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리왁 린드만 레이크 백패킹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호수를 가진 나라다.
200만 개 이상의 호수가 있고 이는 전 세계의 60%라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로키 여행도 루이스(Lake Louise), 모레인(Moraine Lake), 페이토(Peyto Lake), 에메랄드(Emerald Lake), 말린(Maligne Lake) 등 호수 여행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캐나다 낯선 호수에서 하룻밤 영상
BC주 칠리왁에서 가볼 만한 캠핑 그라운드가 있는지 물어보니 동생은 컬터스 레이크(culus lake)와 칠리왁 레이크(Chilliwack Lake)의 캠핑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역시나 호수의 나라 다운 추천이다. 검색을 하다가 백패커들에게 꽤나 알려진 트레일과 백패킹 그라운드가 칠리왁 호수 인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린드만 트레일과 린드만 호수(Lindeman Lake)의 캠핑 그라운드다.
구글어스로 확인해 보니 산 중턱에 위치한 호수에 캠프 그라운드가 있었다. 동생에게 캐나다에 도착하면 집이 아니라 린드만 트레일 입구에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캐나다의 첫 밤을 그곳에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정한 대로 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가 4시간 반 연착되면서 일정이 밀렸다. 결국 여행 첫 밤을 동생 집에서 보낸 우리는 이튿날 아침부터 베더트레일 트레킹, 티팟힐 등산, 컬터스 호수와 다운타운까지 둘러보고 나서야 칠리왁 여행의 마침표를 이곳 린드만 레이크에서 완성하게 되었다.
인적 없는 호수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등산객이 없을 때 오르기 위해 느지막이 트레일 입구에 도착했는데 좁은 주차장에 빼곡히 주차된 차들을 보고 아차 싶었다. 외국인이 검색해서 찾을 정도의 캠핑 그라운드라면 얼마나 인기가 많은 곳일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주차된 차를 살펴보니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다 멀리 미국에서 온 번호판도 있었다. 문득 이 나라의 백패킹 문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산을 오르기도 전, 이미 건너편 산 너머로 해가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기운이 주변 나무에 어리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밴쿠버에서 일정이 있으니 아침 8시에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동생과 헤어져 서둘러 산을 올랐다.
등산로 입구에서 숲으로 들어서니 어둑한 길 반대편에서 한기가 흘러나왔다. 기온이 서서히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를 넘어선 것처럼 4~5도 정도 뚝 떨어졌다. 저녁 8시 50분에 등산을 시작했고 길이 험한 산행이라 어두워지기 전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린드만 호수까지 오르는 길은 낮에 경험한 트레일과 사뭇 달랐을 뿐 아니라 이후 로키에서 만난 여느 트레일보다 더 거친 등산 코스였다. 하지만 자연을 정돈하지 않고 그대로 둔 멋진 등산로였다. 방치한 느낌이지만 통행이 고약한 곳마다 길을 열어놓은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는 길을 안내하는 표식이 있고, 등산로를 가로막는 커다란 나무는 옮기기보다는 사람이 통과할 수 있는 만큼 잘라내고 커다란 바위는 자리를 살짝 옮겨 길을 터놓았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날것의 숲 체험을 가벼운 등산으로 경험할 수 있는 멋진 트레일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쉼표 없는 연주처럼 경사도 높은 오르막이 이어졌다. 힌 시간 남짓 쉬지 않고 오르니. 짐이 많은 동행의 등반 속도가 느려졌다. 돌아보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캐나다에 도착한 직후, 시차 적응도 쉽지 않을 텐데 아침부터 10km 넘는 트레킹과 일정을 소화하고 저녁까지 백패킹이라니...
마침내 호수에 도착했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호수 앞 캠핑 그라운드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있었다.
백패커를 위한 텐트 데크는 이미 자리가 없고 노지에도 텐트가 있었다. 비교적 평평한 곳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누우면 옆으로 미끄러질 것 같은 비탈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천천히 여유 있게 캠핑 그라운드의 풍경을 담아 보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우선은 어둑해지기 전에 텐트 설치할 곳부터 정하고 서둘러 텐트를 쳐야 했다. 사람들이 더 올라오면 그나마 남은 비탈마저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곳에는 곰이나 야생동물 때문에 음식 주머니를 20미터 높이에 매달아 놓는 장치와 꽤 잘 만들어 놓은 멋진 화장실이 있었다. 시설도 영상에 담고 싶었지만 촬영할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할 때 나는 창작자 보다 여행자의 신분을 택한다.
낯선 호수를 즐기는 경험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호수 바로 앞에 텐트를 쳤다. 경사가 있고 잘못 발을 헛디디면 호수에 빠질 수 있는 위치였지만 텐트에 앉아 호수를 바라볼 수 있어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인도인 그룹이 뒤늦게 올라와 호숫가 놀이터에 합류했다. 숲 속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이 많아 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들고 올라온 빵과 과자, 과일을 나누며 조용히 스며드는 어두움을 즐겼다.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이지만 차분히 앉아 호수를 바라보고 자기의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의 백패킹 문화는 자연에 나가면 의례히 술과 음식을 꺼낸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을 그곳에서 조리하고 음미하고 달달하게 취하고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동안 자연은 등 뒤에 두고 서로 관심 없는 사람처럼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냄새나는 음식을 조리하지 않았다. 곰이나 야생동물로부터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날이 컴컴해지고 각자 텐트로 들어갔다. 침낭 안에 누워 불을 끄니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인도인들 중 한 여성이 나지막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자장가처럼 호수 위 컴컴한 여백을 조용히 채웠다.
나는 린드만 메서 한낮의 파란 하늘을 반영하는 에메랄드빛 호수 풍경을 보지 못했다. 늦게 오르고 다음 날 아침 일찍 내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린드만 백패킹은 함께 나눠먹은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처럼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3시 반)부터 일어나 일출을 기다렸지만 해는 뜨지 않았다. 어둑하던 하늘이 환해지고 나서야 졸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 보니 동생과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허겁지겁 짐을 챙겼다. 어제 올라온 시간을 생각해 보면 하산에 30분은 족히 걸릴 텐데...
호수에 들어가 세수를 했다. 할 수 있다면 수영도 하고 싶었지만 늦은 저녁과 이른 아침의 날씨는 쌀쌀했다. 동생은 약속시간이 30분이 넘도록 내려오지 않는 오빠가 걱정되어 숲 속 문턱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어떻게 곰이 나올 수 있는 산속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왜 꼭 그렇게 위험한 여행을 해야 하냐며 만나자마자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내일이면 그녀도 함께 캐내디언 로키로 자연여행을 떠난다. 동생은 캐나다에 살며 이번이 세 번째 로키 여행이지만 늘 차에서 내려 10분 남짓 호수만 둘러보고 다시 차로 돌아오는 관광만을 해왔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아이스크림처럼 이번 여행에서 그녀가 '새로운 경험'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캐나다 로키 여행 하이라이트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