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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아이브-Fireside Chat

by 성우

Stripe Ceo인 Patrick Collison과 Jony Ive와의 Fireside Chat. 1시간 남짓한 대담이지만, 조니 아이브의 한마디 한마디에 그가 추가하는 본질이 깊히 담겨있습니다. 인사이트로 가득한 그의 말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조니 아이브의 답변도 멋지지만, 질문도 훌륭합니다.




1. 실리콘밸리 초창기 경험과 변화


“그때 실리콘밸리는, 가치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어요.”


Jony Ive는 1992년, 처음으로 실리콘밸리에 발을 디뎠습니다. 영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당시 Apple의 외부 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 그곳의 분위기를 직접 체험하게 되죠. 그리고 그는 곧, 이곳이 단순히 기술을 발전시키는 지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가 처음 마주한 실리콘밸리는 “순수한 열정과, 인류에 봉사하려는 목적의식”으로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경쟁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인간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공통된 철학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죠.


“I felt… a strong sense of purpose. That purpose was: we are here to serve the species.”


당시의 실리콘밸리는, 돈이나 주가보다도 ‘왜 만들 것인가’, ‘이 기술이 세상을 어떻게 더 낫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충실한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습니다. Jony는 이를 “innocent euphoria(순수한 낙관주의의 기쁨)”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그는 30년이 지난 오늘날의 실리콘밸리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진단합니다. 이제는 '가치'보다 '돈과 권력'이 움직이는 구조가 더 강하다는 것이죠.


“There are corporate agendas. And this will sound a little harsh… but it is driven by money and power.”


그는 이것이 어느 날 갑자기 바뀐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타협’과 ‘점진적 변화’가 모여 일어난 결과라고 덧붙입니다.


2. 디자인 철학: 목적, 가치, 그리고 ‘영적’ 의미


“디자인은 그저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방식이죠.”


Jony Ive가 디자인을 처음 진지하게 마주한 건, 예술학교 마지막 해였습니다. 영국 북동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던 그는 우연히 매킨토시(Mac)를 접하게 되죠. 그때 느낀 인상을 그는 평생 잊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맥을 본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제품이 단순히 기능을 담는 도구가 아니라, 그 제품을 만든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것을.


“What we make stands testament to who we are. It describes our values.”
(우리가 만드는 것은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는 당시 매킨토시를 만든 팀에 대해 이렇게 느꼈다고 합니다. 그들은 기술자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도구를 만드는 ‘문화적 창작자’들이었고, 그 결과물에는 사람을 향한 애정과 배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요. 그가 Mac을 보고 강하게 감명받은 이유는, 거기에 단지 멋진 UI나 신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를 향한 집중과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Jony는 디자인이 두 종류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일정과 원가에 맞추기 위해 기능만 구현한 디자인.
둘째는, ‘인류의 가능성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려는’ 시도를 담은 디자인.

그는 망설임 없이, 자기는 두 번째를 좇겠다고 말합니다.


“You can design something to hit a price point… or you can design something that genuinely attempts to move the species on.”
(일정 맞추는 디자인도 있지만, 나는 인류를 진짜로 진보시키려는 디자인을 선택하겠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이 제품이 사람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묻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배려’를 통해 누군가의 일상을 살짝 더 부드럽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가 구체적인 예로 든 건, 어쩌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제품 안의 케이블 포장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선을 풀기 쉽게 만드는 걸 넘어서, “이 케이블을 꺼내는 순간, 사용자가 ‘아, 누군가 나를 위해 이걸 설계했구나’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When somebody unwrapped that box and took out that cable… and thought somebody gave about me. I think that's a spiritual thing.”
(그 작은 케이블 포장이 누군가에겐 ‘아, 이 사람은 나를 신경 썼구나’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영적인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그저 아름다운 포장을 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는 디자인을 통해, 만나본 적 없는 사람에게도 감사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Jony는 이와 같은 ‘배려의 전달’이야말로 진정한 디자인의 목적이며, 심지어 그 자체로 일종의 '감정의 교감'이자 '인간 간의 연결'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Steve Jobs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When you make something with love and care… it’s a way of expressing our gratitude to the species.” (사랑과 정성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인류 전체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3. 단순함 안의 유머와 즐거움


“심플함은 비워내는 게 아니라, 본질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Jony Ive와 Apple의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키워드는 ‘미니멀리즘’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순함(Simplicity)을 흔히 오해하는 태도에 대해 경계합니다. 단순함은 단순히 복잡한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명확히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것이죠.


“Simplicity to me is trying to succinctly express the essence of something and its purpose.”
(심플함이란 어떤 사물의 본질과 목적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흔히 심플함을 ‘정돈됨’이나 ‘무채색의 공허한 느낌’으로 착각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게 잘못 구현된 단순함은 오히려 “desiccated, soulless product (말라버린, 영혼 없는 제품)”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Jony는 Apple의 제품들이 단순함 속에서도 항상 ‘기쁨’과 ‘유머’를 담고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iMac의 알록달록한 컬러 디자인, Pixar의 램프를 닮은 스탠드 디자인, 그리고 iPod용 니트 양말 같은 가볍고 위트 있는 시도들 모두 그 일환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왜 기술 제품은 꼭 진지하고 무채색이어야 할까?
왜 기쁨과 위트는 ‘사소한 것’이라며 배제되어야만 할까?


“Sometimes joy gets confused with being trivial.”
(기쁨은 가벼운 것이라고 오해되곤 한다.)


그는 디자이너가 어떤 심리 상태로 작업을 하느냐가 결과물에 고스란히 반영된다고 강조합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일하면 제품도 불안하고 경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If I’m consumed with anxiety, that’s how the work will end up.”
(내가 불안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결과물도 그런 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희망적이고, 낙관적이며,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할 때, 그 감정이 그대로 제품에 녹아들어 사용자에게도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제품 속에서도 Jony는 늘 사람을 웃게 하고, 위로하고, 연결시킬 수 있는 요소를 담으려 노력해왔습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오히려 인간적인 따뜻함과 유쾌함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4. 측정 중심 문화의 위험성과 ‘감각’의 중요성


“숫자로 말할 수 있는 것만 중요하다고 믿는 순간, 우리는 거짓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회의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숫자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자인 리뷰든 전략 회의든 결국 화두는 이렇게 수렴됩니다 — 이건 얼마나 빨리 만들 수 있지? 단가는 얼마지? 몇 그램이야? ROI는?


Jony Ive는 이처럼 ‘측정 가능한 것만 가치 있다’는 문화에 깊은 우려를 나타냅니다. 그는 대규모 조직 안에서 사람들이 자꾸 숫자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함께 일할 때 공통의 언어를 찾고 싶어 합니다. 숫자는 명확하고 논쟁이 적기 때문에, 그것이 대화의 중심이 되기 쉽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 다음에 따라오는 은밀하고 위험한 착각이 문제입니다.


“We spend all our time talking about attributes because we can easily measure them…
Therefore, this is all that matters. And that’s a lie.”
(우리가 측정 가능한 속성만 이야기하다 보면,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건 거짓이다.)


디자인, 창의력, 사용자 경험, 감동, 배려 — 이 모든 것은 수치화되지 않지만 제품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치 중심의 문화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그건 너의 의견일 뿐”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Jony는 이를 "의견이 곧 아이디어라는 착각"이라고 표현하며 비판합니다. 그는 디자인의 감각적이고 정성적인 가치들이 이런 환경에서 종종 왜곡되거나 무시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냅니다.


“Let’s be very clear: opinions aren’t ideas.”
(명확히 하자면, 의견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는 디자이너들이 단지 ‘느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 년의 훈련과 경험을 통해 ‘감각적으로 인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직관은 수치로 설명되지 않기에, 무시되거나 가볍게 취급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따라서 그는 경고합니다. “수치화가 쉬운 요소만이 모든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 제품의 본질은 손상된다.” 좋은 제품은 언제나, 측정할 수 없는 것들과 싸운 결과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속도, 품질, 동기 사이의 균형


“우리는 빠르게 만들면서도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 단, 그 출발점은 ‘왜 이걸 만드는가’에 대한 동기다.”


제품을 만드는 현장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습니다. “빠르게 만들면 퀄리티가 떨어지고, 퀄리티를 높이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Jony Ive는 이 이분법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그는 “빠르냐, 좋으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때마다 “왜 둘 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리고 그 물음의 핵심엔 늘 ‘동기(motivation)’가 있다고 말합니다.


“When we’re put in this situation of having to choose… I would get belligerent and say, no, we don’t have to choose. We can do both.”


물론 현실적으로 시간, 비용, 리소스의 제약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를 ‘속도냐 품질이냐’로 단순화하지 말고, “우리는 왜 이걸 만들고 있는가?”, “이 제품이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프레임을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고 믿습니다. 즉,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해결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죠.


“The words we use to frame a problem are some of the most important.”


그래서 그는 “속도를 빠르게 하자”라는 말 대신, “우리가 효율적으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쪽을 택합니다. 그렇게 질문을 바꿀 때, 조직은 훨씬 더 높은 창의성과 실행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는 빠르게 일하는 것이 곧 나쁜 것이 아니라고도 말합니다. 오히려 ‘속도’는 효율성에서 나올 수 있는 미덕이며,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There is a beauty to working efficiently.”


결국 중요한 것은 ‘왜 이걸 하느냐’는 확고한 동기와 그 동기를 팀원들이 공유하고 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속도와 퀄리티의 공존입니다. 그는 디자이너와 조직이 명확한 목적, 깊이 있는 동기, 그리고 효율적인 방법론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다고 믿고, 그 신념을 오랜 시간 Apple에서 실천해왔다고 이야기합니다.


6. 대규모 조직 속에서 디자인 관여 유지하기


“조직이 커져도, 내가 타협하지 않을 ‘가치’와 ‘동기’는 분명해야 한다.”


초기 스타트업이나 소규모 팀에서는 모든 일에 직접 관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만들지, 어떤 디테일을 선택할지까지 한 사람의 판단이 제품 전반에 반영되죠.하지만 조직이 커지고, 팀이 수십 명, 수백 명, 수천 명이 되면 더 이상 모든 결정에 손을 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제품, 보지 못한 결과물이 세상에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Jony Ive는 이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하지 못한 부분에서 나와 맞지 않는 것이 나올 때” 느끼는 복잡한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There are things that happened that I never saw. I never had the chance to weigh in on. I don’t know how I feel about it… I wouldn’t have done that thing over there.”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이 딜레마를 ‘자연스러운 조직의 성장통’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스스로에게 분명히 해야 할 단 한 가지를 강조합니다.


바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지금도 그 이유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는 어떤 행동을 한 뒤 자신이 후회할 때, 그 원인을 ‘결과’가 아닌 ‘동기의 변질’에서 찾는다고 말합니다.


“The alarm bells always go off for me when I think: Why did I do that? Has my motivation shifted?”


결국 조직이 아무리 커지더라도, 개개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가치와 동기를 중심축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우리다운 방식으로 디자인에 참여하고, 의견을 전달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그는 디자이너라면 어느 정도는 “control freak(통제광)”일 수밖에 없다고 농담처럼 말하면서도, 그 ‘집착’이야말로 사용자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결과물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는 자세라고 강조합니다.


“If our motivations and values remain the same, we will find ways to be the control freaks we were born to be.”


조직의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디자인 리더의 영향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집요하게 ‘우리가 타협하지 않을 기준’을 세워야 하며, 그것이 조직 전체에 파급력을 미치는 ‘디자인 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Jony Ive의 메시지입니다.


7. 팀 문화 구축: 신뢰, 의식적 의사소통, 작은 제스처


“아이디어는 조용히 찾아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를 믿고 조용히 들어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합니다.”


Jony Ive가 이끄는 디자인팀은 그 수가 작았지만, 구성원 간의 유대는 매우 깊었습니다. 그는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기반은 결국 ‘사람 간의 신뢰’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A small team of people that really trust each other… I think is fundamentally important.”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는 소규모 팀, 그것이 가장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디자인 아이디어는 처음엔 언제나 연약한 ‘생각의 조각’으로 시작됩니다. 그렇기에 그 아이디어가 꺼내질 수 있으려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안전함과 들어줄 준비가 된 귀가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합니다.


“Ethereal thoughts, fragile concepts… they’re precarious.”
(공기 같은 생각들, 깨지기 쉬운 개념들… 그건 쉽게 무너질 수 있어요.)


하지만 많은 조직은 ‘발언’에만 집중하고, 조용한 사람의 아이디어는 흘려버리기 쉽습니다. 그는 자신도 그런 아이디어를 놓쳤을까봐 지금도 두렵다고 고백합니다.


“What kills most ideas, I think, are people desperate to express an opinion. I know I’ve missed amazing ideas… from a quiet place, from a quiet person.”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싶은 욕구’에 의해 사라진다.)


이러한 팀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Jony는 매우 독특한 ‘의식(ritual)’들을 실천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서로를 위한 아침 식사 만들기’입니다. 디자인팀의 한 명이 매주 금요일 아침, 돌아가며 팀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특별한 메뉴가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시리얼, 달걀, 토스트… 중요한 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Make things for each other… it makes you more worried about them than you. It makes you vulnerable, and them grateful.”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어보세요. 그러면 내가 아닌, 상대방을 더 생각하게 돼요. 내가 약해지고, 그들은 고마워지죠.)


또 하나의 의식은 팀원 집에서 함께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인 회의를 회의실이 아닌, 팀원 각자의 ‘집’에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함께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고요. 디자인은 사람을 위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 일할 때 디자인의 감도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If you're in someone’s living room… of course you think differently.”
(누군가의 거실에서 일하면,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요.)


이런 소소한 문화들은 어쩌면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작은 일들이야말로 팀 내 신뢰를 키우고, 진짜로 ‘서로를 아끼는 팀’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믿었습니다.


8. 유틸리티와 미학: 아름다움은 객관적 vs 주관적?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건 아무리 예뻐 보여도 ‘못생긴 것’입니다.”


디자인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하나 있습니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가, 객관적인가?’라는 질문이죠. Jony Ive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답합니다.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그러니까 못생겼다.” 이 말은 다소 직설적이지만, 그가 디자인에서 기능과 미학을 결코 분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If something doesn’t work, it’s ugly.”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건 못생긴 것이다.)


그는 유틸리티(실용성)와 미학(아름다움)을 대립시키는 관점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디자인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해야만 완전한 것이라는 것이죠.또한 그는 ‘취향(taste)’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의견이 동등한 무게를 가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전문성과 반복된 훈련, 그리고 경험을 통해 쌓인 미적 감각에는 깊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Everybody has an opinion. That doesn’t mean every opinion has the same weight.”
(모두가 의견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의견이 같은 무게를 가지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는 ‘인간적인 디자인(humane design)’에 대해 언급합니다. 디자인이 아름답냐 아니냐보다, ‘사람을 배려했는가’, ‘인간적인 감각이 느껴지는가’가 더 본질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Christopher Alexander의 말을 인용합니다.


“Between two paths, choose the one that feels more humane.”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는, 더 인간적인 쪽을 택하라.)


이러한 ‘감정의 존재감’은 제품이나 서비스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Jony는 믿습니다. 심지어 사람이 직접 만든 제품이 아니어도,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무관심은 사용자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죠.


“You sense carelessness. So I believe you also sense care.”
(무심함은 느껴진다. 그렇다면, 정성도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제품의 겉모습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까지 정성껏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서랍장의 뒷면을 정성스럽게 마감하는 장인의 철학처럼 말이죠.


“A great cabinetmaker finishes the back of the drawer… even if it won’t be seen.”
(훌륭한 가구 장인은 서랍의 뒷면까지 마감한다. 보이지 않더라도.)


이러한 철학은 그가 Apple에서 오랜 시간 유지해온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설계한다’는 문화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누가 보지 않아도, 사용자가 모르더라도, 그 마음가짐 자체가 디자인의 깊이를 만든다는 신념입니다.


9. 모더니즘과 장식의 역할


“새로운 재료에 열광하던 시대, 아름다움은 아직 도달하지 못한 지점이었다.”


Jony Ive는 디자인 교육을 바우하우스(Bauhaus) 스타일에서 받았습니다. 기능 중심, 간결함, 구조적 질서 — 이 세 가지는 바우하우스가 추구한 대표적 디자인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 대화에서 그는,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어떻게 그 틀을 넘어서게 되었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인터뷰를 진행한 Patrick은 Apple 제품이 지닌 ‘우아한 미니멀리즘’과, 20세기 초반 모더니즘의 ‘일부러 추한 충격 요법’ 사이의 간극에 대해 질문합니다. 예를 들어, 뒤샹의 소변기(fountain), 피카소의 불협화 화풍, 혹은 바우하우스의 삭막한 구조 등은 모두 고의적으로 ‘기존 미학’을 부정하고 충격을 주려 했던 움직임이기도 했죠. 이에 대해 Jony는 이렇게 말합니다.


“At the beginning of a movement… there’s an explosion. There’s not time for beauty. Beauty evolves.” (모든 운동의 초창기에는 폭발적인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땐 아름다움을 생각할 시간조차 없죠.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며 진화하는 것입니다.)


즉, 기술적 혁신이 처음 등장했을 땐, 아름다움보다 ‘신기술을 써보는 것 자체’에 몰두하게 된다는 것이죠. 예로, 바우하우스 시절 디자이너들은 처음으로 금속관을 ‘구부리는 기술’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가구들이 구부린 철제 프레임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기술적 흥분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They figured out how to bend tubes. So they bent tubes.”
(그들은 튜브를 구부리는 방법을 알아냈고, 그래서 닥치는 대로 튜브를 구부렸다.)


이렇게 보면, 모더니즘 초기의 ‘비미(非美)’는 일종의 기술과 형식 실험에 대한 열광에서 비롯된 것이지,
의도적으로 ‘못생기게’ 만든 건 아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Apple을 떠난 후, Jony는 LoveFrom이라는 새로운 창작 그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더 폭넓은 표현 방식과 장식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Perhaps what you’re referring to is… the people we’re collaborating with are more diverse now.” (아마 당신이 느낀 변화는, 우리가 협업하는 대상이 훨씬 더 다양해졌기 때문일 거예요.)


예를 들어,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대관식 아이덴티티 작업처럼 기능 중심이 아닌 ‘의례적, 역사적, 감성적’ 맥락을 요구하는 프로젝트에서는 그에 맞는 풍성한 시각 언어와 장식 요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이전 Apple에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음악가, 건축가, 서체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창작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표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죠.


“We were very focused before. But now, the problem we’re solving is different.”
(우리는 예전엔 매우 집중된 목표를 가졌지만, 지금은 문제의 성격이 다르다.)


즉, Jony Ive는 이전의 미니멀리즘 철학을 버린 것이 아니라, 디자인은 문제의 본질에 따라 그 형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유연성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10. 기술 발전의 책임: AI와 스마트폰의 부작용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디자인이나 기술 개발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는 자주 쓰입니다. 하지만 Jony Ive는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만들 때, 그것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가?”그는 특히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발전을 예로 들며, 기술이 가져오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There were some unintended consequences that were far from pleasant.”
(내가 깊이 관여한 몇몇 제품에서도 전혀 유쾌하지 않은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의도하지 않았어도, 그 기술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Even though there was no intention, I think there still needs to be responsibility.”
(의도가 없었다 해도, 책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제품의 기능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주의력, 정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걱정해왔으며, 무엇보다도 이런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현실을 더 문제 삼습니다.


“What I was far more worried about was… years and years of discussion about social media where there was no discussion at all.” (나는 오히려 소셜미디어에 대한 수년간의 침묵이 더 걱정스러웠어요.)


그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 사회가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 산업혁명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지금보다 느렸기에, 도시계획, 교육, 제도 등 사회적 시스템이 함께 정비될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것이죠.


“The rate of change is dangerous… there was time for society to stop and consider. But not anymore.”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위험할 정도입니다. 과거엔 멈추고 생각할 시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단지 회고가 아닙니다. Jony는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지금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프로젝트들도 모두 ‘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밝혔습니다. 비록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공개할 수 없다고 했지만, 그의 말에서는 기술 창작자로서의 깊은 윤리적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11. 산업혁명 시기의 디자인 교훈


“진짜 디자인은 물건만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 물건이 놓일 공간, 사람들이 살아갈 방식, 사회 전체를 함께 설계하는 일입니다.”


Jony Ive는 지금 가장 집요하게 몰두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19세기 산업혁명기라고 말합니다. 그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지 ‘제품’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들의 삶과 사회 구조 전체에까지 확장된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그는 산업혁명을 단순한 기술 발전의 시대로 보지 않습니다. “인류가 처음으로 대규모로 땅을 떠나 도시로 이동한 전환점”, 그리고 그에 따라 삶의 방식 전체가 재구성된 시기로 해석합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몇몇 기업 사례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영국의 Cadbury(캐드버리) 와 Fry’s(프라이스) 같은 퀘이커 기업들을 언급합니다. 이 기업들은 단순히 초콜릿 공장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들이 살아갈 집, 마을, 공동체 공간까지 함께 설계했습니다.


“They also designed the housing… which meant towns. A sense of civic responsibility.”
(그들은 노동자 주택도 함께 설계했어요. 즉, 마을을 만들었다는 뜻이고, 그것은 시민적 책임감을 동반한 디자인이었습니다.)


Jony는 이런 관점을 ‘사회 전체를 디자인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다시 참고해야 할 디자인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합니다.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도 Hershey’s(허쉬) 가 유사한 방식으로 주거공간과 공장을 함께 조성했으며, 이러한 사례들은 “기술 혁신이 사회 구조까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라고 말합니다.


“I love it when innovation is cultural, political, spiritual — and it manifests in buildings.”
(혁신이 문화적이고, 정치적이고, 심지어 영적일 때… 그리고 그것이 건축이라는 구체적 형태로 드러날 때, 그걸 정말 사랑합니다.)


이 대목은 Jony Ive가 디자인을 단지 ‘보기에 좋은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다루는 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제품 하나를 잘 만드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구조, 관계와 리듬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일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12. 인프라/기업도 ‘디자인’을 신경 써야 하는 이유


“당신이 무엇을 하든, 사람을 위해 일하는 이상 디자인은 당신의 일입니다.”


Jony Ive는 인터뷰 말미, Stripe의 기술 컨퍼런스에 초대된 맥락을 이렇게 짚습니다. Stripe는 결제 인프라, 금융 API를 다루는 ‘하드’한 기술 기업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회사들이 디자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기도 하죠. 하지만 Jony는 전혀 다르게 봅니다. 오히려 디자인은 소비자 제품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시스템, 플랫폼, 인프라에서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If Stripe didn’t care about design, Stripe wouldn’t be Stripe.”
(Stripe가 디자인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지금의 Stripe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단순히 ‘브랜드’나 ‘사용자 경험’ 차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재 방식에 관한 철학으로 확장시킵니다. 그가 인용한 프로이트의 말이 이를 대변합니다.


“All there is… is love and work. Work and love. That’s all there is.”
(인생에 존재하는 건 두 가지뿐이다. 사랑과 일. 혹은 일과 사랑.)


Jony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는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일’에 쓰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일이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If we elect to spend our time working not caring about other people… I think we suffer. That’s a corrosive existence.”
(일하면서 타인을 신경 쓰지 않겠다고 선택한다면,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그건 내면을 좀먹는 삶이다.)


이 말은 모든 업종, 모든 역할에 통용됩니다. Stripe 같은 인프라 기업도, 제조업도, SaaS도, 교육도, 행정도…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위해 설계된 구조’를 제공하는 조직이라면, 디자인은 필수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Jony Ive는 끝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I don’t carve my existence up… with my commercial hat on or not. I’m just Jony.”
(나는 내 삶을 ‘비즈니스일 때’와 ‘그 외의 나’로 나누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그냥 Jony다.)


그에게 디자인은 특정 역할에 종속된 기능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이자, 책임을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스크린샷 2025-06-23 오후 8.54.10.png 출처 @suyash(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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