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연인과 재회하는 법

변해버린 한미 관계를 바라보며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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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이 이별을 통보했을 때 최고의 대응책은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둘이 함께 쌓아 온 추억을 구기지 않고 자신의 자존감을 잘 지켜내야 한다. 마지막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다우면 언젠가 전화 한 통이 걸려올 가능성이 높다(윤종신이 부른다, ‘좋니?’).


미국은 대한민국에게 특별한 존재다. 6·25 전쟁 당시 이 나라를 위해 사망한 미군은 무려 4만 명에 육박한다(6·25는 미국 역사상 두 번의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이어 네 번째로 희생자가 많았던 전쟁이다). 한때 미국의 경제 원조가 한국 전체 GDP의 10%를 차지했으며(현재 삼성그룹 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13%), 한국을 이끌었던 각계 인물들은 대부분 미국이 제공한 요람에서 자랐다. 육사가 대한민국의 미국화 선봉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들 대부분은 미8군 무대 출신이다. 당시 한국은 50%나 되는 과세로 자국 시장을 보호했지만 미국은 강자의 아량으로 너그럽게 눈감아 주었다.


두 나라의 관계가 권태기에 접어들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부터였다. 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로 국제 무역 질서의 재편을 시도하면서 양국 간에 묘한 긴장이 싹트기 시작했다. 다행히 당시 미국의 주요 타깃은 일본이었고, 우리는 농업 등 일부 분야에서 성의를 보여야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오히려 어부지리를 누렸다. 또한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을 결단함으로써 잠시 흔들리던 관계를 다시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도전은 이전과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한국의 체급이 부쩍 커진 탓에 ‘손봐 줘야 할 나라’ 목록에서 우리의 순위가 훌쩍 높아졌다(2024년 기준,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한국 순이다). 미국이 협상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가치 동맹의 연장선상에서 ‘미국의 편’이라는 걸 증명하라는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그런 건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무역 적자를 줄이라며 계산기를 들고 달려든다. 과거의 갈등이 연인 간의 애정 확인이었다면, 지금은 위자료를 따지는 느낌이다.


애정의 깊이와 이별 후유증은 비례하는 법. 달라진 미국의 모습 앞에서 우리의 대응은 상당히 감정적이다. 재회의 미련에 빠져 질척거리는 사람들과 분노에 이성을 잃은 사람들, 오직 두 양극단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차분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연애는 두 사람의 동의로 시작하지만 끝날 때는 한쪽만 변심하면 된다. 아무리 우리가 간절해도 두 나라가 연인이었던 시절은 빛이 바랬다(어쩌면 우리가 인정하지 않았을 뿐, 진작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헤어진 연인이 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이별에 현명하게 잘 대처하면 얼마든지 좋은 친구로 남을 수 있다. 관심사가 달라진 두 남녀에게는 성숙한 우정이 불안한 연애보다 나을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언젠가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사랑의 싹이 틀지(드라마 ‘연애시대’).


그러려면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구질구질하지 않은 당당한 태도와 소중했던 추억을 존중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줘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헤어질수록 재회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Remember, 재회로 가는 길은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의존도는 과거 조선이 명나라에 의존했던 것 이상이다. 안보와 경제도 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 의존이다. 애인의 이별 통보를 술기운에 한 실수라고 믿고 싶어 했던 20대 시절의 우리들처럼 대한민국은 최근 미국이 보여주는 모습을 일시적인 변덕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과연 그럴까?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파트너가 관계의 변화를 요구한다면 우리도 변해야 한다. 우리의 관계가 왜 변색되었는지,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함께 보낸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하되, ‘네가 없어도 난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헤어져도 우리는 친구이니 언제든 편하게 연락하라고 말해 줘야 한다(연락처 삭제나 번호 차단은 집착의 반증이니 웬만하면 하지 말자). 마지막으로, 평소 못하던 운동도 하고 소홀했던 친구들을 만나며 알차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 내가 장담하는데 조만간 전화가 올 것이다(아마도 늦은 밤에 올 것이다). 둘은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고, 여전히 공감하는 것도 서로 도와줄 수 있는 것도 많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찾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하지만 실연이 아프다고 급하게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면, 화를 부르게 되어 있다(소위 ‘Rebound Relationship’이라고 한다). 지금은 차분하고 신중하게 매사에 대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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