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과 아빠의 기차여행

6살+아빠와 사진여행 4

by 션표 seanpyo





모든 여행의 출발은 설렘을 품고 있다.
그 기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자라 할 수 있다.




엄마의 안전한 마중으로 서울역에 도착한 우리는 여행의 시작을 기념하는 사진을 서로 담았다.




서울역, 엄마 차에서 내려 신호등을 기다리는 두 사람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


기차여행에 대한 묵은 기억 하나가 톡 하고 움텄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 먹기'. 그러나 진열대 앞에 서니, 아이에게 무엇을 먹여야 할지 난감했다. 찬유의 먹을 거리 준비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는데… 결국 아이가 고른 선택지 중 맵지 않은 것으로 골랐다.





여섯 살 보폭에 맞추며 걷기!

아이는 타고난 여행자처럼 호기심 반, 기대반으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타야 할 기차의 안팎에서 시작된 여행을 알뜰히 새기고 있었다.



아빠의 걸음은 아들의 보폭에 맞추면서도, 시선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어야 했다.






드디어 우리를 첫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기차에 올랐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틈틈이 찍어보라고 말했는데 셔터를 누르는 모습이 신중하다. 서로의 사진을 주거니 받거니 왠지 이번 여행, 이런 사진이 꽤나 많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6살과 함께 한 첫 기차여행

'KTX로 경주 가는 길'


전용기에 오른 것처럼 앞장서 자리를 훑는 아이에게 기차표를 보고 자리 찾는 법을 알려주었다.

기차가 출발하면 저녁식사를 한 후, 간단하게 사진기 사용법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여섯 살의 눈 높이로 세상을 보려니 새로운 것도 익힐 것도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스스르’ 기차의 육중한 몸이 얼음판 위 아이스하키 스틱으로 툭 건드린 퍽(puck:아이스하키에서 사용하는 고무 원반)처럼 조용히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이 기차여행의 가장 즐거운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기차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 빠르게 지나는 창밖 풍경이나 객차 안에서 간식 취하기, 간이역 풍경 살피기 같은 - 은 줄었지만, 기차가 출발할 때의 이 느낌만은 여전히 좋다. 아이가 바라보는 곳에 나란히 시선을 맞추고 창밖을 바라보니, 잊힌 기차여행의 감각이 조금씩 되돌아 오는 것 같았다.





카메라 수업 후 아이는 자신의 셀프 사진을 찍고



재밌는 사진이 나오면 시원하게 웃어 재끼곤 한다.(photo by chan-yu)





기차는 빠른 속도로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고 있었지만, 우리는 기차 안의 아늑함 아래에서 작은 여유를 누렸다. 아이가 잠시 아이패드 게임에 빠져있는 동안 다음 할 일을 체크했다. 당장 오늘 밤에 할 일과 시티투어 취소로 비어 버린 내일 일정을 꼼꼼히 계획해야 한다. 그리고 경주에 도착하기 30분 전쯤 렌터카 업체에 확인 전화도.



엄마의 주문 읊기


“이번 역은 신 경주역입니다. 내리실 승객 여러분은 미리 준비하셔서 잊으신 물건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듣고 나니 두 남자의 여행이 못 미더웠던 아내가 찬유에게 신신당부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찬유야~ 자리를 이동하거나 호텔에서 나올 때는 꼭 확인할 게 있단다.”

“첫째, 가방이 있는가?”

“둘째, 카메라가 있는가?”

“셋째, 지갑이 있는가?”

“넷째, 핸드폰이 있는가?”

“네, 네, 네, 네”


찬유는 앵무새처럼 답하며, 엄마의 주문을 외웠다.




이후 우리 부자는 바벨 2세의 최면에 걸린 포세이돈과 로뎀처럼 호텔을 나서고 자리를 뜰 때마다 엄마의 주문을 읊었다.





신 경주역 밤 하늘 아래 낯선 상상

드디어 신 경주역! 2시간 정도 걸렸을까? 너무 빨리 도착해서 여행이라기보다는 옆동네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 아래, 휑한 기차역에서 두 남자가 서 있다. 남자 둘이 여행을 하면 좀 외롭게 비칠 때가 있는데, 아이와 단 둘인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했다. 곧 닥쳐 올 앞으로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하나 둘 줄을 서기 시작했다. 렌터카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폐장 전 안압지에서 야경은 볼 수 있을까? 호텔은 아이와 하룻밤 보내기 적당하겠지?



어쨌거나 쏘아 올린 아폴로 11호처럼 우리는 어떤 돌발 상황이 생겨도 이대로 헤쳐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온 지구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달나라로 향하던 닐 암스트롱이 대기권 언저리에서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상상을 해보자. 어떤 변명을 이야기 한들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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