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여행記 #4
만화 드래곤 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이곳을 참고해서 그림을 그린 것 아닐까?
만달고비에서 서남쪽으로 80km 떨어진 이흐 가즈링 촐로(Ikh gazriin chuluu)는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 산으로 돌이 반경 30km에 흩어져 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가는 곳은 바가 가즈링 촐로(baga gazriin choluu)로 '바가'는 '작다'. '이흐'는 '크다'는 뜻이다. 바가 가자링 촐로에 둥글둥글한 바위들이 덩어리져 있다면 이흐 가즈링 촐로에는 하늘 높이 솟은 바위 더미들이 많다. 그렇다면 여행사는 왜 바가 가자링 촐로로 갈까? 볼거리가 더 많아서? 이유는 간단하다.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이흐 가즈링 촐로는 비포장로로 2~3시간 남짓 달려야 하니 왕복하자면 반나절이 지나버린다.
’와!~‘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데코레이션 하지 않은 생크림 케이크같이 반듯한 지평선을 수시간째 달리다가 먼발치에서 만난 그곳의 풍경은 새로운 세계의 경계처럼 느껴졌다. 마치 먼 바다 위에서 만난 해일처럼 지평선을 가로막은 바위들의 압도적인 풍경은 페널티킥의 수비벽처럼 견고하고 위압적인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 경계로 다가가던 우리는 페널티 라인 근처에 차를 멈춰 세웠다.
체체가 트렁크에서 무언가를 찾는 동안 고비에서 만나기 힘든 바위 산의 생경함을 기록했다. 이흐 가즈링 촐로는 1,560m ~ 1,706m 높이로 우리나라 태백산보다 높지만 평균 해발고도 1,500미터가 넘는 고원 국가이다 보니 실제로 그만큼 높게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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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 단지 모자를 들고 걸어갈 뿐인데... 느낌이 있다.
나는 랜드스케이프를 담는 사진가가 아니다. 그곳에서 만난 이방인의 초상을 담지도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기록하는 나에게 동행의 의미는 더 소중하다.
선호는 여행의 기록에 빠져선 안될 소중한 존재다. 처음 선호와 몽골에서 만난 것은 2011년, 자연스럽게 시작된 우리 인연에 감사한다. 몽골여행이 내 인생에 소중한 의미라면 그와 함께했기에 더욱 반짝일 수 있었다.
체체는 차에서 꺼낸 칭기스 보드카를 컵에 붓고 차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가 멀리 돌산을 향해 뿌렸다. 이때다 싶었던 바람이 날아와 먼저 목을 축인다. 자화는 여행의 안녕을 기원하는 초원의 관습이라 설명했다. 말없이 지켜보는 돌산에게 허락을 구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우리도 제사를 지낼 때 무덤 앞에 술을 뿌리곤 하지만 웅장한 풍경 덕분인지 더 근사해 보였다. 그다음 차례대로 술을 한 잔씩 들이켠다.
체체도 한 잔,
?? 아니... 조금만.(운전해야지)
먼발치에서 잠깐 시간을 보낸 우리는 곧 대자연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제각각 모양이 다른 크고 작은 거대한 돌무더기들이 반반한 지면 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만화 드래곤 볼의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가 이곳을 참고해서 그림을 그린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흡사 인디애나 존스나 스타워즈 촬영 세트장 한가운데 서있는 기분도 들었다.
모험심을 부추기는 자연환경이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거대한 체스판 위를 걷는 소인국 사람처럼 큰 바위 하나를 돌아서니 그 뒤로 돌무리들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작은 보폭으로 아무리 걸어봐야 의미 없을 것 같은 아득함…
800평방 킬로미터에 흩어진 돌산들 가운데 자연적으로 소리가 잘 전달되는 야외음악당이 있다.
이곳에서 매년 음악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음악회를 열기에 딱 좋은 곳이겠다는 생각에 무릎을 쳤다. 조금 전까지 무엇을 할지 몰라했던 나였기에 선호에게 조금 높은 곳에 올라 소리를 질러 보자는 제안을 했다.
동행을 통해 여행을 기록하는 나는 연출하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소리가 돌아오는지 무대 한가운데서 확인하는 선호에게 이왕이면 ‘멋진 벼랑 위에 올라가서 해보는 건 어떨까?’ 물어보았던 참이다.
모험심을 자극하는 협곡에 이끌려(?) 바위 위를 오르던 선호가 소리쳤다. 마치 볼륨을 낮춘 것처럼 소리가 조금 전의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어서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연히 발견했지만 너무나 멋진 풍경이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기분 좋은, 눈높이로만 감상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풍경이다. 다음을 상상할 수 없는 여행이 더 좋아졌다.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풍경임에 틀림없지만 복사하듯 카메라에 담는 행위가 내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구글 이미지에 'ikh gazriin chuluu'라고 검색해보면... 많은 사진이 검색된다. 이미지 과잉의 시대, 굳이 풍경을 찍어 올리는 것은 사진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 외에 의미를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특별한 곳에서 그날의 우리를 담았다.
시간이 여유롭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었지만 4박 5일의 짧은 시간으로 그 바람을 어루만지기에 고비는 넓고 목적지는 멀었다. 고비를 여행하는 이들은 차강소브라가, 홍고링엘스, 욜링암, 바얀작, 바가가즈링촐로가 마치 고비의 기본 공식인 것 처럼 여행하지만 나는 이곳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우리에게 소중한 경험이 하나 업데이트되었다. 고비의 초원에 들어선 지 반나절 만이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 감정이 언젠가 나를 이 곳에 데려다주지 않을까? 만약 다시 찾는다면 그때는 이 자리에서 일몰과 일출, 그 사이의 긴 밤을 보내리라.
중고비의 대표적인 랜드마크 '이흐 가즈링 촐로'를 소개합니다.
돈드 고비 아이막은 몽골의 북쪽과 남쪽의 기류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지역입니다. 그 영향으로 이 지역에는 바람에 의해 생긴 웅장한 기암괴석을 볼 수 있습니다. “이흐 가자르 촐로”는 화강암으로 형성된 바위 산으로 길이 30km, 폭 15km로 600 평방 킬로미터에 돌산들이 흩어져 있는 독특한 자연 형상을 가지고 있는 중고비의 랜드마크입니다.
이흐 가자르 촐로 지역에는 Toonot, Aguit, Ehiin Umai, Iheriin, Tolgoin, Rashaant 등 40개 이상의 동글이 있습니다. 2003년에는 국가의 특별 보호 지역으로 지정할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곳입니다. 하지만 이흐 가즈링 촐로가 알려진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몽골에서 돈드고비 아이막은 “음악의 요람”, 민요가수와 “공룡의 발상지”로 특히 유명한 지역입니다. 몽골의 대표적인 민요 가수는 돈드고비 출신이 많고 몽골 long song(긴 노래가 아니라 호흡이 긴 몽골의 전통 민요입니다)의 대표 가수 노로브반자드 (N.Norovbanzad)도 중고비 출신입니다. 2006년 몽골제국 건국 800주년을 맞이하며 돈드고비(중고비)에 최초의 야외극장을 세웠는데 바로 이곳 이흐 가즈링 촐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행사가 개최되지 못했지만 2022년 여름 DJ 음악 콘서트도 열려 내국인들에게는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음악을 좋아한 분들이라면 드넓은 자연에서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여름 이벤트에 꼭 한번 가보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