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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역사는 반복된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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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도 어느새 3년 차다. 전쟁이 발발할 때만 해도 양측은 물론 전 세계 누구도 이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내게 이 전쟁은 여러 의미로 제1차 세계대전을 연상케 한다. 지난 100여 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1차 세계대전을 분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펼쳐지고 있는 전황을 보면 1차 세계대전이 남긴 교훈은 책과 강의실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낙관의 오류]


1914년 당시 유럽에선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것’이란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서로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관계였던 유럽 열강 간의 싸움은 득 보다 실이 많은 만큼, 전쟁보단 공전이 이득이라는 합리적인 판단 아래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인간은 결코 경제적인 합리성으로만 움직이지 않으며 정치적, 감정적 이유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내가 더 가지는 것보다 남이 잘되는 걸 막을 때 더 큰 쾌감을 느끼는 게 인간이란 존재다.


2022년 서구의 지도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가 진짜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많지 않다. 푸틴이 시종일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한 몸’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허풍으로 여겼을 뿐이다. 1914년 독일과 2022년의 러시아, 둘 다 전쟁의 조건을 대놓고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총을 꺼내 들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자기 과신의 오류]


1차 대전이 터졌을 당시, 참여한 모든 열강은 오직 ‘공세’의 계획만 있었을 뿐 ‘수비’의 계획은 없었다. 다들 당연히 자기가 이길 거라고 과신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6주 만에 서부 전선을 무너뜨리고 전쟁을 끝낼 생각이었다.


푸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전쟁을 일으키면 우크라이나의 친 러시아 세력이 들고일어나 전쟁이 순식간에 끝날 것으로 오판했다. 하지만 그가 맞이한 것은 곳곳에서 집요하게 러시아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진 게릴라 부대였다.


세상은 결코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적, 친구, 일시적 동맹, 어부지리를 노리는 제삼자가 뒤엉켜 풀려가는 게 세상만사다. 특히나 전쟁처럼 복잡한 사건은 결코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시나리오 B, C, D를 준비하지 않은 전쟁은 파멸로 끝나기 십상이다.


[승패 집착의 오류]


러시아의 일방적인 패배, 나아가 푸틴 정권의 붕괴를 기대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끝이 곧 역사의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며 전쟁이 끝나도 좋건 싫건 세계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러시아에게 ‘탈출구’를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건 평화가 아니라 새로운 전쟁의 씨앗을 뿌리는 꼴이 될 수도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에 불만을 품은 독일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떠올려보라. 전후 굴욕과 증오심을 양분 삼아 더욱 악랄해진 러시아와 2차전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교훈을]


얼마나 시간이 걸리건, 결국에 전쟁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전쟁을 끝내는 것만큼 중요한 건 지속가능한 전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와의 화해, 적어도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절충을 이루고, 우크라이나를 민주주의 정부가 존속가능한 국가로 재건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만일 전후 처리가 이성과 화합의 정신이 아니라 분노와 이기심으로 이뤄진다면 우리는 또 한 번 역사가 반복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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