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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민 Dec 30. 2017

2017년 결산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서야 이거 원

2016년 12월 38일에 썼던 <2016년 결산> 말미에 이런 다짐을 적어두었다.

두려움과 불안, 불확실함이 앞서는 한 해를 마주하며 올해 목표는 하는 걸로 삼았다. 2016년을 돌아보면 잘 해내기 위해 애썼다. 학업과 일 사이에서 잘 해내고 싶었고, 모든 프로젝트를 잘 해내고 싶었고, 모든 선택을 잘 해내고 책임 지는 것도 잘 해내고 싶었다. 잘 해냈는 지도 모르겠지만 ‘잘’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쩐지 어긋나지 않는데 전전긍긍하느라 넓게 보지 못한 듯 하다. ‘잘해내는 것’이 아닌 ‘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날은 재밌게 하고, 어느 날은 엉뚱하게도 하고, 어느 날은 묵직하게도 하게 되겠지. 그러다 운이 좋으면 내가 스스로 가두는 한계도 넘어보고 우연히 새로운 상상도 닿지 않을까 기대한다.


불과 1년 전이란 사실에 의아해하며 이 글을 기준 삼아 2017년을 돌아보니 '하는 것'에 집중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 잘해내기 위해 애쓰기 보다 어떻게 해야 좋은가를 고민하고 도움이 될 법한 장치를 요리조리 맞춰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올해에 내가 한 것 중 잘했다 싶은 것을 정리해본다. (연말이니까 잘한 일만 봐도 괜찮겠지 뭐)


1. 동거

동리씨와 나는 언제나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다. 한 달에 두세 번 만날 때도 있었고 여덟 번을 만날 때도 있었지만 아쉬움은 비슷했다. 올해 초, 언니랑 같이 살던 집같지도 않은 원룸 계약이 끝났고 동리씨도 살던 원룸 계약 만료 기간이 넘어간 상황이라 이참에 같이 살아보면 어떨까 싶었다. 각자의 부모님에게 우리 생각을 전했고 존중해주신 덕분에 눈물의 집 구하기와 전세 자금 대출 과정을 지나 상도동 언덕 위 깨끗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집이 식물원이 되었고 혼자였으면 절대 안 살 물건들이 생겼다

'같이 살아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고 항상 우리 답은 '정말 좋다'다. 둘이 살면서 잠깐 쓰는 물건이 아니라 오래 쓸 물건으로 세심하게 골라서인지, 식물을 많이 둘 수 있어서인지, 조용한 상도동에서 종종 동네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인지, 동리씨가 직접 만든 가구로 채워져서인지, 집에 잠깐 머무는게 아니라 가꾸고 살아간단 기분이 들어서인지, 뭐 이유야 정말 많은데 그래도 확실히 같이 있으니 좋다. 먹고 안고 이야기하고 보고 각자 조용히 자기 할 일 하는 시간들도 다 좋았다. 동리씨는 태어나 올해가 가장 행복했다고도 했다. (자랑)


동리씨는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었고 (요즘은 책장을 만든다) 나는 가끔씩 함께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같이 살 준비를 하고 같이 살면서 우리는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어떤 공간이길 바라는지, 어떤 관계이길 바라는지, 결혼은 어떻게 해야할지 등. 동거를 시작하고 '그래서 식은 언제 올려?'라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고 어떤 방식이던 우리 타임라인에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우리에게 동거가 결혼 전의 단계는 아니었다. 더 오랜 시간 같이 보내는게 가장 중요했고 이미 이룬 셈. 결혼은 우리 관계의 종착지가 아니다. 우리에게 결혼은 제도와 부모님과의 관계이고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결심하고) 꾸준히 이야기 한다. 항상 결심과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동거를 준비하고 해보면서 레퍼런스가 없어서 어려웠다. 둘 중 한 명의 자취집에 오래 머무는 것 말고 집을 구해서 시작하는 동거는 결정해야 할 것도 많고 신중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돈)문제들도 많은데 막상 결혼이란 제도나 절차와는 조금 달라서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가끔씩 동리씨와 이야기하다가 '다음에 누군가 동거하고 싶다고 하면 우리 시행착오를 다 알려주고 싶어요. 아니면 이렇게도 할 수 있다고 레퍼런스 중 하나만 되어줘도 큰 힘이 될 거 같아'라는 말을 여러번 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거하고 있음을 스스럼없이 말하고 다녔다. 나중에 도움을 받거나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 둘 다 동의할 만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서로 충분히 이야기한 덕분에 일년이 잘 흘렀다. 내년에도 할 수 있는 만큼 결심하고 현명하게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다.


2. 사이드 프로젝트

2016년에 했던 '해보지, 뭐.'가 2017년 1월 연남동의 한 중국집에서 'demos'가 되었고 11월에는 재석님과 괜저님을 만나 '프리랜서 네트워크'를 시작했다.

항상 프로젝트를 서너개씩 하다가 휴학하고 위즈돔을 다니면서 2년 간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새가 없었다. (짧은 호흡의 전시나 행사는 있었지만 지속적이진 않았다.) 위즈돔에서 일과 활동, 돈 벌기가 다 해소되었기 때문에 욕구가 크지 않았던 탓도 있고 학교와 일을 병행하면서 그럴 시간도 없었다. 올해 2월에 학교를 졸업하고 시간이 생겨서인지 사이드 프로젝트 두 개가 생겼고 내 일상을 아주 든든하고 빼곡하게 채워주고 있다.

귀엽고 소중한 'demos' 사람들과 함께 한 1주년 토마토 파티

두번 째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낼 수 있을지, 이번 달에 해야 하는 건 무엇일지 정리했다. 시간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세심하게 고민하려면 에너지가 많이 들겠다 싶어서 겁이 나기도 했는데 잘하려고 하지 말고 과정을 잘 가꾸는데 집중해보기로 했다. 멀리 있는 엔딩을 상상하면 마음이 급해지지만 당장 다음 달 모임의 대화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생각하다 보면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회사의 형태를 갖추고 실험하기엔 어려운 내가 관심있는 의제들을 꾸준한 호흡으로 고민하고 작은 성취들을 볼 수 있어서도 좋고, 느슨한 관계 속에서 각 개인들의 효능감을 가지며 일하는 방식을 관찰할 수 있어서 좋고, 어떤 결과를 빨리 보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과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충분히 고민해볼 수 있어서 좋다. 직장에서의 일과 다른 태도와 감각, 방법을 가지고 대화하고 일을 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직장에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내년에도 호흡을 잘 유지하고 싶고 이 지난한 과정들이 항상 기다려지면 좋겠다.


3. 욕망 다루기

올해에 나는 '욕망'이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기획자는 '모여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다루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정의내려보기도 했다. 다양한 욕망들을 인정하면서도 교집합을 찾아내고 적절하게 해소할 수 있으려면 (많은 우연과) 적당한 기획들이 필요하니까.


내가 가진 욕망을 단순히 하나로 퉁치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이 들면 여러 개의 욕망으로 나누는 것부터 했고 신경써야할 부분만 끄집어냈다. '지금 이건 신경 쓰지 말고 이건 잘 들여다봐야 일상이 유지될거야'는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버리거나 어떤 생각은 더 붙들다 보니, 적은 에너지로도 감정이 회복되거나 꽤 많은 문제가 풀리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내릴 때도 왜 그러고 싶은지 쭉 써내려가고 카테고리로 묶었다. 그렇게 하고나서 보면 내 결정의 이유를 면면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이해가 쉬워지고 선명해졌다. 가끔은 이것만 되면 나는 다른 부분은 감수할 수 있겠다는 마음도 생겼다. 무엇보다 나를 인정하기 편해졌다. 하나의 감정이나 결정에도 이렇게 복잡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고나니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달라져도 그러려니 받아들였다.


나를 들여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욕망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원래도 모두가 평화로운 상태여야 평화로움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다들 괜찮은지'를 항상 관찰하고는 했는데 요즘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나에게도 하나의 선택과 감정에 이렇게 많은 욕망과 이유가 있는데 남들도 그러지 않겠나 싶어서. 각자의 욕망에 대해 더 들어보려고 했고, 하나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걸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일주일에 몇 시간이나 쓸 수 있고 각 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걸 선호하는지부터 이야기한 '프리랜서 네트워크'

무엇보다 어떤 목표치와 결과물을 위해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달리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각자의 욕망이 골고루 해소될 법한 과정을 만드는데 더 골몰하게 되었다. '이걸 결정하려면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되지'보다 '개인의 욕망들이 잘 모이는 방법으로 이야기하려면 어떻게 해야지'를 더 많이 고민한 셈이다. 이런 고민은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실험해볼 수 있어 둘을 떼어놓고 생각하기가 어렵다.    


4. 작은 기준 세우기

나는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던 사람이다. 이런 태도 때문에 때때로 형식에 속아 내용을 못보고 넘어가는 실수를 하게 만들었다. 항상 정신차리고 살면 이럴 일이 줄어들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으니까 적어도 이건 놓치지 말아야 겠다 싶은 작은 기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기준들은 계속 변하고 구체화되면서 순간의 선택을 더 나아지게 도와주었고 내용을 면면히 들여다보는데 있어서 하나의 관점이 되어주었다.


가장 자주 고민한건 '좋은 어른의 기준'이었다. 지난 8월에 한 번 글을 올리고 사람들이 더 공유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 꾸준히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수집한 기준들을 모두 정리해보았다. 스스로 부끄러움이 들었던 순간에 기록할 때가 가장 많았고 퇴근길 전철에서 '아, 이래야겠다'라는 다짐이 서면 기록했다. 때때로 어떤 사람에게 영향을 받으면 그 풍경을 짤막하게 기록했다. 나에게 좋은 기준의 자원을 나눠주신, 일상에서 마주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맥락없이 기록되어서 어떻게 읽힐진 모르겠다. 순서는 처음 기록을 시작한 5월부터 시간 순이다.


1. 실수를 인정하고 변화하거나 성장할 수 있는 사람

2. 움직일 때 몸에서 소리가 안나고 주변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

3. ‘- 같다’, ‘이제’, ‘지금’을 덜 쓰고 명확한 언어를 쓰는 사람

4. 답보다 좋은 질문을 던지고 의견을 주는 사람
함께 일한 준우님은 조언을 하고 싶을 때마다 질문을 하셨다. "~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는 이런 건가요?"라는 질문에 답하고 나면 "그럴 수 있겠네요."로 시작하는 조언과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 어떤 질문을 하면 내 의견을 먼저 물어보셨고. 조언과 피드백으 내용도 좋았지만 이 대화의 순서가 좋았다.

5. 자신의 의제를 가지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

6. 호기심을 동력으로 일이 되도록 만드는 사람
윤미님의 페이스북에서 읽고 좋아서 필사로 남겼던 글. ‘야심보다 호기심, 호기심을 동력으로 일에 접근하고 버텨내는 사람들이 결국 더 좋은 일을 잘해낸다’, ‘일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한 사람, 탁월함에 대한 본인의 기준과 과정에서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

7. 경계를 짓고 한계를 만들기보다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넘어설 수 있는(혹은 그럴 수 있도록 돕는) 사람

8.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혼자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연결하는 사람
7번과 8번은 5월 29일에 혜미님과 카우앤독 1층에서 차를 마시고 올라오자마자 적어둔 기록이다. 혜미님은 내가 꺼낸 고민을 듣고는 혜미님의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 해주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라는 말이 없이도 충분한 조언을 전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느꼈던 시간. 혜미님의 고민이 나의 고민과 다르지만 비슷하게 연결된 순간 나는 위로받고 안도했다.

9.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 자신의 일에 멋지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10. 각자의 욕망이 투명한 조직을 가꿀 수 있는 사람

11. 사람의 시간과 자원에 대해 고민하고 책임지는 사람

12. 자신의 기준이 상대적으로 높다해도 타협하지 않는 사람

13. 개인의 실패 경험을 공동의 자산으로 전환해나가는 사람(트라우마로만 남겨 두지 않는 것)

14. 배움을 나누고 좋은 감정을 솔직히 나누는 사람
윤중님과 야근하려고 스쿨푸드를 시켜 먹으며 잠깐 부엌에서 대화 나눈다는게 한참을 이야기했던 날, 좋은 어른의 기준을 수집하고 있다고 이야기 했다. 별로 말한 일이 없던 이야기였는데 윤중님이 경청하며 영감 받았다고 연거푸 말해주었는데 그때 윤중님의 표정과 태도에 놀랐고 감동 받았다.

15. 내가 가진 자원을 다음 사람에게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고 실패와 실험을 지원해주는 사람

16. 함께 일하는 동료를 신뢰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강구하는 사람

17. 자신의 한계와 기대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모순을 겸허히 인정하며 돌파해나가는 사람
이효리의 인터뷰와 <효리네 민박>을 챙겨보고 느낀 것. 자신을 객관화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안주하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척척 나아가는 모습이 근사하다.  

18. 목표를 두고 꾸준히 실험하며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말하면 좀 단순하게 정리된 거지만 윤종신이 <월간 윤종신>을 두고 한 인터뷰를 읽고 적어두었다. 사람들이 뭘 좋아할지를 실험하고 축적하면서 예측해나가는 성실함과 똑똑함에 놀랐다.

19. 다른 사람과 나의 장점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응원하여 성장을 돕는 사람
함께 일하는 소희님은 동료들이 가진 각자의 장점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며 애정해준다. 소희님 본인은 다른 장점이 있다는 걸 명확히 알고 자신이 가진 장점을 나누어서 함께 성장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나에게 없는 다른 사람의 재능을 보면 탐이 나거나 더 애쓰게 되는데 각자의 재능대로 응원하는 소희님을 보고 부끄러워졌다.

20.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바로 보이는게 없어도 그 과정을 잘 쌓아갈 수 있는 사람

21. 여행이나 동행에서 상대를 편안하게 배려하는 사람

22. 상대의 결과를 보고 과정을 추측하지 않는 사람

23. 상대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신뢰의 근육을 갖춘 사람
22번과 23번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인터뷰를 보고 기록해두었다.

24. 옳은 길과 쉬운 길 사이에서 옳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
<비밀의 숲> 작가가 영감을 받았다는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의 말씀. "여러분은 이제 옳은 길과 쉬운 길 중에 선택을 해야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25. 결과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과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경험을 더 중요하게 볼 수 있는 사람

26. 어떤 상황에도 방어적 태도보다 잘못은 인정하고 담대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내갈 수 있는 사람

27. 자기 욕망을 잘 다루지만 자기 확신은 의심하는 사람

28. 자신의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예측하고 조정할 수 있는 사람
흐릿하게 이런 생각을 하던 즈음, 아이유가 무대를 하는 모습을 보다가 문득 '아이유는 자신의 영향력을 알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표정과 호흡이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

29. 내용이 없는 형식보다 형식 이전의 내용을 채워낼 수 있는 사람

30. 자신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부칠 수 있는 사람, 모호함은 그대로 인정하고 두거나 그러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구체적인 실험과 언어로 풀어갈 수 있는 사람

31. 자기 일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과 고민을 끊임없이 가지고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정치력를 가지고 당위성을 이야기하기 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지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어른)

32. 일은 직무가 아니라 큰 그림과 흐름에서 보며 쌓아가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

33. 나와 다른 속도를 지켜보는 힘이 있고 속도에 맞는 조언과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사람
현주님에게는 늘 많은 영감을 받지만 이번 PUBLY 리포트를 쓰면서 특히 배운 점이 있다면 '지켜보는 힘'이었다. (이건 정말 힘 혹은 에너지가 아닐까.) 글을 써오신 현주님은 다른 동료들의 글을 쓰는 속도 보다 훨씬 빠르고 글의 구조를 잡거나 편집을 하는 정확성이 남다르다. 현주님은 늘 자신의 몫을 미리 끝낸 다음 재촉없이 모든 사람의 글을 꼼꼼히 읽고 '이렇게 바꾸면 더 와닿지 않을까요?'라는 세심한 피드백을 하면서도 늘 최종 선택은 글쓴이에게 돌렸다. 급한 성격이라고 늘 이야기하던 현주님이 지난한 시간동안 내색없이 에너지 써주시는 걸 보며 놀랐고 신기했다.

34. 지루하고 따분한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

35. 수고로운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사람

매일 식물을 관찰하고 돌보는 동리씨는 환기를 하고, 공기순환기를 틀어주고, 물을 준다. 가끔은 잎을 닦아주기도 한다. 나도 거들지만 전적으로 동리씨의 품으로 식물들이 크고 있다.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늘 분주해 후다닥 나가기 일쑤인데 동리씨는 모든 식물을 들여다 보고 나간다. 몸이 조금 수고롭더라도 그 안에서 여유를 발견하는 사람. 매일 나보고 조금만 더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5. 총평

올해 목표대로 '잘해내는 것'이 아닌 '하는 것'에 집중한 시간을 보냈다 자평한다. 유독 빠르게 시간이 흘러 얼떨떨하지만 그래도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 올해 이래저래 해보면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말한 것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였다.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범위는 좁고, 떠오른다 하더라도 할 줄 모르는게 태반이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더 깊이 고민하면서 많이 찾아도 보고, 배우기도 하고, 할 줄 알는 것도 늘려나가고 싶다.


올해는 작년처럼 두렵고 불안하지 않다. 겁이 안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도 욕망처럼 쪼개어 보고 들여다보면서 어느정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좀 더 신뢰하게 된 덕도 있다. 나는 부족함이 많지만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고, 애쓰는 와중에 오지랖은 또 오지랖대로 부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년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엔 에너지가 별로 남지 않은 연말이지만 마음을 다시 한 번 다져보기엔 충분해서 다행이다.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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