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Defense Exhibition & Conference, 줄여서 IDEX는 UAE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방산 전시회다. 중동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지상부터 공중, 사이버까지 다양한 방산 솔루션을 한 곳에 모아 소개한다. 그 밖에 방산과 상호 접점이 있는 다양한 주변 기술과 산업도 만나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중동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면서 행사의 규모와 위상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 우리나라도 여러 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배정받은 호텔방 번호가 707호라 시작부터 기분이 굿'
[격변의 대륙]
중동은 지금 격변의 가운데에 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을 축으로 고조되고 있는 지정학적 긴장도 있지만, 신사업 허브로 도약을 노리는 미래 리더십을 둘러싼 경쟁도 못지않게 뜨겁다.
UAE, 사우디, 카타르, 이집트 등 주요국들은 다들 국가 자생력 제고를 위해 마치 전격적을 벌이는 기세로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작년에는 전쟁과 사우디의 숨 고르기로 잠시 주춤했지만, 전쟁 확산 우려가 줄어들면서 회복세로 돌아섰고, 사우디를 넘어 중동 전역으로 활력이 확장되면서 전반적인 잠재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인상적인 건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만이 아니다. 단순한 조립공정 유치에 그쳤던 현지화 전략도 훨씬 더 구체적이고 야심만만 해졌다. 고부가가치가 높은 중간재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고, 아예 자체 브랜드를 가지려는 시도도 늘고 있다. 최근 몇몇 나라들이 자체 전기차 출시에 성공했는데, 앞으로 비슷한 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의 과감한 드라이브에는 정치적 배경도 중요한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UAE와 사우디는 새 리더십으로 권한이 이양되고 있는 중이다. 다른 나라들도 각각 사정은 다르지만 내부적 단합을 강화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라비아 상인의 후예들]
미중 갈등도 중동의 변화에 가속을 붙인 요소 중 하나다. 두 초강대국은 각각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중동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하려고 한다. 미국은 UAE의 AI 투자를 돕고 사우디 무기 금수를 완화하는 등 한층 개방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도 에너지, 제조 등 자기들이 강한 분야를 중심으로 협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여기에 중동은 실용적인 자세로 잘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전시회에선 보기 힘들었던 중국 및 BRICS 관계자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사우디와 UAE는 ‘24년에 BRICS 공식 가입한 회원국이기도 하다. 러시아 업체가 들어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고, 중국은 가히 종합선물세트를 가지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규모가 컸다. 물론 다른 한편으론 미국과의 관계에 공을 기울이고 숙적이었던 이스라엘과도 교류를 늘리는 등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다.
세션 주제나 이벤트 시간대 같은 소소한 부분 하나하나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영리하게 밀당을 구사하는 게 느껴졌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알지만 필요할 때마다 19세기 사람을 연출하며 묵언수행에 들어가는 모습은 타고난 협상가 그 자, 괜히 아라비아 상인이 유명했던 게 아니었다.
[뜨거운 건 태양만이 아니었다]
평균연령이 다른 나라보다 10년 정도 낮게 느껴질 만큼 젊은 인구도 인상적이었다. 해외 인력 유치에 적극적이란 건 알았지만 현지 관계자의 상당수가 외국인이었던 것도 놀라웠다. UAE의 경우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이 무려 80%가 넘는다고. 최근 법을 개정해 외국인 지분 제한을 폐지하는 등 보다 개방적, 투자 친화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수인재 유치를 위한 시민권 규정 완화도 예상된다고.
가장 뜨거운 분야는 역시 AI. UAE는 ‘25년 국가 정책 수립의 3대 의제 중 하나로 AI 산업 육성을 채택했다. (나머지 둘은 가족과 국가 정체성) AI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리소스가 재분배, 다른 산업들의 우선순위가 상당 부분 조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UAE뿐 아니라 다른 중동 국가들도 마찬가지.
[불안 속에 커지는 안보 수요]
전시의 주제였던 방산 이야기를 하자면, 이스라엘-하마스의 전쟁은 그쳤지만 그 긴장감은 여전히 느껴졌다. 참가국들은 하나같이 안보 자립의 의지를 강조했고, 그 선두에 있는 사우디는 2030년까지 자주국방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동의 다른 국가들도 현지화를 위한 국제협력을 모색 중. 방산 수입 상위 10개국 가운데 4곳이 중동에 있을 정도. 단순 구매를 탈피해 현지화를 노리는 정책 기조에 잘 올라타면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도.
[시류는 좋다]
전시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한국의 이미지는 상당히 좋았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K-POP을 언급하는 현지 분들도 종종 있었고, 한국 기업의 인지도 역시 높았다. (네이버, 농심과 아모레퍼시픽의 인지도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 놀랐다) 단, 중동 공략을 노리는 나라들이 워낙 많고, 웬만한 수준으로는 눈길도 얻지 못할 만큼 현지의 기대치가 높아진 것도 유의해야 할 것.
[아부다비의 저녁]
UAE의 명성에 어울리게 모든 것이 첨단에 화려했고 스케일이 컸다. 종이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고, 어디서나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는 기본이었다. 디지털 도시 서울? 여기선 명함도 못 내민다.
현장 직원들은 다들 완벽한 영어를 구사했다. (어떤 의미로는 미국 현지 행사보다 영어가 더 잘 통했다) 곳곳에서 넘치는 힘과 포부, 젊음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화려함의 이면에선 새치를 보고 처음으로 세월을 느낀 자의 애수가 스치듯 보이기도 했다. 아부다비의 저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쌀쌀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그들도 가족들을 위한,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한 건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아쉬운 것 하나, 아부다비 국영 항공사를 이용했는데 '면식'이란 이름으로 잡채가 나왔다. (잡채밥이 아니다, 그냥 면만 나왔다) 나름 한국 승객을 배려하려는 시도였겠지만... 담당 팀에 한국인이 없었던 듯?
살면서 단 한 번도 항공사에 Claim이나 VOC를 보낸 적이 없지만 이번엔 몇 줄 적어 보내려고 한다,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매력과 가능성이 넘치는 UAE를 즐겁게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계속 늘어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