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용기
삼국지에서 오나라를 세운 건 손권이지만 나라의 기초를 닦은 건 손책이었다.
전쟁에 서툴렀다는 평가를 받는 손권이 형인 손책의 활약 없이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지지자만큼 적도 많았던 손책이 지역 토후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던 강동을 안정시킬 수 있었을까? 치욕을 참을 줄 아는 리더라는 평가를 받았던 손권보다 잘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처럼 두 형제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았다. 호랑이 같은 형에 비해 손권은 지나치게 신중해 유약해 보였고, 아무도 그가 손책의 후계자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다(심지어 본인조차도). 동생 중 손책을 가장 닮았던 건 강인하고 과감한 풍모가 있었던 손익이었고, 손책이 위독해지자 오나라의 대관 중 다수가 손익을 후계자로 지지했다.
하지만 손책은 손익이 아닌 손권을 후계자로 선택했다. 당시 그가 남긴 말이 ‘삼국지 정사’에 남아있다.
‘강동의 병사를 일으켜서 양 진영 사이에서 기회를 보아 천하를 다투는 것은 경이 나만 못하다. 그러나 현인을 등용하고 능력 있는 자에게 맡겨 각자가 제 마음을 다하게 하고, 강동을 보전하는 것은 내가 경만 못하다.’
손책은 영웅이었다. 그는 도량이 컸고 추진력과 결단력이 뛰어났다. 강남의 잠재력을 꿰뚫어 보고 조조와 원소의 대결을 틈타 어부지리를 노리는 등 대국을 읽는 안목도 갖추고 있었다. 통일 중국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강동의 호족들을 순식간에 휘어잡은 것으로 보아 리더십과 카리스마도 대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그는 매사에 지나치게 강압적이었으며 멈추거나 물러설 줄을 몰랐다. 그에게는 열정적인 추종자들 못지않게 적이 많았고, 결국 자기가 멸망시킨 세력의 잔당에게 암살당하는 비운의 최후를 맞았다.
반면 손권은 남녀노소 모두 혈기가 넘쳤던 손씨 일가에서 여러모로 튀는 존재였다. 전쟁보다는 치국이 장기였고, 실리를 추구하는 게 지나쳐 종종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사람을 이끌 때에도 앞에 나서 부하들을 휘어잡기보다는 이면에서 상황을 조율하는 걸 선호했다. 튀는 걸 좋아했던(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형과 달리 손권은 이 시대에 등장한 지도자들 가운데 손에 꼽힐 만큼 검소한 편에 속했다.
강하고, 당당하고, 화려했던 손책의 리더십에 익숙했던 부하들에게 손권은 약하고, 소심하고, 답답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마 손책 본인도 그다지 손권을 가깝게 느끼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동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손책은 손권에게 이렇다 할 중임을 맡긴 적이 없다, 창업 초창기라 사람이 귀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책은 마지막 선택의 순간에 손권을 후계자로 택했다.
(비롯 뒤늦은 깨달음이긴 했지만) 손책은 자신의 왕국이 오로지 힘으로 급하게 세워진 모래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손책이 죽고 나면 너도나도 들고일어날 것이 뻔했다. 심지어 손씨 가문 내에도 경쟁자들이 있었다(실제로 손책이 죽자 권력을 노린 방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손책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상황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이후의 역사는 삼국지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손책이 죽었을 당시 손권은 공황에 빠질 만큼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모두를 걱정시켰지만, 곧 자신만의 강점으로 강동을 안정시켰고 나아가 형을 능가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진수의 삼국지 정사에 그려진 손권은 ‘몸을 굽혀 치욕을 참을 줄 알고’ ‘재능 있는 자를 등용하고 지혜로운 자를 존중하는’ 리더다. 그야말로 손책과는 정반대의 인물. 진수는 손권을 닮은 인물로 구천을 꼽았는데, 그는 평생 인내하며 때를 기다린 와신상담의 주인공이다. 반면 손책과 비슷한 사람으로 꼽혔던 인물은 오로지 질주하는 것만 알았던 항우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선호한다. 비슷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예측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책은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창업의 시대에는 패기와 용맹이 필요했지만, 어렵게 세운 기업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손권처럼 신중하고 포용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이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더 나아가 나보다 낫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어렵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손책이 적들을 상대로 거둔 그 많은 승리보다도 마지막 순간 스스로에게 거둔 이 승리가 훨씬 귀하고 위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비전과 카리스마가 없는 팀 쿡에게 애플을 맡겼고, 스티브 발머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티아 나델라에게 마이크로소프트를 넘겼다.
편한 사람, 나하고 닮은 사람으로만 주변을 채우면 발전할 수 없다. 변화와 성장은 언제나 불편함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