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번 루트 노드(Root Node)

데미스 하사비스가 풀고싶은 문제들

by 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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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uture of intelligence | Demis Hassabis (Co-founder and CEO of DeepMind)


하사비스가 다음으로 풀고 싶다는 루트 노드들


만약 내년부터 전기요금이 확 내려간다면, 세상은 어디부터 바뀔까요. 전기차가 조금 더 편해지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도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일이 훨씬 쉬워지고, 공장이나 도시가 돌아가는 방식도 바뀔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변화가 여러 변화를 끌고 오는 순간이죠. 데미스 하사비스가 말하는 루트 노드(root node)는 바로 이런 “연쇄 반응의 시작점”을 가리킵니다.


루트 노드는 하나를 풀면 아래에 달린 여러 문제가 함께 쉬워지는 핵심 문제입니다. 반복되는 불편을 없애려면, 겉에 보이는 증상보다 안쪽 원인을 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전구가 자주 나가면 전구를 갈아 끼웁니다. 그런데 같은 방에서 계속 그러면, 배선이나 차단기 쪽을 살펴보게 되지요. 루트 노드는 그 배선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하사비스가 이 말을 설득력 있게 만든 사례가 알파폴드(AlphaFold)였습니다. 단백질은 우리 몸에서 일을 하는 분자이고, 접히는 모양에 따라 역할이 달라집니다. 문제는 그 모양을 알아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험으로 확인하려면 시간도 들고 비용도 큽니다.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를 인공지능으로 예측해, 연구의 시작을 앞당겼습니다. 시작이 앞당겨지면 뒤가 편해집니다. 신약 개발에서는 후보를 더 빨리 좁힐 수 있고, 질병 연구에서는 원인을 찾는 과정이 빨라집니다. 하사비스가 알파폴드를 “루트 노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증명”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가지 돌파가 여러 분야의 속도를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다음으로 어떤 뿌리를 보고 있을까요. 인터뷰에서 보이는 방향은 꽤 또렷합니다. 에너지, 소재, 계산의 신뢰성,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먼저 소재 과학입니다. 그는 상온 초전도체를 예로 들었습니다. 초전도체는 전기가 흐를 때 저항이 거의 없는 물질인데, 보통은 매우 낮은 온도에서만 제대로 작동합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온도에서 잘 작동한다면, 전기를 멀리 보내는 과정에서 새는 에너지가 크게 줄 수 있습니다. 전력 장비의 설계도 달라지고, 전기를 다루는 비용 구조도 바뀝니다. ‘전기의 효율’이 바닥부터 달라지는 셈입니다.


배터리도 같은 흐름에 있습니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주행거리만이 아닙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날씨에 따라 들쭉날쭉하죠. 배터리는 남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게 해줍니다. 배터리가 좋아질수록 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쓰게 됩니다. 전력망 운영의 난이도가 내려가고,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다음은 핵융합입니다. 하사비스는 핵융합을 전형적인 루트 노드로 봅니다. 핵융합은 태양처럼 원자핵이 합쳐질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연료가 풍부하고 탄소 배출이 적다는 기대가 있지만, 초고온 플라스마를 안정적으로 가두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 AI가 제어와 설계를 돕길 기대합니다.

핵융합의 핵심은 결국 에너지 가격입니다. 에너지가 깨끗하고 싸지면 기후 문제에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많이 들어서 망설였던 일들이 현실이 됩니다.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담수화가 그렇습니다. 수소를 만드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기술이 없어서 못 한 게 아니라, 비용이 너무 커서 망설였던 일들입니다. 에너지의 조건이 바뀌면 이런 선택지들이 한꺼번에 열립니다.


또 하나는 양자 컴퓨팅의 오류 정정입니다. 양자 컴퓨터는 계산에 쓰는 상태가 아주 예민합니다. 작은 잡음에도 결과가 쉽게 흐트러집니다. 오류 정정은 그 흔들림을 잡아주는 장치입니다. 이 기반이 단단해질수록 더 큰 계산을 맡길 수 있고, 그 위에 올릴 수 있는 응용도 커집니다. 겉으로는 조용한 기초 공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확장성을 좌우하는 뿌리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뮬레이션과 월드 모델(world model)을 이야기합니다. 언어 모델은 글로 된 지식을 꽤 잘 다룹니다. 그런데 공간감, 물리, 몸으로 부딪혀야 아는 것들은 아직 빈틈이 있습니다. 월드 모델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자체를 배우려는 모델입니다. 로봇이나 현실 작업으로 가려면 이 이해가 필요합니다.


다만 하사비스는 “그럴듯함”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겉보기엔 자연스러운데 실제 물리와 조금 어긋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 굴리기, 진자 실험처럼 기본부터 정확도를 확인하는 기준을 만들려 합니다. 믿을 만한 규칙을 쌓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사비스가 말하는 루트 노드는 화려한 구호가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에 가깝습니다. 한 번 풀면, 많은 사람이 시간을 덜 쓰게 되는 문제를 먼저 잡는 태도입니다. 알파폴드가 그 첫 번째 증명이었고, 이제 그는 더 큰 뿌리들을 바라봅니다. 그 뿌리가 움직이면 세상은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달라질 겁니다.

(데미스 하사비스는 언젠가 노벨 물리학 수상 후보로도 오르는 날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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