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셔니 Nov 03. 2024

47대 미 대선, 그리고 달러

트럼프, 해리스, 그리고 달러 

미 대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 3일 뒤면 유일 초강대국의 새 리더가 결정된다. 


누가 이길지 장담하기 어려운 접전 속에 궁금한 건 달러의 미래다. 미국은 달러를 무기로 전 세계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좌지우지한다. 미국의 패권을 지탱하는 삼신기를 꼽으면 달러는 반드시 포함된다. 어쩌면 1순위로 꼽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인 Pick은 실리콘벨리, 달러, 그리고 미군이다. Honorable mention goes to 영어)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이 아닌,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미국인들에게 달러 패권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다. 아무리 돈을 찍어도 인플레이션을 세계에 ‘수출’할 수 있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경기 부양이 가능하다는 건 좋은 점이다. 하지만 전 세계가 달러를 쓴다는 건 무역수지가 적자라는 이야기다. (지나친 단순화이긴 하지만) 달러 패권은 연방정부와 금융권, 그리고 소비자들의 이익을 위해 전통제조업을 희생시킨 결과물이다. 

달러가 왕좌에 오르고 약 8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은 라이벌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없다. 전 세계 무역거래의 약 60%가 달러로 이뤄지며, 전 세계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확히는 2008년 이후 달러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이 늘기 시작했다. 


미 달러 위기론이 거론된 지는 꽤 됐다. (거의 중국 부도론만큼이나 오래됐다) 미 달러 강세의 근간인 ‘투명한 법치주의’와 ‘미 경제의 지배적 지위’가 둘 다 흔들리고 있다. 


2024년 기준 미국의 공공부채는 35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나 부채를 줄이기 위한 이렇다 할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요즘 보면 위기라고 느끼는 인식 자체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투명한 시스템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며 미 정부가 일관되고 예측가능한 존재로 비쳤던 시대는 끝장났고, 최근 러시아의 자산을 동결하기로 한 결정도 ‘미국에게 전범국으로 찍히면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목격한 권위주의 국가들이 진지하게 달러의 대안을 고민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러의 힘은 아직 건재하다. 왜냐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 맞지만 그 잠재적 경쟁자들의 상황은 더 안 좋다. 


유로? 2009년 유로존 부채 위기는 유럽의 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전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하게 줄어들어 현재는 20% 이하로 떨어졌다. 


위안화?  중국은 제3세계를 시작으로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하지만 위안화의 사용은 여전히 중국이 직접 관여하는 무역에 머물러있다. 말로는 국제화를 외쳤지만 정작 선택의 순간이 오자 중국은 ‘무역 흑자’와 ‘강력한 통제’를 포기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금이나 암호화폐가 달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전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폭발적으로 커진 글로벌 경제를 견인하기에 턱없이 모자라며, 후자는 아직 기존의 법정화폐를 대체하기엔 기술적 제약이 있고 뭣보다도 신뢰가 부족하다. 


달러, 좀 더 정확히는 미국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쇠약해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대평가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이며,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사회와 그 제도가 온갖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의 상황은 더 열악하며, 미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전가할 때 자본주의의 오작동도 원 플러스 원 개념으로 떠넘긴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애초에 전 세계 경제 질서가 ‘달러’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도 갑작스러운 기대를 변화하기 어렵게 만든다. 미국의 과잉지출과 나머지의 과잉생산으로 이뤄진 세계 경제는 달러 가치가 폭락하면 다른 나라들이 타격을 입는 복잡한 방정식으로 돌아간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 위기가 올 때마다 전 세계 투자가 미국에 몰려 구원투수 역할을 하는 게 반복된다.  2008년 금융 위기도 결과적으론 미국의 금융 지배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됐다. 


결론, 현재까지 달러의 위치를 흔들 수 있는 심각한 경쟁자는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유일하게 가능해 보이는 시나리오는 미국이 달러의 지위를 자기 손으로 흔드는 경우다. 최근 미 대선에서 양 당이 모두 대중 무역수지를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다. 겉으론 중국을 타격하고 있지만 그 본질은 무역수지 균형을 흑백 논리로 해석, 강 달러의 피해를 본 (혹은 피해를 봤다고 믿는) 유권자들에게 ‘적자’라는 나쁜 어감의 단어로 호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 깔려 있는 방정식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합리적인 재정 정책, 성장동력을 촉진하는 경제 정책, 그리고 달러의 힘을 남용하지 않는 절제가 달러와 미국, 궁극적으론 전 세계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칼은 칼집 안에 있을 때 가장 위력적이다) 하지만 무역수지를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전 세계 경제가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고장 낼 수도 있다. 


초박빙 미 대선, 달러 속 워싱턴도 47대 대통령이 누가 될지 궁금한 눈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페르디낭 드 레셉스, 운하의 사나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