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제품을 다각화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기업은 항상 다각화를 위한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며 위기에 닥쳐온 뒤에야 궁여지책처럼 꺼내 들면 안 된다. 기존 사업이 힘이 넘칠 때엔 다각화를 위해 충분한 자원을 투입할 수 있으며 실패해도 그 여파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성공적인 다각화는 반드시 업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단지 리스크 회피를 위해 양다리를 걸치는 방식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요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지만) 개인적으로 21세기 최고의 다각화 성공 사레라고 생각하는 건 마블 유니버스다. 만일 마블이 본인들의 업이 ‘만화’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생소한 영화 산업에 뛰어드는 결단을 내리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다양한 연령, 성별, 인종을 겨냥한 만화책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을까? 학생용 교육 만화나 성인물에 진출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마블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게 ‘만화 사업’이 아니라 ‘캐릭터 사업’이란 걸 꿰뚫어 봤다.
기존의 핵심 역량을 새로운 플랫폼에 적용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충성스러운 고객들의 정서적 지지를 유지하면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팬들이 마블을 좋아하고 이유를 정확히 짚으니 나머지는 절로 풀려나갔다. 영화를 제작해 본 적이 없다는 건 상대적으로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최근 마블의 부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자기들이 진짜 영화 제작사라고 착각, 예술 병과 PC에 중독되어 다양한 시도를 하다가 핵심 역량인 캐릭터의 매력을 망가뜨린 것.
반대로 업의 본질을 잘못 진단했다가 다각화에 실패한 사례도 많다. 21세기 초 암흑의 시절, 스타벅스는 자기가 하는 게 요식업이라고 착각하곤 꾸준히 메뉴를 늘려 나갔다.
본질을 잊고 던킨도너츠, 맥도널드와 경쟁한 결과는 심각했다. 한때 정갈하고 차분했던 스타벅스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곳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고객들은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에 당황했고, 직원들은 품질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브랜드는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스타벅스는 자기들의 핵심 역량이 기념품이나 베이커리, 심지어는 커피도 아니고 바로 ‘쉼과 만남’이라는 걸 잊었던 것이다. 이러한 오판이 비참한 경영 실적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둑을 두면 우선 귀에 선수를 두어 거점을 확보한 뒤, 이를 기반 삼아 서서히 중앙으로 진출하는 게 정석이다. 처음부터 중앙에 수를 두는 변칙적인 플레이가 있긴 하지만 ‘농락에 가까울 만큼’ 둘의 실력차가 크지 않은 이상 반드시 패한다.
사업 다각화도 마찬가지, 그저 고객이 같거나 기술이 겹친다고 무작정 다각화를 시도하는 건 전형적인 제품 지향적 접근이다. 성공적인 다각화를 위해선 고객 지향적 관점에서 업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필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정교하게 성장 경로를 그려야 성공할 수 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 엉뚱한 판에 끼는 건 패망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