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션표 seanpyo Apr 18. 2022

타왕복드 탈출기

두근두근 몽골여행 서부 #10



타왕복드로 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한다



몽골 서부여행을 준비하며 우리는 3 곳의 행선지를 정했다. 바양울기의 타왕복드, 오브스의 하르가스 호수, 자브항의 하르 호수다.

그랜드티톤과 융프라우를 합성한듯 한 해발 4천 미터의 만년설, 지중해 휴양지를 연상케하는 새하얀 절벽과 파란 호수 그리고 에메랄드빛 호수로 쏟아지는 황금빛 모래사막. 몽골 서쪽 자연경관의 3대장이라 할 수 있는 풍광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여행이었다.



좌) 타왕복드   가운데) 하르가스 호수   우) 하르 호수


해발 4천 미터 만년설 앞에서 하룻밤을 보낸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하르가스 호수다. 챌린지와 휴양의 극적인 반전, 하지만 문제는 이 둘의 거리가 꽤나 멀다는 것이다. 타왕복드에서 하르가스 호수까지의 경로를 지도에서 살펴보면 우리가 이동해야 할 거리를 가늠할 수 있다. 같은 척도의 제주도(그림 오른쪽 아래) 크기와 비교해보자.





목적지까지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룻밤. 다음날 호수에서 지는 해를 보려면 첫 날 타왕복드 산자락을 벗어나 최대한 멀리 도망가야 했다.








푸르공과 타라박(커다란 들쥐)


점심을 먹고 출발한 지 한참 시간이 지났다. 허나 몽골여행에서 시간과 거리는 비례하지 않는다. 흙길, 모래 길, 오르막, 내리막... 포장로보다 비포장로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준은 시계가 아니라 해의 위치다. 몽골은 한여름이면 밤 10시가 넘어 해가지기도 한다. 서머타임이 있고 서쪽은 울란바토르와 시차도 있어 시계보다 해를 보고 판단하는 편이 빠르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해가 높은  능선에 가까워질 무렵 우리는 추가시간에 만회 골을 넣어야 하는 축구선수의조급한 마음으로 길을 재촉했다. 해가 지기   개의 산모퉁이라도  돌아 이왕이면 좋은 풍경에 텐트를 치기 위해서였다.








여행은 일상의 굴레에서 빠져나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좌표조차 찍을 수 없는 곳에서 하룻밤은 쉽게 얻을 수있는 경험이 아니다. 네트웍으로 온 지구가 연결되는 꿈 같은 세상이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도 모르게 사각死角, 빈틈을 찾게 되었다. 그 무의식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른 초원의 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텐트를 설치하는 것 만으로도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 함께하는 동행들도 같은 마음일터 멀리 떨어져 홀로 텐트를 치는 사람도 있고 두 명, 혹은 무리 지어 제각각 조용히 움직였다.









땅에 선을 긋고 다닥다닥 붙어 야영을 하는 우리나라의 캠핑 환경을 생각하면 몽골은 부인할 수 없는 캠퍼들의 천국이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술잔을 나누며 지는 노을을 감상한다.







해는 어디서나 하루에 한 번 뜨고 지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하루를 보낸다. 빌딩 숲 속에서 늘 조각난 하늘만 보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일몰은 빼놓을 수 없는 하루 일과다. 매직 아워의 마법은 단 30분. 소리 없는 거대한 파도가 동에서 서로 지나가는 순간, 하늘과 땅의 모든 색이 한순간 반전된다. 10박 11일의 여행. 네 번째 밤이 찾아오고 우리는 성냥팔이 소녀처럼 남은 일몰의 숫자를 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별을 기다리며 초원의 밤을 즐겼다.









자정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아침 해가 뜨는 시간에 출발해야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당장 아침의 여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시간에 쫓겨야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멍하니 앉아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평선 위로 빼꼼 고개 내민 태양에게 조아리듯 납작 엎드린 텐트의 그림자가 초원에 길게 누워있었다. 문득 일몰과 일출의 분위기는  차이가 날까 의문이 생겼다. 과학적인 이유는 일단 접어두자, 한자리에 앉아서 직접 경험해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없을 게다. 아침의 푸른 기운은 하루를 기분 좋게 재촉하는 . 우리는 서둘러 이동 준비한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텐트가 아침 이슬에 젖어있다. 날씨가 건조한 몽골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텐트 스킨이 마르는 동안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짐을 챙겼다.





텐트, 테이블, 의자  초원에서 사용한 살림이 가방 안에 들어가고 차에 옮겨 싣는다. 이제 초원에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야말로 노마드의 여행. 우리는 흔적 없이 길을 떠났다.









얼마나 달렸을까?




드라이버 일벌 아저씨가 갑자기 차를 세웠다. 이유는 몰랐지만 엉덩이도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제야 우리가 멈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저 먼 곳에 타왕복드의 만년설이 보인다.






꼬박 하루를 도망쳤는데 아직  시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관용구가 떠올랐다. 산을 내려올  인사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 타왕복드의 자락을 밟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언덕을 내려가면 다시는   없기 때문에 일벌 아저씨가 차를 세운 것이다. 서로의 모습 이상 볼 수 없는 곳에서의 인사가 진짜 안녕이다. 우리는 팔을 휘휘 저으며 타왕복드와 작별했다.






아직 우리는 꽤 높은 곳에 있구나. 구름이 가까운 곳에 더 머물고 싶어도 우리는 가야 한다. 몽골의 서쪽 국경에서 울란바토르까지 푸르공으로 가는 여행, 의심할 여지없이 멋진 계획이었지만 이렇게 아쉬운 여행일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눈부신 창밖 풍경을 실눈으로 바라보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몇 번은 머리를 부딪쳐가며 풍경 아름답기로 소문난 옵스 아이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2022년 두근두근몽골원정대 동행을 구합니다 (링크)

https://naver.me/FPumLVG8




두근두근몽골원정대의 여행 영상


매거진의 이전글 바양울기 유목민과 세 번의 만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