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웰치, 자본주의를 파괴한 남자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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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웰치가 시대의 히어로로 여겨졌던 시절이 있었다.


‘중성자탄’, ‘세기의 경영자’로 불렸던 잭이 전성기에 누렸던 명성은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의 그것을 능가했다. GE는 세계 1위 기업으로 군림했고, 전 세계 기업들은 Workout과 Sx-Sixma를 복음처럼 여기며 맹종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신화도 퇴색했다.



고객보다 주주가 우선이었던 그의 경영철학이 자본주의를 망친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필독서로 통했던 ‘잭 웰치, 끝없는 도전과 용기’는 조롱거리가 됐고 그 대신 고인 모독에 가까운 ‘The Man Who Broke Capitalism’이란 제목의 신간인 호응을 얻고 있다. (아직 한국엔 공식 번역판이 나오지 않은 듯?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이성적인 톤을 유지하며 잭 웰치의 유산을 꼼꼼히 분석한다)



기업은 ‘오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라는 레토릭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이를 대놓고 신봉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건 잭의 영향이 컸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고, 세금을 냈으며,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기여했는지가 자랑거리였다. (적어도 겉으론 그랬다) 하지만 잭의 시대에 이 모든 게 ‘낭비’로 여겨졌다. ‘주주의 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했으며, 단기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리는 게 경영의 지상과제가 됐다.



그 결과는 냉정한 구조조정과 난잡한 돈놀이였다.



유명한 ‘Stack Ranking’을 도입한 것도 그였다. 모든 직원을 A(20%), B(70%), C(10%) 등급으로 평가해 C 등급은 해고했다. 잭이 취임하고 5년 동안 전체 직원의 4분의 1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빈자리는 아웃소싱과 비정규직 고용을 대폭 늘려서 채웠다.



연구개발이나 교육훈련에 쓰는 돈도 크게 줄였다. 내부 투자가 실적으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원가 절감은 즉시 실적으로 드러난다. 투자자들은 개선된 실적에 환호했고 그 결과 주가는 올랐다. 잭은 오늘의 이익을 위해 내일을 희생하는 걸 정당화했다. 그가 미국 제조업의 추락을 유발한 범인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쥐어짜기만 했다면 세계 1위 기업으로 군림할 순 없었을 것이다. GE는 아낀 비용과 띄운 주가를 무기로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섰다.



하지만 그 성장도 좋은 ‘숫자’를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인수한 기업 중엔 GE의 본업과 관련된 분야도 있었지만 미디어, 철도, 통신, 신용카드, 보험, 의료 등 관계가 없는 분야도 많았다.



언젠가부터 GE는 돈 될 사업을 사서 굴리다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매각하는 걸 반복하는 게 주업이 됐다. 내부 투자는 거북이처럼 답답하고 비효율적인 걸로 치부됐고, 토끼처럼 쉽고 빠르게 성과를 내는 인수합병에 몰두했다.



아무리 선구안이 좋아도 모든 투자에 성공할 순 없다. 게다가 2008 금융위기로 시장이 경색되면서 남의 돈으로 무분별하게 추진했던 인수합병이 독이 됐다.



이 모든 걸 한 사람의 책임으로 몰 순 없다.



우리 모두는 시대의 산물이다. 잭 웰치처럼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경우 더욱 그렇다. 주변의 동조와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에서 80년대는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었다. 아시아 신흥국들이 경쟁자로 떠오르면서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레이건 정권의 방조 아래 연기금과 사모펀드의 존재감이 강해지고, 글로벌 자유무역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도 원인이 됐다. 잭은 시대의 요구에 답했고, 시장은 이에 화답했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그의 업적을 통째로 평가절하할 순 없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과거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개인의 영향력이 강해졌고, 이익 만능주의에 대한 사회적 반감도 거세다. 이젠 주주뿐 아니라 소비자, 노동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모두를 존중해야 하는 시대다. 산업사회에서 지식사회로의 전환, 출생률 감소, 공급망 블록화 등으로 인해 임직원들을 ‘비용’이 아니라 ‘핵심 자산’으로 존중을 가지고 대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시대가 바뀌면 처방도 바뀌어야 한다. 고인이 된 지 4년이나 된 잭 웰치를 둘러싼 논란이 요즘 들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개인에 대한 재평가보단 새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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