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은 무엇일까?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검색해보면, 미색의 여백에 점 하나 찍어 놓은 듯한 그의 그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작품들의 가치는 얼마일까요? 모르신다면 한번 떠올려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선으로부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선'을 주제로 한 작품은 시리즈로 여러가지가 있는데, 보통 10억원 선에서 거래가 됩니다. 그 중 76년에 그린 작품은 2014년 뉴욕에서 23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1억 원도 아니라 무려 23억 원입니다. 최근에는 '동풍'이라는 다른 작품이 20억 원에 거래되기도 하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류의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위작도 많아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적도 있습니다. 색상도 많이 쓰이지 않고, 그렇게 화려해 보이지도 않는 그의 작품에는 '단순함'의 가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작가는 점 하나를 찍기까지 무려 2달 가까운 시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한 점을 어디에 찍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호흡으로 그려나갈 것인지, 그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작가의 예술적 혼과 철학이 그 점과 선 하나에 표현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단순하지만 왠지 모를 깊이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그의 작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보이는 데 어딘가 깊이가 있는 삶입니다. 걱정도 많아 보이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혹은 좋아하는 일을 묵묵하게 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소위 '진국'이다, '진짜다'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집중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확실히 구분해서 살아갑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명확하고요. 과거와 미래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를 채우며 살아갑니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훨씬 성장해 있습니다.
얼마 전 미니멀리즘 관련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걸 본 친구가 '미니멀리즘이 도대체 뭘까'라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미니멀리즘은 행복을 위한 삶의 철학인 것 같아.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게 무엇인지 알아내고, 그것과 함께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힘인 것 같아.'라고요. 우리는 살아가며 꽤나 많은 유혹을 만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유혹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많습니다. 남이 바래서, 혹은 남에게 잘 보기 위해서 생기는 유혹입니다. 좋은 대학을, 회사를 가야 한다는 유혹. 왠지 저 멀리 여행을 가야 될 것 같은 유혹. 저 옷을, 제품을 사면 더 나은 내가 될 것 같은 유혹. 하루에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접하는 광고 숫자가 5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SNS에는 왠지 화려해 보이는 삶으로 가득하고요. 미니멀리즘은 그 속에서 나의 중심을 잡아가는 삶의 철학입니다.
'Goodbye, Things'라는 책을 쓴 후미오 사사키는 '우리 모두는 미니멀리스트'로 태어난다'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태어날 때 두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삶의 마지막 순간도 미니멀리스트입니다.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우리의 두 손은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풀어놓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삶은 무언가를 쥐는 시간입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쥘 것이 무언인지 알고 묵묵하게 그것을 향해 걸어갑니다. 어떤 이들은 무엇을 쥐어야 할지 계속 고민합니다. 길 위에 놓인 여러 갈래길을 계속해서 헤매면서요.
무엇에 설레나요?
아직 나 자신이 헤매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미니멀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될 것입니다. 넷플릭스에서 꽤나 유명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제목의 콘텐츠입니다. 곤도 마리에라고 하는 한 일본인이 주인공인데요.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린 '정리의 힘'의 저자입니다. 그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일하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설렘이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Our goal is to help more people live a life that sparks joy, and we are committed to offering the simplest, most effective tools and services to help you get there).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정리의 여왕입니다. 바쁜 업무, 육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복잡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명확한 솔루션을 제공합니다. 주변에 있는 것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며, 이것이 본인에게 설렘을 주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리고 설레지 않다면 버릴 수 있도록 조언합니다. 동시에 버림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들이라며 내팽게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나와 함께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감사를 표하고 버림을 실행합니다. 이런 과정을 함께 해나가면서, 도움을 구한 이들은 점점 마음의 여유와 미소를 되찾습니다. 정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나와 결별하고, 나에게 의미 있는 것과 필요 없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리를 했을 뿐인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듯한 기분도 듭니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우리 인생 다방면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예로 들어볼까요. 카카오톡을 열어 친구 목록을 살펴보면, 수백 명이 리스트에 있습니다. 학교 친구들, 일하면서 만난 사람들, 또는 어디서 만난 지 기억도 안나는 사람들. 그중에 나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은 몇 명일 까요? 나에게 설렘을 주는 사람들, 나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이들이 누구인지 안다면, 그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소중한 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진로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원을 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이 많다면, 그것에 나의 인생에 설렘을 주는가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대학원을 가는 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한 설렘이라면 그 길은 본인을 위한 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줄이는 삶의 습관이 아닙니다. 곤도 마리에가 무소유를 주장한 게 아닌 것처럼요. 오히려 그녀는 소유를 통해 설렘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든지 소유해도 좋다고 합니다. 미니멀리즘은 삶의 우선순위를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설렘을 느끼는지 이해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데서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이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혹은 다른 이들을 돕는데서 삶의 만족을 얻는다면 그러한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을 쌓아가는 데서 큰 행복을 느낀다면 배움을 계속하여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설렘과 쾌락은 분명히 다른 단어입니다. 설렘은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쾌락은 그 순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영영 내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말이죠. 일회성이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도박에서 운 좋게 한 번 이겼다고 해서 내일 승부에서 이길 확률은 올라가지 않습니다. 똑같은 확률 속에 갇힌 채 매번 동일한 하루에 중독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설렘은 이와 다릅니다. 설레는 순간을 반복한다면 내일도 설렐 확률은 더 높아집니다. 농구를 좋아해서 열심히 농구를 하다 보면 실력이 하루하루 느는 것과 비슷합니다. 운 좋게 프로 선수가 되어 평생의 업으로 가져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 순간 나에게 설렘을 주는 그 무언가와 함께 계속하여 삶을 나아갈 수 있습니다.
행복과 본질
좋아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행복은 원하는 걸 가지는 게 아니야. 가지고 있는 걸 원하는 거지.'(Happiness is not having what you want, but wanting what you have.) 저는 이 문구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행복은 내가 무엇에 행복하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을 원하는 것이다'라고요.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충동 구매와 같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들이 사길래, 또는 왠지 근사해 보여서 구매한 물품들. 받는 그 순간은 매우 기쁘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옷장 안에 놓인 '몇 번 입지 않은 옷'처럼 나에게서 금방 멀어집니다.
예술학에서 미니멀리즘은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본질만 남기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행복은 본질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릴 적 저의 꿈은 '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언론인이 되면 행복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TV 속 버버리 코트를 입고 외국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나름 근사해 보였거든요. 글 쓰는 것도 좋아하구요. 하지만 대학을 다니며 여러 경험을 하며 저에게 본질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했습니다. 이를 이해하는 순간 더 이상 기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길가에 피어난 빨간 꽃을 장미라 부르든 국화라 부르든 그 꽃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개인도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더라도 나만의 본질은 그대로일 것입니다.
페이스북 창업가 마크 주커버그에게 한 직원이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당신의 성공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의 답변은 꽤나 의외였습니다. '어릴 때 만들었던 눈싸움 게임 덕분입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는 눈이 오던 날 누나와 눈싸움을 하고 싶었는데, 밖이 너무 추워 누나가 나가기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싸움 비디오 게임을 만들었고, 누나와 실제로 눈을 맞지 않으면서도 눈싸움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주커버그는 이 경험에서 자신의 설렘과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스스로 코딩하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는 것, 이 결실을 누군가과 나누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 것이죠. 이 작은 경험은 눈덩이처럼 다른 경험으로 이어졌고, 결국 페이스북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아직 설렘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아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찾을 수 있습니다. 육아의 어려움으로, 일의 과중함으로 피로감만 쏟던 이들이, 정리를 시작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나를 설레게 하지 않는 것들을 제외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건이든, 관계든 생각나는 것부터 말이죠. 동시에 나를 설레게 하는 건 무엇인지, 진정으로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도 함께 생각해보는 겁니다.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낙관과 비관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바로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차이점은 극명합니다. 하나는 어려움에서 생각이 끝나지만, 다른 하나는 어려움을 극복한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이우환 작가의 점을 바라보겠습니다. 이우환 작가의 그 한 점을 다른 사람이 대신해줬다면, 작품의 가치는 어떠했을까요? 누구도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한 점을 찍기까지 고민했던 치열한 과정과 진정성이 붓에 녹여져 있었고, 이는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 삶에는 어떤 점을 찍을 수 있을까요? 내 삶을 설레게 하는 그 한 점. 그 점을 그려내는 삶. 자그만 도전으로도 미니멀리스트는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어떤 한 점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