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2를 봤다

할리우드의 몰락, 고인 물은 썩는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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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트럼프가 해외에서 제작된 영화에 100% 관세를 물리겠다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요즘은 잘 들리지 않는 걸 보니 흐지부지된 것 같다. 다행이다).


하지만 할리우드가 쇠퇴한 이유는 영화가 해외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갈수록 영화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모든 제국이 그랬듯, 할리우드도 외침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미국의 대형 영화 제작사들은 흥행만 쫓느라 본질을 외면했다. 속편만으로도 모자라 온갖 프리퀄, 스핀오프, 리메이크가 쏟아진다. 관객의 만족보다 흥행 기록이 중요해진 순간부터 영화의 완성도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익숙한 소재와 친숙한 배우를 동원해 공장에서 찍어내듯 영화를 만드는 게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요즘 나오는 신작의 99%는, 영화 좀 본 사람이라면 예고편만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보일 지경이다.


한번 되돌아보자.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지적인 자극을 받은 게 언제였는가?

굳이 대부(1972)나 에일리언(1979), 벤허(1959, 오리지널)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터미네이터 2(1991)나 매트릭스(1999) 같은 영화는 단순히 흥행에 성공한 것을 넘어,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을 바꾸어 놓았고, 더 나아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위대한 미국’의 이미지를 심어 놓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오리지널 스토리로 위의 영화들과 동급의 파급력을 보여준 21세기 영화는 찾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인터스텔라(2014) 정도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소셜 네트워크(2010), 다크 나이트(2008) 같은 걸작들도 있었지만,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니었다.


위에 거론한 영화들은 열등한 후속편들로 인해 명성이 훼손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할리우드는 잔반 처리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21세기의 영화 제작사들은 창작(create)이 아닌 산업공학(engineer)의 관점에서 영화를 다루고 있다. 소위 ‘흥행 공식’이라는 황금률과 각종 통계를 레고 맞추듯 조합해 만들어낸 가공물이 대부분이다. 비슷한 설정과 캐릭터를 검증된 배우와 감독으로 끊임없이 반복한다. 마치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이.


한때 찬란했던 할리우드의 마법을 되살리려면, 안전한(지겨운) 공학 놀음을 그만두고 새로운 스토리, 신선한 얼굴, 패기 넘치는 감독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어쩌면 실리콘밸리의 성공이 참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액을 다루는 대형 상장회사들이 상업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포기하기란 어렵다. 특히 대안이 없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지금은 업황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갈수록 더 안전한 선택만을 추구하면서 상황이 악화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하지만 참신한 스토리로 무장한 영화들이 등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이너 스튜디오와 신인 감독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줄 투자 생태계가 활성화된다면, 할리우드에도 건강한 긴장감이 되살아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할리우드에는 서브스턴스 같은 영화가 더 많이 필요하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영화가 메이저 스튜디오의 제작 승인을 받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제작자가 대단한 능력자였을 것이다.)


경쟁은 혁신의 원동력이며, 흐르지 않는 물은 고여 썩기 마련이다. 할리우드가 옛 모습을 되찾으려면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 도대체 언제까지 브래드 피트와 슈퍼맨이 스크린을 차지하고 있을 것인가? 아무리 대단한 배우가 출연한 잘 만든 리메이크라도, 그 한계는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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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1: 넷플릭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훌륭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상상력이 메말라 가는 현상은 극장가뿐 아니라 넷플릭스에도 치명타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아무리 싸고 편하다고 해도, 기본적인 재미조차 사라진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노트 2: 글래디에이터 2는 보지 않으시는 걸 추천드린다. 덴젤 워싱턴의 광팬이라면 그나마 볼 만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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