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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우주전략 2040

이런 것도 전략이냐?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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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우주정책을 총괄하는 ESA가 중장기 전략 (ESA Strategy 2040)을 내놨다. 전략에서 밝힌 유럽의 5대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Protect our planet and climate – 기후, 우주쓰레기 등 환경문제

2. Explore and discover – 탐사 역량의 확보 및 우주레이스 참여

3. Strengthen European autonomy and resilience – 국방, 기술 자립

4. Boost European growth and competitiveness – 경제적 실익 창출

5. Inspire Europe – 유럽의 소프트파워 및 외교력 제고


본문 곳곳에서 최근의 지정학적 위기감, 특히 미국과 불거진 갈등으로 인한 절박함의 흔적이 느껴진다. ‘자주성’, ‘독자역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오며,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NASA와 함께 해온 심우주 탐사도 직접 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 내용이 광범위하다. 단순히 유럽을 우주 궤도에 띄우는 것을 넘어 저궤도, 달, 나아가 화성까지 독자 개발하는 게 목표.


진취적인 목표이자 고무적인 시그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ESA의 예산은 NASA의 삼분의 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에서 미국만큼 하겠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유럽형 스타링크로 기획 중인 IRIS-II부터 유인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들이다. 한 정부만 만족시키면 되는 NASA와 달리 ESA는 각자 입장이 다른 여러 회원국들을 모두 설득해야만 대형 프로젝트 추진이 가능하다. 과연 이만한 스케일의 예산 증액이 잡음 없이 진행될 수 있을까?


소위 ‘전략’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로드맵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어느 나라가 뭘 언제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역할분담 협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ESA의 계획은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발사체에 대한 비전이 모호한 것도 눈에 띈다. 독자 발사체를 유지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앞으로 민영화를 하겠다는 건지, 재사용발사체를 추구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래가지곤 전략보다는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에 가깝다. 유럽의 우주 중장기 전략이 우리나라 구청장 공약집 수준이면 곤란하지 않은가?


일단은 판단 유보, 이 전략을 어떻게 구현할지를 다룬 세부 계획이 뒤따라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이걸로 끝이라면 정말 실망스러울 듯)


유럽의 우주레이스 합류는 좋은 현상이다. 유럽의 참가는 새로운 혁신을 자극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겐 그럴만한 기술과 경험이 있다. 단지 통합적이고 추진력을 겸비한, 제대로 된 전략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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