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는 유비의 촉나라나 손권의 오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했다. 위나라의 인구는 두 나라를 합친 것보다 많았고, 화북이라는 곡창지대를 독점함으로써 생산력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세 나라의 구체적인 세력 균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위나라가 나머지 두 나라를 합한 것보다 강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위나라는 삼국을 압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끌려다녔다. 삼국시대 내내 위는 공세보다 수세에 몰리는 일이 많았으며 촉을 정복하고 삼국 분립 구도를 깨뜨리는 데 4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위나라가 끌려다녔던 이유는 지나치게 길고 분산된 전선 때문이었다. 싸움의 핵심은 힘의 집중이며, 언제나 싸우는 장소를 선택하는 자가 승기를 잡기 마련이다. 그러나 위나라는 반드시 지켜야 할 전략적 거점이 세 곳이나 있었기에 항상 병력이 분산된 상태로 상대가 원하는 전장에서 싸움을 강요당했다.
첫째는 관서 지역이다. 이곳이 함락되면, 변방 구석에 갇혀 있는 촉나라가 중원까지 힘을 투사할 수 있게 된다. 중원은 평야로 넓게 펼쳐져 방어에 취약한 지역이라, 관서라는 완충 지대가 사라지면 마치 속살에 가시가 박힌 꼴이 되고 만다.
둘째는 번성이다. 이곳을 잃으면 양자강 중류의 통제권이 무너지게 된다. 또한 위나라의 도읍이 눈앞까지 가까워 항상 기습에 노출된다.
셋째는 합비성이다. 회남을 내려다보는 이 성이 무너지면 마치 집 대문이 열린 것처럼 회수 이남이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
셋 중 하나만 뚫려도 위나라는 전체 방어 체계를 새로 짜야 할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문제는 이 세 거점이 서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교통과 통신 수준으로는 이들 병력 간의 상호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결과적으로 위나라는 항상 촉과 오보다 적은 병력으로 싸워야 했다. 국력은 압도적이었지만, 병력을 세 곳에 분산 배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목 민족들이 공세로 나올 때에는 북쪽에도 추가 병력을 할애해야 했다. 반면 촉과 오는 원하는 전선에 병력을 집중할 수 있었고, 위나라가 어느 한곳에 집중하는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다른 곳을 타격했다.
그 결과 위나라 장특은 고작 3천 명으로 오나라의 20만 대군에 맞서야 했다. 이 일화를 보면 어느 쪽이 강대국이고 어느 쪽이 약소국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요즘 국제 정세를 보면 미국, 중국, 러시아가 현대판 삼국지를 연출하고 있는 듯하다. 서로 불편한 관계였지만 위나라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합쳤지만 촉과 오처럼, 중국과 러시아 역시 속으로는 견제하면서도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겉으로는 협력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밖으로 세력을 뻗으려는 중국과 러시아,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 사이에도 세 개의 핵심 전선이 존재한다.
첫째는 우크라이나다. 이곳이 완전히 러시아의 손에 들어가면, 러시아군이 동유럽을 넘어 독일까지 진군할 수 있는 고속도로가 열리게 된다.
둘째는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의 앞마당인 이곳이 봉쇄되면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30%가 영향을 받는다. 만약 이란이 서방국가들의 통과를 막는다면 그 파장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셋째는 대만 해협이다. 폭 130~410km의 좁은 바다지만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약 절반이 이곳을 지나간다. 이곳이 마비되면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 산업이 흔들리고 대만, 한국, 그리고 일본은 실존적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만일 대만 자체가 중국에 넘어가면 중국 해군이 남중국해 전역을 휘젓고 다닐 수 있게 된다.
미국이 중국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중동 문제에서 거리를 두자 그 틈을 노려 전쟁이 벌어졌다.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와 중동에 힘을 집중하면 어떻게 될까? 위기가 대만으로 전이되진 않을까? 그렇다고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았다간 하나도 모두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미국은 세 개의 전선에서 동시에 전쟁을 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 강대국이 아니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위나라는 결국 어떻게 교착 상태를 돌파하고 승리할 수 있었을까?
첫째, 우선순위를 정하고 속전속결에 집중했다. 촉을 먼저 멸망시키기로 한 위는 20만 명이 넘는 대병력을 동원했다. 이는 촉군의 네 배에 달하는 규모였고, 일부는 병력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할 정도였다.
둘째, 철저한 기밀을 유지했다. 촉 공격 계획을 알고 있던 사람은 위나라 고위층 중에서도 극소수였으며, 전체 계획을 완전히 숙지한 인물은 종회 한 명뿐이었다고 한다. 위는 1년 넘게 전국적으로 수군을 건조하며 오나라 침공을 준비하는 듯 위장했고, 그 이면에서는 촉의 내부 상황을 치밀하게 파악하며 작전을 세웠다.
셋째, 촉과 오가 협력하기 어려운 시기를 노렸다. 당시 오나라는 황제 손휴가 정권을 막 되찾은 상황이라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촉을 도울지, 위의 빈틈을 노릴지 내부적으로 갈팡질팡했다.
결국 위는 단 3개월 만에 촉을 멸망시켰다. 냉병기의 시절, 철옹성이라 불리던 촉을 이토록 짧은 시간에 무너뜨린 것은 철저한 전략적 승리였다. 촉이 무너지자, 남은 오를 제압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지금의 미국은 어떠한가? 세 개의 전선을 오가며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국력만 소진하는 상황은 아닌가? 역사 속 위나라의 교훈을 되새겨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