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여행記 #5
다시, 고비의 시계가 움직인다.
고비여행의 두 번째 행선지이자 첫 숙영지인 차강소브라가로 향했다. 4박 5일, 왕복 2000km의 고비 여행에서 그날의 목적지는 곧 그날의 야영지를 의미했다. 계획했던 장소에 도착한 날도 있었지만 도중에 해가 지면 예정 없던 초원 위에 캠프를 마련했다.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차 안에서 보냈는데 차를 멈추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소변을 볼 때
두 번째, 사진 촬영을 위해
세 번째, 사람, 동물, 우물 같은 무엇을 발견하거나 만났을 때
마지막은 드라이버 체체가 가끔씩 길의 방향을 읽거나 땅의 상태를 살필 때다.
질퍽한 땅의 가장자리를 발견한 체체는 흙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짧은 여행을 떠났다. 우기에 속하는 몽골의 여름에는 고비에도 비가 내려서 단단하던 땅이 금세 점토질의 수렁으로 변하고 자칫하면 발이 묶일 수 있다.
일행들은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소변을 보고, 담배를 피운다.
얼마나 지났을까... 체체는 수백 미터 앞까지의 길을 확인 한 뒤 돌아왔다. 질퍽한 땅의 범위가 넓거나 심할 경우 멀리 돌아가겠지만 우선 100여 미터 앞까지 차를 보내기로 했다.
걸어서 물렁한 초원을 건넌다. 신발은 엉망이 됐지만 밤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가. 인적 없는 곳에 차가 빠져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보다는 낫다.
땅의 상황이 좋아지면 초원을 시원하게 달린다. 때때로 서울에서는 피곤하기만 한 운전대를 잡아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다시 중고비 아이막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사실 다음 목적지까지의 거리도 시간도 궁금하지 않았다. 이름도 몰랐다. 언제부터였는지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는 낙엽처럼 세 명의 몽골 친구들에게 의지해 여행의 순간이며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가끔 도로를 만나면 차를 세운다. 고비에서는 도로를 만나는 것조차 흔한 일이 아니다. 길이 지평선을 향해 쭉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디자인이나 사진 수업 기초를 이곳에서 한다면 효율적 이리라, 세상이 온통 점, 선, 면이다.
긴 그림자를 땅 위로 뽑아내며 차에서 내렸다. 차강소브라가 이정표를 만났지만 표식만 덩그러니 있을 뿐 사방이 지평선이다. 단조로운 풍경 때문인지 늘 출발한 곳에 다시 내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간은 저녁 9시가 이미 넘었는데 하늘은 해의 위치가 조금 바뀌었을 뿐 여전히 환하다.
지평선을 향해 아무리 달려도 여전히 세상의 반은 하늘이고 나머지 반은 땅이다. 걸음을 멈추면 무음 처리된 영화나, 음악의 여백처럼 고요함이 온몸을 감싼다. 지평선을 향해 던진 소리는 고양이를 만난 쥐처럼 황급히 달팽이관 속으로 들어온다.
가만히 숨을 죽이면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정지된 그림 같은 풍경.
텅 빈 그곳에서 살아오며 경험하지 못한 ‘무엇’을 발견했다. 그것은 '적막감' '먹먹함'... 그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청각도 시각도 아닌 공감각이었다.
다시 길을 떠난다. 자를 대고 그은 듯 반듯한 직선 아래, 방향을 가늠할 무엇 하나 없다. 조금 전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났지만 눈에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신대륙을 찾는 콜럼버스처럼 애타는 마음으로 좌우로 살피며 나아갔다.
날은 저무는데 지평선은 빈 종이를 뱉어 내는 잉크젯 프린터처럼 우리가 찾는 것을 내어주길 거부하듯 텅 빈 초원만 출력할 뿐이었다.
이대로 어둠이 먼저 찾아올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목적지에 먼저 도착할 것인가... 다행인 것은 10시가 훌쩍 넘은 밤이지만 지평선 너머 빛의 흔적이 은은한 푸른 조명처럼 남아 땅을 비추어주었다.
그리고 마침 반가운 이정표를 다시 만났다. 그런데 팻말이 나무 기둥 아래 떨어져 있다. 빌게는 차에서 내려 화살표를 걸었다. 왼쪽 방향으로 걸어도 맞고 오른쪽으로 걸어도 딱 맞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우리가 향하려는 방향으로 화살표를 걸어 놓은 채 출발한다.
부디 우리가 선택한 쪽이 맞는 방향이기를...
고비의 어둠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올라온다. 아직 하늘은 빛을 머금은 야광처럼 어둡게 빛나지만 그늘에 잠긴 땅 위에서의 운전은 헤드라이트에 의존해야 했다.
빌게, 이제 적당히 이 근처에 야영하면 안 될까?
빌게는 단호했다. 오늘은 우리의 캠핑지가 정해져 있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 지형을 살피더니 이제 거의 다 왔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차강소브라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미 해는 졌고, 울퉁불퉁한 실루엣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둠은 땅 위의 풍경을 모두 삼켜 버렸다. 우리는 서둘러 고른 자리를 살펴 텐트를 쳤다.
7월 21일 한여름의 고비지만 복장을 보면 알 수 있듯 날씨는 비교적 쌀쌀하고 바람도 분다. 고비에 처음 펼치는 텐트, 기분이 묘하다. 텐트 설치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울란바타르에서 꼬박 하루를 달려온 긴 여정. 우리가 만든 베이스캠프는 아웃도어 잡지에서 볼 수 있는 멋진 모습은 아니었다.
사내 다섯 명이 5인승 SUV를 타고 오다 보니 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잔손이 가는 도구가 없으니 그만큼의 여유가 있어 좋았다. 깨물기 전 단팥빵처럼 밋밋해 보여도 우리는 달달했다. 맛있는 빌게의 음식과 자화가 건네는 칭기즈 보드카도, 아직 여물지 않은 우리의 어색함도, 여행은 이제 시작이니 내일은 더 좋을 거라는 기대 감도...
까만 허공을 바라보며 빌게가 말했다. '내일 해가 뜨면 너희들 깜짝 놀랄 거야..' 늘 무뚝뚝한 표정인 그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보였다.
사실 그 순간 나는 빌게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가만히 올려 본 하늘에 거짓말처럼 펼쳐진 우주를 바라볼 뿐이었다.
아 우리는 정말 고비의 밤에 와 있는 것일까?
진짜몽골여행 고비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