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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표 seanpyo Apr 12. 2022

바양울기 유목민과 세 번의 만남

두근두근 몽골여행 서부 #9




높은 곳에서 내려갈 때의 기분이 있다.


비유하자면 롤러코스터보다는 대관람차에 가까운 느낌. 해발이 낮은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한나절이라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내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때로 깊은 경사로를 만나기도 했지만 가끔은 초원을 시원하게 내달리다가도 고막이 기압차를 알리곤 했다. 이것이 바양울기를 떠나는 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양울기 아이막 경계를 지나 오브스로 향하는 길. 주름진 계곡과 봉긋 솟아 오른 산이 점점 자취를 감추며 하나의 세계가 끝나려는 순간. 바양울기는 풍경도 남달랐지만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도 몽골인들과 생김새가 달랐다. 덕분에 몽골이 아닌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같은 기분도 들었다. 바양울기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번의 만남을 소개한다.







1



독수리 사냥을 하는 유목민




타왕복드 입구 작은 마을, 점심식사를 위해 차에서 내렸는데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카자흐 복장을 한 초로의 남자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 작은 말을 탄 아이 둘과 이동 중이던 그의 오른손에는 커다란 독수리가 앉아있었다. 두툼한 가죽 장갑을 움켜쥔 날카로운 발톱과 뾰족한 부리, 맹수가 풍겨내는 아우라와 상반되는 온화한 미소를 장착한 사내는 소년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멋과 기품이 있었다. 비록 사냥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바양울기를 떠나기 전 사냥꾼의 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했다.







2



청재킷을 입은 여자아이


사춘기의 소녀가 있었다. 한창 자기 세계에 빠져들 나이지만 사람이 그리운 외딴 환경 때문인지 외지인에 대한 호기심을 감추지 못해 주변을 맴돌았다. 청재킷, 청바지에 귀걸이와 예쁜 머리 장식, 뺨에는 예쁜 스티커를 붙인 멋쟁이 꼬마 아가씨였다. 첩첩산중에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이렇게 예쁘게 꾸몄을까? 그 아이는 자신의 방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카작인의 게르는 일반적인 몽골인 게르에 비해 장식의 문양과 색이 화려한데 이 아이의 침대는 보다 더 화려했다. 그리고 마치 손님의 방문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소유하고 있는 자신의 보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선글라스, 머리핀, 인형, 샴푸 등 대체로 이곳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도시의 부산물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아마 소녀는 번잡한 도시로의 여행도 소망할 것이다. 우리는 대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이곳으로 왔으니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것 같지만 실은 같다. 사람은 가지지 않은 것, 결핍된 것을 더 소망하니까.








3



말을 탄 소년들



신나게 내리막을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유목민이 여럿 모여 있었는데 이 첩첩산중에 흔한 일은 아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주머니 한 분이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우리 드라이버는 마치 바톤을 넘겨받은 릴레이 경주의 주자처럼 헐레벌떡 그쪽으로 달려갔다. 몽골인들은 초원에서 어려움에 처한 누구를 위해서든 언제라도 도움을 줄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에게도 자유시간이 생겼다. 따라 내려가 유목민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들을 촬영하고 즉석 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선물했다.






외지인이 신기했는지 인근 게르의 아이들이 말을 타고 구경 왔다. 행복했다. 유목민 아주머니의 코피가 아니었다면 이들과의 만남도 없었겠지. 아마도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꾸벅 졸며 아이막 경계를 넘었을 것이 분명했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린 것 같은 풍경, 사람과의 만남. 이것은 인연이고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이 순간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모델이 되어준 친구들과 추억 한 장을 주고 받았다. 나는 디지털 이미지로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은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이 날의 만남을 기억할 것이다.







그곳에 머무른 시간은 겨우 30분 남짓,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들은 나에게 바양울기의 얼굴이 되었다.


그 친구들도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면 잠깐 스쳐 지나간 한국인 아저씨를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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