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Define)하는 자가 지배한다”

상호관세? 대체 뭐가 상호적인데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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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Define)하는 자가 지배한다”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라는 표현에 이질감을 느끼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의 무역 관행에 익숙했던 우리에게는 최근의 조치가 ‘상호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관세 이슈는 복잡한 문제라 단순히 흑과 백으로 구분할 수 없다. 오늘 논하고 싶은 것은 관세가 아니라 ‘단어’가 지닌 힘이다. 미국은 ‘상호관세’라는 네이밍으로 관세 인상을 불공평했던 무역 관행을 정상화하는 조치로 리프레임(Reframing) 했다. 단어를 선점하는 자는 현실을 구성하는 힘을 선점하게 된다. 미국이 구축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프레임 앞에 상대국들은 기존 관행을 변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협상의 주도권을 잃게 되었다.


이전 바이든 행정부도 현 정부 못지않게 프레임 전략에 뛰어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은 이름과 달리 인플레이션 억제보다는 증세 및 재분배 정책, 보조금을 통한 자국 산업 육성, 반중국 공급망 구축이 그 핵심이었다. 자유무역의 전도사였던 미국이 보호무역 정책을 펼치자 국내와 해외 모두 반발이 컸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자국민들의 인플레이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였다.


이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로는 부시 행정부의 ‘애국자법(The Patriot Act)’이 있다. 테러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제정된 이 악명 높은 법률은 사회 전반에 대한 사법기관의 감시 권한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논란에 사로잡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자’라는 단어에 내포된 힘이 워낙 강해 오바마 대통령도 이 법을 완전히 폐지하지는 못했다.


당연히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보안법’(안보 문제에 ‘No’를 제기하긴 어렵다), ‘4대강 살리기’(죽은 걸 살리겠다고 하니 반드시 해야 할 것 같다), ‘동북아 균형자론’(한반도가 전쟁에 휩쓸리면 안 된다는 주장에 반대할 한국인은 없다), ‘소득주도성장’(왠지 분배가 아닌 성장 정책처럼 느껴진다), ‘임대차보호법’(약자를 보호한다는 느낌을 준다)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름에 담긴 이미지와 그 실체는 거리가 있었다. ‘국가보안법’은 종종 남용되어 헌법의 가치와 충돌한 게 사실이고, ‘4대강 사업’은 ‘살린다’는 표현에서 연상되는 생태 복원이 아닌 보 건설 중심이었으며, ‘균형자론’은 기존의 한미동맹과 어떻게 양립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소득주도성장론’은 엄연히 분배 정책인데 이를 무리하게 성장 정책이라고 주장하다가 상황이 악화됐으며, ‘임대차보호법’은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논리를 강조한 결과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본질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


우리는 단어를 통해 현실을 해석하며, 먼저 해석의 틀을 씌우는 쪽이 규칙과 기준을 정하게 된다. ‘구조조정’ 대신 ‘경영 내실화’ 및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 축소’ 대신 ‘재정 건전화’, ‘민영화’ 대신 ‘선진화’, ‘부자 감세’ 대신 ‘투자 촉진’이 선호되는 이유다. 지금 관세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은 20년 전에는 ‘자유(Free)’라는 아름다운 표현으로 무관세 무역을 미화했다.


오늘도 단어를 둘러싼 경쟁은 진행 중이며,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 국내와 해외의 구분이 없다. 우리 주변의 이름과 용어들은 하나같이 정교한 의도로 설계된 것들이다. 특히 찬반이 갈리고 휘발성이 강한 정치적 용어일수록 더하다. 단어의 힘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뒤에 숨겨진 실체를 분리해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비판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 지배하는 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자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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