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푸틴에게 지고 있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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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주제로 다룬 책을 읽었다면 BATNA라는 용어에 익숙할 것이다. BATNA는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를 줄인 약어이다. 협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지막 한계점을 일컫는 말이다. 나의 속내는 보여주지 않은 채 상대방의 BATNA를 간파해야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자, 이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협상을 돌이켜보자. 미국의 BATNA는 아주 분명해 보인다. 반면 푸틴이 어디까지 원하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체면을 구기지 않고 전쟁을 빠져나올 수 있는 탈출구? NATO 확장을 자제하겠다는 약속과 서구와의 관계 복원? 우크라이나의 완전 정복? 그도 아니면 소련의 부활?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전부터 이미 자신의 BATNA를 드러내고 말았다. 그는 전임 대통령을 전쟁을 막지 못한 무능한 리더라고 비판했으며, 자기가 당선되면 그 즉시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가져온 대통령,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잡은 대통령, 푸틴을 협상장에 불러낼 수 있는 강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자기가 취임했는데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이렇다 할 움직임이 보이지 않자 트럼프는 초조한 마음에 스스로의 협상 레버리지를 훼손하는 실책을 연달아 저질렀다. 우크라이나, NATO 멤버들과 공공연히 갈등을 빚는 모습을 노출했다. 러시아는 이 모든 걸 미국의 절박함을 드러내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미국의 평화 중재 시도에 소극적이고 모호한 태도로 일관했다. 빠른 종전이 상대방의 BATNA라는 걸 알게 된 만큼 러시아 입장에선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더 이상 미국은 러시아를 편애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선 안된다. 우크라이나를 무조건 지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평화를 위한 중재자로서 평화에 반대하는 쪽을 억누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


러시아에게 미국이 원하는 건 무조건적인 평화가 아닌 좋은 평화라는 걸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러시아가 평화를 거부하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미국이 어디까지 원하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러시아가 헷갈리게 만들어야 한다. 애초에 상대방을 헷갈리게 만드는 건 트럼프의 장기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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