곳에서 2시간 반 남짓 말 위에서 보낸 경험은 내 생애 가장 뚜렷한 기억중 하나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행들은 서서히 지쳐갔다. 초보자가 말을 2시간 이상 타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다. 견디지 못해 말에서 내려 걷겠다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가급적 끝까지 버티라며 만류했다. 해발 3.000미터의 산을 걸어서 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낙오자 없이 무사히 세 개의 산을 넘어 유목민이 기다리고 있는 넓은 분지에 도착했다. 말을 타고 작은 개울을 건너는데 그 역시 기분이 좋았다. 다리에 힘이 빠져 말에서 내리자마자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낙타와 말을 내어준 유목민들과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가 헤어진 곳이 어딘지 지도를 찾아봐도 알 수가 없다. 도로도, 이정표도, 이름도 없는 초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어디'가 아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졌다.









몽골여행 영상

https://youtu.be/HqJu2jxyc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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