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화백이 그린 ‘십팔사략’의 한 장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건 초한지의 유방과 한신이다. 사자성어 ‘다다익선’의 어원이 된 일화, 단 한마디로 권력의 속성과 유방의 진면모를 표현해낸 명장면이다,
(혹시라도 모르는 분들을 위한 부연 설명: 한신은 유방이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운 불패의 명장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유방은 한신의 명성과 재주가 부담스러워졌고, 결국 한신과 그의 삼족을 모조리 죽여 후환을 없앴다)
2인자가 되는 것은 어렵다.
1인자를 올바른 길로 이끌되 딱 반 보 정도만 앞서가는 절제의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상 1인자를 압도하는 2인자는 토사구팽 당하든 아니면 찬탈을 하든 반드시 비극적인 최후로 끝났다.
그렇다고 수동적인 팔로워에 그쳐서도 안된다. 결국 모든 관계는 주고받기가 성립되어야 유지된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해도 옳다며 박수 치는 2인자는 당장은 아낌을 받을지 모르지만 곧 버림받는다. 1인자에게 없는 것, 필요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1인자가 시키는 걸 넘어 나의 역할을 스스로 만들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일회성 소모품으로 끝날 뿐이다.
마지막으로 인화다. 2인자가 가진 권한은 어디까지나 잠시 빌린 것에 불과하다. 권력에 지나치게 취해 적을 많이 만들면 목적을 달성한 1인자에게 꼬리 자르기를 당하기 십상이다.
한신은 세 가지 모두 철저하게 실패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한신의 눈에 유방과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모자라 보였을 것이다. 승리를 위해 유방의 명령을 무시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한신의 판단은 항상 옳았고 백전백승을 거뒀지만, 정작 유방은 그 승리를 편한 맘으로 즐길 수 없었다. 아무리 큰 승리도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면 의미가 없었던 것.
만일 한신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자신의 이용 가치를 증명할 수 있었다면 죽임을 당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후학을 가리키거나 변방을 지키는 역할을 자청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는 전쟁영웅이라는 자신의 과거를 끝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스스로의 업적에 도취되어 오만하기까지 했다. 잡은 황제에게 ‘너는 10만 명 정도가 한계’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한신의 우쭐함이 느껴진다. 옛 동료인 번쾌를 보고 ‘내가 저런 녀석과 같은 반열에 서는구나’라며 한탄한 일화도 있다. 정작 번쾌가 한신을 대왕이라고 칭하며 존중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주변에 아군이 없었다. 한신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바로 그 한신을 처음 스카우트했던 소하였다.
트럼프의 당선에 큰 기여를 한 머스크, 그 기세가 어마어마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1.5인자라는 말이 돌 정도다. 하지만 언제까지 갈까? 아직은 머스크가 트럼프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많다. 하지만 곳곳에서 위험함을 알리는 시그널들이 나오고 있다.
유방이 항우와 치열하게 싸우던 때의 일화다. 다른 전장에 파견 나가 있던 한신이 사신을 보내 이기기 위해 필요하다는 핑계로 ‘임시 왕’에 봉해달라 요청했다. 유방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 한신이 구원을 오진 않고 왕 자리를 달라고 하니 분노가 폭발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책사 장량이 지그시 발을 밟자 감정을 추스르고 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만한 공을 세웠으면 진짜 왕이 되어야지 임시직을 시켜달라는 건 뭔가? 왕위를 내리겠다”
왕위에 오른 한신은 감격했고 끝까지 유방을 도와 항우를 무찌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왕위 사건으로 자신의 토사구팽이 결정됐다는 건 끝까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