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실패를 직시할 용기가 있었던 지도자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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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삼형제가 세를 얻기 전인 삼국지 초반부는 조조와 원소의 대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청난 세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의 대결은 독자에게 큰 긴장감을 주지 못한다.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조조를 우유부단하고 실책을 거듭하는 원소가 꺾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고, 마치 결말을 알고 있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시시할 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달리 둘 가운데 전적이 더 화려했던 건 조조가 아닌 원소였다. 역사에 기록이 남은 전투만 따졌을 때, 원소는 기주에 거점을 마련했을 때부터 조조에게 관도에서 패할 때까지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기록에 남지 않은 패전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결정적인 전투에선 연전연승한 것이 확실하다. 내용을 살펴보면 더 대단한데 처음 거병한 191년부터 공손찬을 압도하기 시작한 197년(관도대전이 벌어진 건 200년이다)까지 원소는 거의 언제나 병력에서 열세였다.


반면 조조가 관도까지 오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여포에게 본거지를 빼앗겨 2년 가까이 방랑군 신세가 되었고, 장수에게 기습을 당해 큰아들을 잃고 본인도 죽을 뻔했다. 항상 뒤통수를 노리는 원술은 내장에 생긴 종기와도 같았고, 황실 보위를 명분으로 반란을 노리는 내부의 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조조는 세력뿐 아니라 승률도 원소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른바 불패 장군과는 거리가 멀었고, 자기보다 약한 군벌에게 당해 죽을 뻔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면 둘의 승패를 결정한 건 운명의 여신이었을까?


우리는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승자와 패자의 차이를 결정하는 건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젊었을 때의 조조는 과감함과 성급함의 경계 위에 서있는 불완전한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실패를 거듭할 때마다 성장하며 진화해 갔다. 속공과 임기응변에만 의존하던 돌격대장에서 공수를 유연하게 오가는 노련한 전략가로 발전했고, 나중에는 남에게 위임하고 뒤로 물러서는 지혜까지 터득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하면 후회와 두려움, 현실 부정과 자기 의심, 그리고 남을 원망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좀먹고 만다. 하지만 조조는 달랐다. 부하들과 터놓고 실패한 원인을 논의하고,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했으며, 실패를 만회할 계획을 제시하며 승리의 낙관을 전도했다. 요즘 말로 하면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반면 원소는 실패에 대한 내성이 조조만 못했다. 핵심 참모였던 전풍과 저수가 옳은 소리를 했지만 귀에 거슬린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의 예측대로 전황이 흘러가자 중용하기는 고사하고 자기를 비웃을 거라는 두려움에 숙청했다. 전세가 역전되자 패닉 상태에 빠져 실책을 거듭했으며, 결국엔 패전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급사하고 말았다.


이는 전투에서 져도 단단히 버텨 피해를 최소화하고, 패전에서 얻은 교훈을 무기로 반드시 복수를 해낸 조조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조조는 관도대전이 끝나고 7년 뒤 적벽에서 자기가 격파한 원소와 똑같은 처지가 된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었다는 자만심에 사로잡혀 적을 우습게 보았다가 처절한 패배를 당한 것.


하지만 원소와 달리 조조는 냉정을 되찾고 놓인 환경 속에서 최선의 대응을 했다. 번성에 조인, 합비에 장료를 배치해 적의 북진에 적절히 대처했으며 천하통일에 매몰되었던 마음을 반쯤 접고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한 번의 패배를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린 원소와 달리 조조는 더 큰 패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빠르게 수습해 재기할 수 있었다. 이후 서량에서 마초를 상대할 때는 적벽 이전과 비교해 훨씬 더 치밀하고 정교해진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그의 마지막을 결정하는 건 실패를 다루는 태도다. 만일 모든 게 너무 잘 풀리기만 한다면 그때야말로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두려워해야 할 때다. 패배의 쓴맛을 잊은 자는 언젠가는 다가올, 결코 피할 수 없는 좌절의 시험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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