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공부법'

by 셔니

[우연히 튼 YouTube, ‘외로운 지성인’을 자처하는 한 시사 평론가가 똑같은 주장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공부가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하며, ‘내가 과외를 시켜줄 수도 있지만 그래서는 자기 것으로 체화되지 않을 테니 참겠다’는 모습은 거부감을 넘어 위험하게 느껴졌다. 정작 내용을 보면 90년대에 유행했던 경제이론에서 한 발짝도 나아진 게 없다. 아니, 오히려 퇴화했다]

중국 삼국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전략가였던 제갈량.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혜의 화신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사에 기록된 제갈량은 치밀한 공부 마스터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 그의 공부법은 ‘관기대략(대략만 보고 훑다)’으로 글자 하나하나를 정독하는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관기대략’은 공부를 대충 했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대략이란 큰 줄기, 즉 요지를 뜻한다. 그는 학업에 임할 때 사소한 구절 하나하나에 매몰되지 않고 핵심에 집중했다. 또한 특정 학문에 통달하는 것보다 다양한 학문들이 서로 이어지는 맥락에 주목했다. 경전의 권위에 눌려 문구 하나하나를 무조건 숭배하지 않았고, 쓸데없는 선문답에 갇혀 실천적 본질을 놓치지 않았으며, 책 속의 나무만 보느라 세상 속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옛 문장이나 글귀를 따져 자신이 고매하다 생각하는 썩은 선비들이 많지요. 그런데 그들이 어찌 나라를 일으키고 공을 세울 수 있으리오. 옛날 은나라 재상 이윤은 신야에서 밭을 갈았고, 강태공은 위수에서 낚시질이나 했으며, 한나라 개국공신 장량과 진평, 광무제 창업 공신 등우와 경감은 모두 우주를 바로잡는 재주를 가졌지만, 그들이 평생 무슨 경전을 공부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소이다. 그들이 어찌 일개 서생으로 구차하게 붓방아나 찧으며 문장 희롱하기를 능사로 삼았겠소이까?”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제갈량의 대사다. 비록 나관중의 창작이지만 제갈량의 생전 철학이 잘 반영된 장면이다.

요즘 새 정권에게 “OO가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외치는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진다. 하지만 정부는 부를 재분배할 수 있을 뿐, 새로운 부를 직접 창출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다. 명분과 실리, 오늘과 내일, 효율과 공평을 두고 복잡한 시소게임을 해야 하는 게 정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자기가 아는 이야기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그리고 그 저변에 깔린 본질은 ‘해줘”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세상에 완벽한 정책이란 없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대응할 수 있을 뿐이다. 어제의 오답이 오늘은 정답인 경우도 흔하다. 따라서 지식을 쌓는 것보다 중요한 건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관찰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적응력,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이다.

책 한 권만 읽은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은 진리다. 오늘날처럼 복잡하고 지혜의 유통기한이 짧아진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노자는 양생에는 뛰어났으나 위험과 재난에 대처하지 못했다. 상앙은 법치에 능했으나 백성을 교화하지 못했다. 소진과 장의는 말재간이 뛰어났으나 쌍방이 동맹을 맺도록 하지 못했다. 백기는 성을 치고 점령하는데 능했으나 대중을 너그럽게 포섭하지 못했다. 오자서는 적을 막는 계책을 꾸미는 데는 뛰어났지만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지 못했다. 미생은 신용을 지켰으나 변화에 부응할 줄 몰랐다. 왕가는 성군을 받들어 모시는 데는 능했으나 어리석은 황제를 위해 처사할 줄은 몰랐다. 허자는 명망 있는 인사들의 우열을 평가하는데 능했으나 인재를 양성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사람들의 좋은 점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앞의 인용과 달리 이건 제갈량 본인이 실제로 남긴 말이다. 배움을 대하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자세가 잘 드러난다. 제갈량의 탁월함은 많은 지식이 아니라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취사선택할 줄 아는 유연한 응용력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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