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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X의 인하우스 전략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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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주어진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재해석되어야 한다. 상황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Practice를 맹목적으로 따라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복잡한 현대사회에 모든 것을 인하우스 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사무실 정수기도 여러 업체의 복잡한 합작을 거쳐 만들어지며, 자동차나 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은 그 숫자가 수천 수만 개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인하우스가 확고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분야가 있다, 바로 우주산업이다. 민간 우주시대를 개척한 스페이스X가 과감한 인하우스 전략으로 비용 혁명을 이룬 이후, 우주기업들은 발사체와 위성을 가리지 않고 스페이스X의 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스페이스X가 처음부터 모든 걸 직접 할 계획이었던 건 아니다. 원래 머스크는 로켓을 러시아에서 사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갑질’에 ‘DIY 모드’로 방향을 180도 전환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직접 하는 게 최고’라는 머스크의 믿음은 강해졌다.


이제 스페이스X는 ‘거의 모든 걸’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직접 한다. 지난 2023년, 전용 발사장 ‘스타 베이스’에서의 첫발사를 성공하면서 스페이스X의 발사역량 내재화는 그 화룡점정을 찍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페이스X가 효과를 봤다고 해서 다른 기업들이 그 성공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시 스페이스X의 시도가 불가피했던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당시 스페이스X는 아는 게 없어 실패를 통해 배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회사였다. 매번 쏠 때마다 달라진 로켓을 만들려면 누구에게 맡기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다.


둘째, 보안 문제다. 그때 스페이스X는 NASA, 정확히는 미국 정부와 탄탄한 신뢰관계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아무리 주변 부품이라고 해도 아무에게나 맡길 순 없었다. 자칫 잘못해서 기술 유출 사고라도 터지면 ‘민관 우주협력’를 지지하는 분위기가 식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셋째, 당시 극에 달했던 우주산업의 폐쇄성이었다. 1992년 ‘최후의 만찬’ 이후 미국에선 항공우주/방산기업들은 대대적인 통폐합이 진행되었다. (소련이 붕괴되자 ‘더 이상 예전만큼의 국방비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업체들 간 인수합병을 통해 숫자를 줄이라고 미 정부가 권고한 사건이다. 만찬 자리에서 환담이 이뤄져 ‘최후의 만찬’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중 항공과 방산은 여전히 해외시장을 둘러싼 경쟁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우주는 독점적 지위의 기업들만 남았고 그 결과 아폴로의 혁신 DNA도 빛이 바랬다. 당시 우주 부품의 가격들은 누구라도 혼비백산할 만큼 비쌌다.


일부가 잘못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스페이스X가 볼트 같은 부품도 하나하나 직접 만드는 건 아니다. 스페이스X에도 엄연히 구매 부서가 존재하며 팰컨 발사체에 납품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스페이스X는 모든 제품과 공정을 완벽하기 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SCM과 다르다. 지나치게 하청에 의존한 결과 자기 제품의 품질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추락한 일부 체계업체들의 전철을 스페이스X는 밟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선 내재화 100%의 신화가 사전적으론 틀렸을 지 몰라도 맥락상으론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결국 본질은 통제가 가능한지의 여부다. 모든 공정과 품질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외의 모든 것들은 각자의 목표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뉴스페이스 바람이 불면서 우주 생태계의 효율성이 서서히 개선되며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이젠 과거에 비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우주 부품을 구매할 수 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용의 꼬리가 아닌 뱀의 머리로 전략을 전환한 업체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점이다. Rocket Lab도 최근엔 발사서비스 일변도를 탈피, ‘검증된 성능’을 무기로 서브시스템을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스페이스X도 스타링크 부품을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아직은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 수준’이지만, 앞으로 우주도 상업화가 계속되면 지금의 항공처럼 경쟁력 있는 Tier 1~2 업체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면 가치사슬의 화점에 해당하는 틈새시장을 선점해 고수익을 누리는 ‘슈퍼 을’과 ‘공급사슬 지휘자 모델’을 추구하는 기업도 나타날 것이다.


전략의 본질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선택을 찾는 것이다. 스페이스X의 성공은 일론 머스크의 자금력과 천재성, 당시 극에 달했던 미 정부의 불안감, 파트너도 경쟁자도 없었던 척박한 우주생태계, 2011년 스페이스 셔틀의 은퇴로 길을 할 일을 잃은 우주공학자들의 대거 유입과 같은 여러 변수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스페이스X의 내재화는 전략적으로 내린 ‘최적의 선택’이었던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게 아니다.


다시 말한다, 중요한 건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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