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실전은 다르다
[사진은 장평대전이 벌어진 곳에서 발견된 유골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진나라는 이곳에서 조나라 포로 40만 명을 생매장했다.]
장평대전은 전국 시대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요한 전투다. 조나라는 진나라가 동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군사력이 강하고 뛰어난 지휘관이 연달아 등장해 초강대국인 진나라를 저지하는 방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평에서 전 병력이 괴멸되다시피 할 만큼 큰 패배를 당하면서 그 기세가 꺾였고, 결국 30년 뒤 멸망하고 말았다. 만일 조나라가 탄탄하게 버텼다면 이후의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조나라의 패인은 인선의 실패였다. 왕은 전장을 잘 지휘하고 있던 백전노장 염파를, 대군을 지휘해 본 경험이 없는 조괄로 교체했다. 심지어 조괄의 가족조차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조나라의 왕은 화려한 언변으로 신속한 승리를 약속한 조괄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잘 버티고 있었지만 방어에만 치중하던 염파가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이리라.
조괄은 어려서부터 병서를 깊이 연구해 병법에 통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한 번도 실전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조괄이 주장한 단기 결전은 겉으로는 완벽했으나 조나라 군의 훈련도와 보급, 주변 제후국들의 속사정, 무엇보다도 전쟁터의 비이성적인 요소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실제 전장은 병법의 상식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조나라 군사가 두 배에 달했지만, 막상 전장에서는 엄격한 규율로 다져진 진나라의 전투력이 우위였다. 진나라는 상식을 깨고 지형을 이용해 소수로 다수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진나라의 빈틈을 찔러 줄 거라고 기대했던 주변국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수수방관했고, 조나라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자 더욱 소극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적진에서 벌어진 전투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나라는 우월한 행정력으로 보급에서 우위를 점해 최후의 힘겨루기에서 이길 수 있었다. 이 네 가지 오판으로 조나라 군은 일방적 학살에 가까운 대패를 당했고, 조괄 본인도 전사했다.
현실 속 피드백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하는 이론은 죽은 지식이 되기 쉽다. 조괄은 이론에는 뛰어났지만, 장부 뒤에 가려진 두 나라의 진짜 실력을 몰랐고, 피냄새가 진동하는 전쟁터에 선 사람들의 심리에 무지했으며, 무엇보다도 리더십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조괄 같은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을까? 다음은 나름대로 정리해 본 체크리스트이다.
첫째, 부족한 경험을 감추기 위해 이론이나 해외 사례의 권위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 결과, 제대로 된 분석을 하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 특정 숫자와 결론을 정해 놓는다. 원하는 결론에서 벗어난 사실들은 감추거나 왜곡한다.
둘째, 실패했을 경우에 대한 대비가 없다. 완벽한 공식을 발견했기 때문에 실패할 일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셋째, 계획을 직접 실행해야 하는 이들의 입장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계획을 승인받는 것(즉,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며, 그걸 실현하는 과정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넷째, 오직 적과 나만 보일 뿐, 주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복잡한 세상을 단순한 게임으로 압축해서 보기 때문이다.
염파보다 조괄이 인기가 있는 건 인지상정이다. 조괄은 확실한 성공을 약속하며, 그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전쟁터에서의 승률은 별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