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캄보디아가 총탄과 미사일을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먼저 도발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분쟁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국경 분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캄보디아를 지배하던 프랑스 제국은 시암 왕국(오늘날의 태국)과 국경선을 정하는 협정을 맺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실제로 제작한 공식 지도는 협정 내용과 일치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태국이 이 오류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 지도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원래는 태국 영토였어야 할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실수로 넘겨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협정 체결 후 30년이나 지난 뒤였다.
역사적 유물을 둘러싼 전쟁은 십자군 전쟁만이 아니다. (인류의 본능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캄보디아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하자 태국 국민들은 격렬히 반발했다. 등재를 지지했던 태국 외무장관은 여론의 분노에 밀려 사임했고, 같은 해 양국은 사원 인근에서 무력 충돌을 벌였다. 두 나라는 2011년에 이르러서야 해당 지역에서 군을 철수하며 일시적인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태국은 캄보디아보다 인구가 4배 많고, 군사력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캄보디아가 전장에서 태국을 제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캄보디아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변수다.
결과적으로 이번 분쟁은 둘 다 지는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 모두 복잡한 국내 사정으로 인해 전면전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태국이 군사적으로 일시적인 우위를 점할 수는 있겠지만, 국내 경제, 정치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 6월 18일, 태국 총리 패통탄 친나왓과 캄보디아 상원 의장이자 현 총리 훈 마넷의 부친인 훈 센의 통화 내용이 유출되었다. 해당 녹취에서 패통탄 총리는 캄보디아의 국경선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심지어 자국 군 사령관을 비판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오랫동안 친나왓 가문과 갈등을 빚어온 태국 군부가 이번 유출의 배후가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군부를 ‘악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1986년생인 패통탄 총리는 전 총리 탁신 친나왓의 딸로, 아버지·삼촌·이모에 이어 가문에서 네 번째로 총리직에 오른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군부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군부는 진보 성향의 전진당(‘Move Forward’)을 견제할 정치적 우군이 필요했고, 그 결과 두 세력이 오월동주의 느낌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이처럼 정치공학의 결과 세워진 정권이었기 때문에 스캔들 이전부터 패통탄 총리의 지지율은 11.5%로 매우 낮았다.
녹취가 유출되자 태국은 즉각 혼란에 빠졌고, 패통탄 총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직무가 정지되었다. 이로 인해 내각은 긴급하게 개편되어 현재 태국은 국방장관이 공석인 상태다.
결국 또다시 태국의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열쇠를 쥐게 되었다. 재판소의 판결은 패통탄 총리의 정치적 미래뿐 아니라,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에 대한 태국의 향후 대응 방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누가 후임 총리가 되든 캄보디아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만일 총리가 유임된다면 분노와 갈등의 무대가 국경이 아니라 태국 시가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가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는 지금, 국내외를 막론하고 점점 더 많은 국가들이 외교적 대화보다는 무력 충돌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택하고 있는 현실이 두드러지고 있다. 평화를 위해선 초강대국의 존재는 필수인 걸까? '이성'과 '규칙'으로 평화를 유지한다는 건 그저 망상에 불과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