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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연말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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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Jan 01. 2025

2024년 결산

향상심과 항상심

올해는 뉴웨이즈를 시작하고 가장 길었던 해였다. 연초의 나와 고민들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속초와 인천을 오고 가고 전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2년 살았던 상수집에서 다시 상도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사무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고된 해였지만 스스로를 괴롭히진 않았다.

운동을 꾸준히 하고 뇌에 좋은 식단을 자주 시도하고 영어 공부도 하다 말다 해도 계속은 하고 술로 스트레스를 풀다가도 너무 자주 마시면 술을 끊고 달리기를 했다. 남에게 하듯 나에게도 관대하고 다정하고 눈치도 적당히 보며 살았다.

2024년이 길고 지난해서 2025년을 기다렸다. 2025년에는 더 공부하고 사랑하며 용감하게 살고 싶다.


향상심 向上心


나의 한계가 조직의 한계가 될까 봐 자주 두렵다. 시작할 때는 무엇이 될지 몰라서 불안했다면 이제는 적당히만 하다 끝날까 봐 불안하다. 이게 최선인가 더 잘할 수는 없나 자주 생각했다. 올해만큼 정치가 지겹고 미운 때도 없었다. 그래도 다 망했다는 생각보다 우리도 우리 사회도 아직 안 해본 게 많다는 생각을 더 자주 했다.

해야 하는 게 너무나 많다 보니 흘러간 시간을 어떻게 회복하고 매울 수 있을지 막막함과 슬픔, 조급함을 느꼈다. 이 감정이 날 선 태도나 독단이 되지 않고 조직의 책임감과 담대함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끝까지 갔다고 생각해도 깨어지고 성장하고 나면 더 크고 다르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올해는 그런 순간이 더 많았다. 첫 총선을 순진하게 준비했고 2024년 1월부터는 전환해 볼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보려고 했다. 시스템을 벗어나서 포지셔닝을 생각했다. 이전에 안 해본 일을 압축적으로 많이 했다. 안 해본 일을 하고 나니 배우는 게 많았다. 다행히 소진되기보다 기대를 가지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는 인재 성장 시스템에만 집중하는 게 협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다원화된 사회에 맞는 새로운 민주주의 모델을 고민하고 젊치인이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고민을 시작하던 시기에 방콕에 Women Political Leadership과 관련된 Regional Convening에 초대되었고 동아시아의 여성 정치인, 민주주의와 정치 리더십을 위해 일하는 단체, 필란트로피 조직을 만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의 한계를 로컬 이슈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동아시아의 연결된 비슷한 구조적 문제들이 있었고 우리가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은 동아시아와 동아시아를 넘어선 지역까지 연결되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냥 냅다 넣은 사진

그에 맞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진 팀이 되어야 한다. 리더로서 일의 의미를 협소하게 바라보고 적당하게 만족하고 있었단 부끄러움이 들었다. 작동되는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바꾸기 위해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찾았다.

펀드레이징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고민하던 시기와 맞물리면서 모금 관련 코칭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좁고 짧은 시야로 시스템의 완결성에만 집착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를 선언하고 이를 위한 환경, 협력, 모델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언어를 새로 배운 것마냥 재미를 느끼며 2030년의 뉴웨이즈와 우리가 만들 정치의 모습을 구체화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는 선언이 부족한 것이 아닌 이행이 부족하다는 걸 자주 생각한다. 이행하는 팀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의 확장을 받아들이면서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매몰되지는 않는지, 구성원들이 소진되고 있지 않은지, 어떻게 힘있게 나가는 조직이 되어야 하는지, 무엇에 망설이는지를 생각했다.

그냥 냅다 넣은 사진 2 뉴웨이즈 팀 최고

새로운 결정과 방향에 맞게 팀이 변화하는 시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했다. 며칠은 실감하지 못했고 또 며칠은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열린 거라 생각했다. 과대평가와 낙관이었다. 예상한 것보다 더 최악으로, 예상한 것보다 더 장기화되어 가는 상황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한 교수님이 1987년 이후 우리나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만 갖췄을 뿐 내용과 기능을 채우지 않았고 그에 대한 결과라고 했는데 정말 공감했다. 형태와 절차를 수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데 내용과 기능의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대체로 망가진 채로 형태와 절차만을 이야기하니 아득하다.


믿어지는 것들도 있다. 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안 해본 것이 많다는 것. 더 강하고 명징한 힘으로 뚫고 가는 변화를 만들 때이고 해 볼 만한 일이라는 것. 총력을 다하고 싶다. 나의 한계를 조직이 넘어서면 좋겠다. 그렇다고 너무 경직되거나 비장해지고 싶지 않다. 그럼 좁아진다.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고 각자의 모습을 잃지 않고 결과를 내는 조직이 되고 싶다.


항상심 恒常心


스스로 대견한 부분. 고되고 긴 한 해를 퍼지지 않고 잘 살았다. 올해 초엔 총선을 하면서 책도 쓰고 있었다니. 기가 맥힌 노릇이다. 물론 포기한 것도 많았지만 누린 것이 더 많았다.


동리씨와의 10주년인 해였다. 올해는 이전에 안해본 일을 더 많이 해보자고 했다. 그 중 하나가 텃밭. 속초에 5평 남짓한 텃밭을 5천원에 분양 받았다. 각종 상추와 방울토마토, 깻잎, 고수, 가지, 쑥갓을 키웠고 직접 재배해 먹는 작물의 단맛을 느꼈다. 나중엔 둘이 먹기에도 너무 많아서 월요일마다 출근길에 가져가 동료들에게 나눠주고 점심으로 쌈을 먹기도 했다.

속초 가족여행 때 자랑한 우리 텃밭

가족들과 친구들과 시원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공연도 봤다. 이제는 걸으면서 나누는 대화가 좋다. 우리 좀 걸을까 하며 시작하는 시간들이 좋다. 작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아이유 콘서트에 갔다. 첫 공연 때처럼 눈물이 줄줄 나지는 않았다. 70살에도 체조를 거뜬히 채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마음처럼 거뜬하게 할 일을 하면서 미련과 아집이 없는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산책들
올해 가장 많이 간 서울 밖 도시는 단연 속초

꾸준한 운동과 음주를 했다. 한동안은 술을 안 먹고 달리기를 하다가 또 한동안은 매일 술을 마셨다. 계획을 자주 많이 세우지만 스스로에게 엄격하진 않아서 결심을 갱신해야 한다. 그렇다고 나무라진 않는다. 엄마는 집이 더러워지면 힘이 없는 때구나 하고 눈 감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힘이 나면 그 때 치우면 된다고. 고생한 자신에게 모질어지지 말라고 했다. 나를 가장 등떠밀지만 결국 내가 내 편이어서 계속할 마음이 생긴다. 올해도 나와 잘 지냈다.


매년 12/31 에 모여서 하는 가족 롤링페이퍼


2025년의 나를 위한 메모

1. 내가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진짜 의미가 있는가, 무엇을 안해야 하는가. 결정의 최선에 집착하는 걸지도. 지금은 결정도 중요하지만 결과의 최선을 다해볼 때. 진짜 중요한 것 외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올해는 결과를 가장 중심으로 두기.

2. 망설여진다면 저지르고 끝까지 해보자. 기세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자원을 연결해보자.

3. 스스로 일하는 태도를 계속해서 갱신하자. 변화하는 환경과 역할에 맞는 태도를 갖추자. 이미 넘어갔다면 그 다음 페이지로 가자.

4. 태만해지지 말자. 절박하고 집요하게 해도 될까말까.   

5. 정치 세력이 되는 것과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대척점으로 두지 말고 정치 세력으로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의 자양분을 만드는 상상력을 가져보자. 똑같아지는게 두려워서 주저한게 너무 많다. 다르게 해내는 쪽으로 생각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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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사랑하는 큰고모가 돌아가셨다. 자주 고모의 사랑과 웃음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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