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뭔가를 싫어하면 그걸 단순화하길 좋아한다.
이놈은 나쁜 놈, 저놈은 무능한 놈, 그놈은 이상한 놈. 자기 눈에 보이는 데로 상대방의 이마에 낙인을 찍는다. 상대가 싫은 이유가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내 맘이 가장 편해지는 방법은 그들에게 본질적인 결함이 있다고 저주하는 것이다. (In note, 우리를 화나게 하는 건 얄미운 김 대리도, 한심한 박 부장도 아니다. 그들을 볼 때 떠오르는 나의 한계와 상실감이다)
이러한 편견은 집단 간에도 작용한다. 특정 정파를 악마화하고, 특정 인종을 게으르다고 하고, 특정 지역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낙인찍고, 특정 세대를 최악의 세대라고 폄하하고, 특정 직업군을 혐오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보편 인권이 상식이 된 시대이지만 논리적으로만 그럴 뿐 여전히 이민과 인종차별은 민감한 문제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내내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루머와 출생지 조작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도)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존재다.
유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과대평가되어 있다. 인간의 DNA는 서로 다른 인종 간에도 99.9% 이상 동일하다. IQ 검사가 처음 고안되었을 때 유태인들의 IQ 지수는 다른 인종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독일계와 아일랜드계는 진짜 백인 취급을 받지 못했다. 흑인과 여성이 고도의 지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믿음에 금이 간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에게 운명적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환경이다. 쌍둥이도 성장 환경이 다르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극단적인 환경을 살아온 난민에게 높은 교양과 이타심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우린 그들의 불운과 악행을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결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상대방을 애초에 그렇게 타고난 사람, 갱생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면 화합은 불가능하다.
환경 못지않게 간과되는 것은 순간순간의 상황이다. 상황에 따라서 군자도 될 수 있고 소인도 될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줄을 무시하고 내 앞에 끼어드는 얌체가 알고 보니 급하게 병원에 가는 중이었을 수도 있다. 나눠먹을 게 있을 땐 친구였던 사람들이 위기가 닥치면 원수가 된다. 반대로 위기가 닥치면 적이 동료가 되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인간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며 우리 모두는 가슴속에 영웅과 악당을 둘 다 품고 산다.
상대를 알고 있다는 오만과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착각을 버려야 비로소 상대의 진면목을 불 수 있다. 우리는 DNA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항상 변하는 존재다. 기대해서도 실망해서도 안되는 게 인간이다. 서로 상생할 수 있다는 믿음과 모든 관계에는 수명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길 때 비로소 우리는 성숙한 사람(人)이 된다.
최근 통합이 키워드인 것 같아서 불현듯 든 단상을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