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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계속된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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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세계를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해줄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30년 전으로 시계를 되감아 보자. 90년대는 다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넘쳤던 시대였다. 글로벌 공급망으로 온 세계가 연결되면 전쟁의 위험도 낮아져 항구적인 평화가 올 거라는 유토피아적 기대감이 컸다. 맥도널드가 들어서 있는 나라 간에는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일명 ‘황금 아치의 전쟁 예방 이론’이 상식으로 통했던 시대였다.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었던 걸 안다고 했던가? 돌이켜보니 세기말이었던 그때가 오히려 유례없이 평화로운 시대였다.



당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 제목부터 자극적인 “역사의 종말”이다. (원제는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일본계 미국인인 Francis Fukuyama가 쓴 이 책에는 냉전 직후 자유세계의 분위기가 잘 담겨있다. 앞으로 세계는 의회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의 쌍두마차가 이끄는 단일 시스템 하에 평화적으로 공존하게 될 것이며, 영토와 이념을 둘러싼 유혈 낭자한 싸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란 게 책의 요지다. 심지어 저자는 ‘끽해야 기업 간 시장점유율을 둘러싼 경쟁이 전부인, 혁명이 사라진 세상에서도 인류가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게 가능할까’라는 팔자 좋기 그지없는 걱정까지 늘어놓는다.



아쉽게도 (다행히도?) 역사는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서구가 발명한 대의 정부, 국제무역, 소비자 중심의 사회, 표준화된 인터넷과 영어가 전 세계에 파급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쟁과 갈등이 사라지진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9.11 테러? 2008 금융위기 때 소위 국제공조라는 게 얼마나 허상인지가 밝혀지면서? 아니면 코로나19로 각자도생의 본능이 노출되었을 때? 자유진영의 정치권이 극단주의자들에게 점거 당하면서? 그도 아니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30년간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왔지만 우리는 내심 불안하면서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될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2012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미국 제조업을 되살리고 싶은데 아이폰을 다시 미국에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물었다. 이에 잡스는 평소의 스타일대로 직구를 던졌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These jobs aren’t coming back)



아이폰을 미국에서 만들게 되면 비용이 올라가고, 그러면 소비자와 애플, 미국경제, 궁극적으론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게 잡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엔 제품을 가장 효율적, 경제적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이 가득할 뿐 미국 제조업의 부활은 관심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났다. 그동안 경제논리로만 다뤄졌던 산업정책에 정치논리, 안보논리가 깊숙이 파고들어왔다. 과거에 ‘반칙’으로 여겨졌던 관세나 정부 보조금, 무역보복이 어느새 관행이 되어 버렸다. 만일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훨씬 더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왜 아이폰을 해외에서 만들어야 하는지를 힘겹게 호소해야 했을 것이다. 더 이상 ‘그게 더 싸니까’라는 한마디로 통하는 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시대는 변했다. 처음엔 소수의 극단주의자들, 이어서 중국과 러시아, 그리곤 이젠 자유세계조차도 세계화에 소외당한 계급과 세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나섰다. 아무리 아쉬워해도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바뀐 질서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괜찮다. 역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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