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드 레셉스,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수운 프로젝트인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를 이끌었던 19세기 프랑스인이다.
전자는 완벽한 대성공이었다. 그는 무엇이 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던 사람들을 보란 듯이 바보로 만들었다. 세간에서 그를 나폴레옹의 정신을 물려받은 낙관주의의 화신으로 꼽을 정도였다.
반면 후자는 재앙적 실패로 끝났다. 수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도 진도를 맞추지 못해 결국 회사는 파산했고, 이후 밝혀진 불법과 정치적 스캔들 속에 정신병에 걸릴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그를 자연을 이긴 인간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다가 한순간에 사기꾼이라는 낙인을 찍어 내다 버렸다. 결국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겠다는 꿈은 20세기에 미국이 이어받아 완성하게 된다.
레셉스의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평생 실용적 결과주의와 불법, 과감한 결단력과 독선적 오만, 긍정적 사고와 근거 없는 자기 맹신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했다. 두 프로젝트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달라진 건 주변환경이었다.
첫째, 수에즈 때는 이집트와 프랑스의 군주들이 프로젝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이집트의 노동력과 루이 나폴레옹의 재정적 지원이 없었다면 수에즈 운하도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랑스와 껄끄러운 관계였던 영국도 아시아로 가는 길이 단축되는 걸 지지하며 지원에 나섰다. 하지만 보불 전쟁으로 세계 질서가 격변하면서 파나마 운하는 비슷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니카라과 경로를 주장했던 미국도 사실상 수수방관했다.
둘째,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로 늘어난 공사 기간을 때맞춰 발명된 준설 기계로 단축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으로 그는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안타깝게도 파나마 운하를 지을 땐 그런 행운이 일어나지 않았다.
셋째,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바뀌었다. 수에즈 운하를 지을 땐 날카로운 반대의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시대의 위인’으로 격상된 그가 파나마 운하에 도전할 땐 다시 생각해 보라고 직언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대중과 언론은 또 한 번의 기적을 기대하며 뭔가 잘못됐다는 명백한 신호들이 쏟아져도 이를 외면했다.
인간은 위대한 동시에 불완전한 존재다. 영웅과 몽상가,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양면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우리는 ‘운과 환경’이라는 거대한 수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운명주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성공 앞에서 겸손을 되새기고, 실패했을 때 자조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말자는 소리다. 항상 내가 잘했다고 성공하는 것도, 못했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과거의 성공(or 실패)에 잡아 먹히지 않고 항상 새로운 레이스를 뛴다는 초연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